[디시人터뷰] 숲튽훈(김장훈)을 만나다

  김장훈은 호불호가 명확한 가수다. 가수의 기본인 가창력부터 히트곡, 방송 태도를 비롯해 나눔과 봉사, 사회참여 등 그의 모든 행동이 다 호불호의 대상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를 향한 '호불호'의 추는 '불호'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정치참여에 대한 반감, 욕설 논란, 일명 '삑사리' 창법, 싸이와의 갈등 등. 비난과 악플은 김장훈에게는 일상이 된 듯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야구 갤러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뜨겁게 김장훈을 깠다. 사회참여도 까고, 독도 활동도 까고. 김장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무대 위 '킥'은 '독도킥', '애국사이드커터킥' 등 각종 닉네임을 얻으며 비아냥 받았다. 

  이들이 주력으로 깐 것은 '창법'이었다. 계기는 한 야갤러가 발굴해낸 '아리랑' 영상 속 김장훈의 뜬금없는 샤우팅 창법이었다. 영상을 본 야갤러들은 황당함과 웃음을 참지 않았고, 이와 유사한 샤우팅 영상을 찾아내 그를 비꼬기 시작했다. 비꼬는 방법은 '야민정음'을 활용했다. 야갤러들은 야민정음으로 그의 이름을 '숲튽훈'으로 바꾼 다음, 이런 '삑사리'를 내는 것이 김장훈이 아닌 그의 내면 속 '숲튽훈'이라 주장했다. 야갤은 금세 '숲튽훈' 드립으로 가득 찼고, 일부는 그의 '샤우팅'만을 모아 편집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몇몇 네티즌은 숲튽훈 모창 영상을 제작해 공개하는 유튜버가 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김장훈보다 '숲튽훈'이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 까다 보니 정이 들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야갤 여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까면서 웃다 보니 미워하는 감정보다 '웃긴다'라는 감정이 '숲튽훈'의 이미지를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숲튽훈 모창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용자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김장훈의 이미지도 함께 좋아지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2~30대 여성들이 많이 오던 그의 공연장에는 10대 중고등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김장훈 역시 '숲튽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신 위에 무겁게 덮여 있던 '사회운동가' 이미지를 벗고 유쾌한 이미지의 외투를 입기 시작했다. 


<프로필>

이 름 : 김장훈

생년월일 : 1967년 8월 14일

데 뷔 : 1991년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

- 음 반

1991년 : 늘 우리 사이엔

1993년 : 이제야

1996년 : 노래만 불렀지

1998년 : 1998 Ballads For Tears

1999년 : 바보

2000년 : Innocence

2001년 : One Plus One, 김장훈 Best, Natural

2002년 : Live in Wonderland

2004년 : 二色英雄新聞(이색영웅신문)

2005년 : 조각

2006년 : It's me

2007년 : Maestro 01 (김장훈 트로트)

2008년 : 소나기

2010년 : 전우 OST Part.1, Letter To 김현식

2011년 : Dream Song (드림송), 이별 참 나답다

2012년 : 봄비, 햇살 좋은날, 김장훈의 독립군애국가, 없다, adieu

2014년 : 황금무지개 OST Part 4, 살고싶다

2015년 : What are you? (dear P. Politician or Pierrot), 키다리아저씨, 공항에 가는 날

2016년 : 울지마 인마, 김장훈 25주년 기념 앨범, 김장훈 25th Anniversary Part 1 '겨울'

2017년 : 김장훈 25th Anniversary Part 2 '봄'

2018년 : 하얀 말

- 방 송

2007년~2008년 : 공부의 제왕(M)

2011년 : 웰컴 투 더 쇼(S),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1(M)

- 영 화

2002년 : 몽중인(우정출연), 긴급조치 19호

2005년 : 안녕, 형아

2006년 : 라디오 스타(본인 역 특별출연)

2008년 : 미안하다 독도야(주연-내레이션)


- 도 서

2016년 : 나를 도발한다


- 안녕하세요. 디시인사이드입니다.

 안녕하세요.


- 숲튽훈 씨 반갑습니다.

 지금 그걸 디시가 만들었냐, 야갤에서 만들었냐 막 그러더라고요. (웃음)


- 야갤이 뭔지 아세요?

 국내야구 갤러리죠? 좀 세더라고요. 하하하.


- 질문을 야갤에서 받아서 좀 셀 수도 있어요.

 야갤에 김장훈 인터뷰한다고 알렸다고요?


- 네. 다들 엄청나게 놀라더라고요. 진짜 하는 거 맞냐고. (웃음) 저희 쪽에 김장훈 씨 짤방을 꾸준히 올리는 이용자가 있어요. 독도킥. 혹시 아세요?

 독도킥 알죠. 애국사이드커터킥, 제너럴커터 많잖아요. (웃음) 저는 디시라는 곳을 나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 저희 이용자분들은 고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어요.

 내가? 아니에요. 왜 고소를 하나요?


- 악플이 많으니까요.

 지금 다 돌아서지 않았나요?


- 네, 지금은 많이 좋아하세요.

 제가 고소고발 안 해서 좋아하는 거로 바뀐 거로 아는데.


- 주변 분들에게서 나오신 거 아닐까요?

 네. 주변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죠. 그런데 왜 고소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 약간 조롱조니까요.

 조롱할 수도 있죠. 없는 거 아니잖아요. 제가 안 때린 걸 때렸다고 하거나 이런 거면 모르겠는데. 어제 유튜브에서 봤는데 누가 저를 저격해서 조회 수가 몇십 만이 나온 것 같더라고요. 김장훈 복귀가 불편한 이유. 제목이 이렇던데. 애국, 개념 연예인, 기부 천사로 이미지를 포장하고 거짓 기부하고. 그런 거겠죠? 전에는 댓글을 안 봤어요. 제 페이스북은 제가 관리해서 댓글을 보긴 하는데 익명으로 하는 댓글은 아예 안 보고 안 들은 지 20년 됐어요. '댓글 아무렇지 않아' 그런 사람은 없어요. 10개 좋은 거 올라와도 1개 안 좋으면 마음이 상해요. 그런데 지금은 봐요. 포털은 볼 필요 없고, 유튜브는 보는데, 안 좋은 글 봐도 0.1도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아,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 팬들은 좀 속상해했죠. 저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저를 비하하는 것은 좀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고소 안 해요. 저를 오랫동안 심하게 괴롭히는 친구들도 있어요. 없는 말 만들어내는 친구들. 걔네도 안 해요.


- 왜요?

 첫 번째, 귀찮아요. 언제 법원 가고 그래요. 두 번째는 양심에 찔리지 않아서요. 내가 잘살고, 인격적으로 좋다는 게 아니라 저 인격적으로 하자 많아요. 많이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제가 모범적이거나 사람들이 말하는 공인의 자세로 살지는 않잖아요. 기내 흡연에 쌍욕 하고, 무대 위에서 자살소동에 불법 다운로드… 저 크리스마스 때 눈 오는데 대로변에서 여자친구랑 키스한 적도 있어요. '김장훈 아냐?' 그래서 '야 가. 나도 좀 살자' 그랬죠. 하하하.


- 거리낌 없으시네요.

 요즘엔 비겁하게 살아요. 말조심하고 욕도 끊고. (웃음) 어쨌든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는 거짓말은 안 해요. 비겁한 행동도 못 해요. 쪽팔리게 살지는 않아요.


- 자존감이 높은 건가요, 멘탈이 좋은 건가요? (디시 이용자 'ㅊㅇㅌㅊㅊ')

 자존감도 높죠. 그건 교육에서 왔어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어요. 엄마는 사업하니까 엄마를 못 봤고, 초등학교 3년은 병원에서 링거 꽂고 있어서 학교를 못 다녔어요. 정상적이진 않았죠. 편모독자임에도 엄마가 저한테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거짓말하면 죽는다고, 사내새끼가 비겁하게 살지 말라고 하셨죠. 솔직히 말하면, 욕하고 그러는 거 적절치 않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번 째는 기술적인 문제인데, 유튜브에서 저를 조롱하는 영상이 올라왔을 때 제가 뭔가를 봤어요. 제 어렸을 때 꿈이 과학자였는데, 저는 구글의 AI 로직을 10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타겟팅 기술 같은 거. 제가 10 몇 년 전 어느 날 유튜브를 보는데 메인에 제 영상이 올라와 있는 거예요. 그런데 패션 영상을 보니 패션 영상이 추천되더라고요. '와, 유튜브 무섭다. 타겟팅을 하는구나' 했죠. 제가 공연 홍보 영상을 유튜브에만 올린 적이 있어요. 유튜브는 타겟이 정확한 거잖아요. 제 겨냥층이 20대 여성인데, 다른 포털 사이트 같은 경우는 모든 유저를 겨냥하지만 저는 그게 필요 없어요. 그러다가 생각한 게 '너희 그렇게 나 조롱하다가 말린다' 였어요. '내가 장담하는데 너희 다 내 팬 된다. 이런 사람도 한 명 있어야 해. 누가 못해서 못해?' 그랬죠. 노래를 평범하게 부르면 노래를 깔끔하게 잘하는 거예요. 그런데 소리치며 부르면 웃긴 거죠. 깔끔하게 하는 건 누가 못하나요? 그러나 소리치며 부르는 건 아무도 못 해요. 그걸 내가 해주는데 그거 가지고 뭐라 하는 게 왜 조롱인가요? '지금은 처음 들어서,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상하게 들리지만, 너희가 내 영상 보면 유튜브의 인공지능이 내 다른 영상을 보여줄 거야. 그 영상 중에는 노래를 아주 깔끔하게 부른 것도 올라올 거고. 너희는 헷갈릴 거야. 이건 또 멀쩡하게 부르네' 이렇게. 실제로 그런 댓글도 있더라고요.


- 하하하. 재밌네요.

 어떤 애는 노래 레슨 하는 친구인가 봐요. '김장훈은 성대를 닫아 답답하게 부르는 스타일인데 이 영상에서는 성대를 열고 부르네? 여태껏 일부러 그렇게 부른 건가?' 이런 글들을 올리더라고요. 을밀대 냉면, 홍어회 같은 거 처음 먹고 싫어하다가 나중에는 계속 생각나잖아요. 저는 유튜브를 홍어찜이나 을밀대 냉면으로 봤어요. 악어를 왜 키우겠니, 자꾸 보다 보면 개가 밋밋해지니까. 악어 정도는 되어야 애완동물이지 하는 거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요? 전 원래 남의 일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멘탈이 강해서가 아니라 안 듣고 안 봐요. 그냥 제거만 하는 스타일이에요. 아니나 달라? 변화의 기류가 조금씩 오더라고요. 그러다가 '김장훈왕팬'이라고 '아빠! 힘내세요!' 소리 지르며 모창 하는 놈이 있어요. 밴드 애들이 싫어했어요. '쟤 때문에 형이 진짜 저렇게 노래 부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러더라고요. '누가 그렇게 생각하니?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어때? 어차피 공연 보면 끝나' 했죠. 그러다가 그 친구가 제 공연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 그걸 또 어떻게 아셨나요?

 내 팬들이 걔 채팅하는 걸 본거야. '김장훈 공연 갈 거야' 그러니까 채팅 방에 있던 애들이 '가지 마라, 맞는다. 김장훈 성질 더럽다더라' 그랬대요.


- 저도 똑같이 생각했어요. 사실 여기 오면서. 하하하.

 저는 그걸 나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들만의 문화라 생각했죠. 그 친구 온다고 해서 공연 중에 '여러분, 숲튽훈이라고 있는데, 그거 따라 하는 선두권 친구가 있어요. 오늘 왔다네요' 했죠. 당황한 친구가 보이더라고요. '너구나, 나와봐. 안 때려 나와' 했죠. 여자 친구가 촬영하더라고요. 팬이야, 안티야 물으니 안티였다가 팬으로 돌아섰대요. 그런 애들 많아요. '돈은 좀 벌어?' 물으니 번대요. '야, 돈 벌면 저작권 좀 줘야 하는 거 아냐?', '드려야죠', '됐어. 돈 벌어서 여자친구랑 행복하게 살아, 나는 숲튽훈이 고용창출이라고 생각해. 내가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있는 거야. 기념으로 형이랑 노래 한 번 하자' 하고 '걱정 말아요 그대' 불렀어요. 끝나고 사진 찍고. '내가 너 예뻐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데 연락은 하지 말자. 너 나랑 친해지면 그 영상 못 올려. 너는 그걸 계속해야 행복하니까 오늘은 추억으로 삼자. 그랬어요. 안 그래도 얘가 미안해서 한 동안 영상을 못 올리더라고요. 그리고는 제가 복면가왕 때 썼던 가발을 선물로 줬거든요. 그 이후로 걔가 난리가 났더라고요. 하하하. 걔 실시간 방송 들어가서 제가 후원도 했어요. 그 영상을 올렸는데 한 30만 나왔어요. 댓글도 많이 달렸는데 애들이 '이 형 대인배'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건이 계기가 됐죠.
 

- 악플러들이 은근히 자기한테 정주는 사람들에게 약하더라고요. (웃음)

 저는 악플러라고 생각도 안 해요. 무플보다 악플이 난 거 아닌가요? 그런데 나한테만 그렇게 하고 다른 멘탈 약한 애들에게는 악플 안 달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야갤이나 디시를 어떻게 생각하냐면, 누가 '여기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하면 댓글에 '여기 디시야'가 달린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거 하나로 끝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야갤 살벌해요. 누가 그러잖아요. 거기 미친 거 아니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러냐고. 저는 '그래? 그럼 안 들어가면 되잖아' 했어요. '그렇죠. 그런데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걸 떠나서 그런 식으로 세상이 돌아가면 안 되잖아요' 해서 '난 아닌데, 거기 있는 친구들이 오프라인에서도 그럴까? 안 그럴까' 했어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어떤 무리에서는 쌍욕 하고, 야한 이야기도 하지만, 어떤 무리에서는 정중하게 놀아요. 저는 그게 그들만의 문화라고 봐요. 그 많은 애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겠어요? 그런 분위기가 잡힌 거고, 그렇게 풀고, 야갤은 그렇게 가는 거고. 초등학교 동창 만나면 저도 그래요. 무조건 욕으로 시작해요. 야갤 싫으면 안 들어가면 돼요. 굳이 들어가 스트레스받고 망조니 뭐니…. 그러면 이나라 예전에 망했어요. 원시시대 때도 '요즘 애들 까졌다'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들만의 리그 같아요. 글로 보면 짜증 나지만, 친구들끼리 만나서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저는 야갤 들어가 본 적 없어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 들었을 때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안 했어요.


- 영상이 가수로서는 조금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삑사리' 영상을 모아놓은 거잖아요.

 그건 제가 했던 거잖아요.


- 가수로서의 자존심?

 그런데 잘 부른 것도 많으니까요. 숲툰훈이 탄생한 노래가 '아리랑'이에요. '놔를 버어어어~리고' 그렇게 부르는. 그게 첫 영상이었고, 그다음이 추억 만들기…. 한 네다섯곡 있어요. 그런데 재밌는건, 아리랑 영상 제가 올렸어요. 나는 '와, 아리랑을 이렇게 잘 부를 수가 있을까?' 해서 올린 거예요. 하하하. 남들이 삑사리라고 하는 게 저에게는 삑사리가 아니에요. '삑사리라고 생각하든 말든 맘대로 해. 나는 필이었어'. 누군가 음반 나온 거 보고 '얼마나 가수가 노래를 못하면 음반에 삑사리가 나냐' 말하는데, 음반은 다시 녹음하면 돼요. 왜 삑사리가 나나요? 제가 삑사리라고 생각했으면 그걸 냈겠어요? 앞뒤 맥락이 안 맞는 거야. 튜닝으로 노래 못하는 애들도 가수로 만들 수 있는 게 음반이에요. 삑사리라고 생각하면 다시 녹음하거나 기계로 만지면 되죠. 제가 댓글을 안 보는 이유가 맥락에 안 맞는 소리에 트라우마가 있어요. 그게 짜증나요. 나한테 '김장훈 개XX야'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요. '김장훈 노래 더럽게 못해' 그러면 '너한테는 그럴 수 있지'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맥락이 안 맞는 거, 상식적이지 않은 것, 말은 곱게 하는데 논리도 없고 앞뒤도 안 맞는 거. 이거 짜증 나요.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왜 여기에 댓글로 달아? 다른 글에 달아' 그래요. 저는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못 참아요. 맞춤법 이런 거. 어우.


- 그런데 어떻게 숲툰훈은 좋아하시네요. 맞춤법 파괴인데. 하하하.

 그건 파괴가 아니라 천재예요. 이상이 시를 도식화해서 쓰듯이 쇠금(金)자에서 숲을 만들어 숲튽훈이라니. 천재 아니에요? 저는 그거 만든 분 은인이예요. 제가 돈을 드려야 돼요. 저의 인생을 바꿔준 친구예요.


- 그거 처음 만든 사람이 지금 김장훈 팬클럽 회장이라는 댓글을 봤는데 진짜인가요?

 아니에요. 걔가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아요. 단순한 애예요. 그리고 저는 팬클럽이 없어요. 다 와해시켰어요.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요. 저를 조종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요.


- 김장훈일 때랑 숲튽훈일때랑 언제가 더 행복한 것 같아요?

 숲튽훈일 때가 마음이 조금 더 편해요. 막 해도 돼요. 미리 쉴드가 쳐 있죠. 마리텔 할 때도 다 숲튽훈으로 가잖아요. 제가 숲튽훈의 힘으로 이번 주 토요일 음악중심, 일요일 아이돌 프로그램, 화요일 MTV 이렇게 음악프로그램을 돌아요. 그건 김장훈으로 가는 거죠. 깔끔하게 노래하는 거죠. 저는 5,000만이 두루두루 좋아하고 공연에 1만 명 오는 가수 될래, 아니면 한 3,000만은 싫어하고 2,000만은 대충 좋아하는데 공연에 10만 명 오는 가수 될래? 하면 후자 할래요. 저는 공연에 관객 많이 오시는 게 모든 것의 중점이에요. 방송을 하든 유튜브를 하든. 뭘 하든 공연에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이런 거는 유입이 안 돼요. 유튜브는 유입이 돼요. 아무래도 노래를 기반으로 하고, 롱타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연에 힘을 실어주는 한은 온라인에서 뭐라고 떠들어도 저는 괜찮아요.
 


- 원래 김장훈 씨 공연은 연령대가 높았는데, 실제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나요?

 엄청 와요. 10대들은 단관도 해요.


- 청소년 할인도 해줘야 하겠다고 하시던데.

 원래 할인해요. 50%. 그래서 문제가 생긴게, 제가 공연비를 계속 내리고 있어요. 소극장 공연은 지금 4만 4,000원까지 내려갔어요. 돈은 다른 것도 벌수 있어요. 제가 숲튽훈 콘서트도 했어요. 그때 어떻게 하려고 했냐면, 티켓 줄이 두 개야. 안티와 안티 아닌 사람. 그래서 안티는 할인을 해주는 거죠. 3만 3,000원인데 김장훈 안티세요? 물어서 '네. 김장훈 싫어해요' 그러면 1만 원 돌려주는 거죠. '김장훈 노래 더럽게 못 불러요' 그러면 1만 원 돌려주고. 그걸 영상으로 찍는 거죠. 분명 팬클럽 중에서 안티 쪽으로 간 애들 있을 거예요. 돈 아끼려고. 하하하. 그걸 공연 중에 보여주는 거예요. '잠깐 멈춰봐. 쟤 내 20년 팬인데 1만 원 때문에 오빠를 팔아?' 이렇게. 전 이걸 캠페인처럼 하고 싶어요. 여야, 보수, 진보 그런 거로 싸우는데 쓸데없이 왜 싸우나요. 그냥 싫은 거 있으면 싫은 대로 받아들이면 되죠. 제가 건달과여서 그런 거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또 허무주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신경 쓰는 것을 같잖게 생각해요. 엄청난 상황인데도 '그럴 수도 있지, 됐어' 이런 반응이에요. 예를 들어 돈이 십수 억이 날아갔어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건가 보다. 됐어. 어차피 있어도 다 기부할 돈이니까 됐어'.

 그런데 웃긴 게 돈을 받기로 한 행사는 취소됐는데 재능기부한 나눔 행사는 하나도 취소가 안 되더라고요. 다 갔죠. 제 기름값만 더 들었어요. 하하하. 전 지방 행사 가면 모텔에서 자는데 그 비용도 제가 냈어요. 전국 모텔 가면 제 사진 몇 군데 걸려 있을 거예요. 저는 사진 찍어줘요. 혼자 서서. (웃음) SNS에도 올려요. 모텔 침대 누워서 찍은 사진. 모텔이 더 좋아요. 익숙해서. 락스 냄새가 예전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요. 그리고 담배도 피울 수 있고. 훨씬 좋아요.


- 이상한 사람들과 부딪힐 수 있지 않나요?

 부딪치지 않고 서서 사진 찍어 주는데요? 한 번은 방에 있는데 술 취한 연인이 들어오더라고요. '어? 김장훈이다!' 그래요. '김장훈 맞으니까 다른 방 가, 이 방 아니야. 니네 왜 이리 취했어?' 했죠. 저는 상관없어요. 설마 김장훈이 진짜 왔나 생각하겠어요? 설령 그랬다 한들 뭔 상관이에요? 제가 결혼한 사람도 아니고 어린 애랑 가는 것도 아니고. 모텔 가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상관없다는 거죠. 오히려 제가 모텔 사장님께 이야기하죠. 아저씨 이게 크게 인화하면 흐려지니까 작게 프린트하세요. 사인 합치고. 모텔은 보통 낮 12시에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공연이 저녁이니까 오후 4시 반쯤 나오는데 그럼 대실료 한 3만 원 빼줘요. 지난번 강릉 때는 다 빼주셨었죠.


- 좋은 주인이시네.

 팬이라고. (웃음) 이럴 수도 있어요. 연인이 왔는데 둘 다 내 팬이야. '김장훈 어느 방에서 잤어요?' 그러면 그 방 가서 침대에 뺨 비비며 저를 느끼기도 하고, 추억도 만들고. '여기가 김장훈 잤던 방이래' 해서 SNS에 올리고. 좋잖아요. 그런데 저는 대형 고깃집 이런 곳은 안 해줘요. 제 이름 걸려있는 게 좀 별로더라고요. 전에 강남 유명한 고깃집에서 서비스로 육회를 주시며 사인해달라고 해서 하는데 가게 이름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죄송한데 이모 가게 이름으로는 하기가 그래요' 했죠. 그리고 장사도 잘 되는데 제가 굳이….


- 팬들이 이제 기부 그만 하고 본인 삶 살아라 그래요.

 이제 그만 하려고요. 돈도 없어요. (웃음)


- 이건 예민할 수 있는데 스태프 일당까지 기부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디시 이용자 'ㅋ', 'ㅇㅇ')

 그건 말도 안 되는 게, 저는 공연 수익을 기부한 적이 없어요. 그건 제 권리가 아니에요. 제가 광고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번 돈은 기부하는데 공연은…. 이렇게 많은 돈을 썼으니 최고의 공연을 해줘 요청을 해서 제가 공연을 하는 건데 어떻게 수익을 기부하나요? 공연 수익을 기부한 적도 없는데 무슨 스태프 돈을 기부하나요? 잘못된 이야기예요.
 


- 기부 안 하시고 본인 편하게 사실 계획인 건 맞는 거죠?

 그런데 요즘 제가 조금 풀리니까 빨리 돈 벌어 기부하고 싶어 죽겠어요. 요즘 제가 돈을 많이 벌려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돈을 좋아해요. 돈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그리고 돈 버는 것도 좋아하지만, 저는 돈 쓰는 걸 좋아해요. 어떻게 쓰는가를.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제 입으로 말하기 그런데 조사 한 번 해보세요. 전국의 택시 기사나 발렛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 김장훈 씨에게 돈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1만 명도 더 나올 거예요.


- 돈을 더 많이 드린다고요?

 네. 저는 그게 제일 행복해요. 사람들에게 돈 줄 때가. 허무주의라서 그런가 봐요. 초등학교 때 3년을 병원에서 링거 꽂고 살며 거의 죽을 뻔하고, 오래 못 살 거라던 인간이었고, 지구 상에 가족이라고는 엄마와 누나 둘 뿐이고, 가정사가 그랬어요. 또 제가 고2 때 학교에서 잘렸죠. 참, 제가 도박은 절대 안 하거든요. 마약도. 지금은 술도 끊었어요. 도박 안 하는 이유는 제가 학교에서 도박하다 잘렸어요.


- 뭐하셨는데요. 하하하.

 제 꿈이 도박사였어요. 그때 판돈이 100만 원이 넘었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몇천만 원인 거죠. 인근 학교에서 애들이 왔는데 도박해서 그 돈을 다 땄어요. 제가 도박에 천재인가 봐요. (웃음) 제가 잡기 쪽으로 져본 적이 없어요. 하튼 그래서 제가 라스베이거스 그렇게 많이 가도 슬롯머신 한번 해본 적 없어요. 저 그리고 집 나와서 막노동 엄청 많이 했어요. 매우 허무주의예요. 제 삶의 신조가… 엄마가 디시는 안 보시겠죠? '지금 죽어도 호상이다'예요. 전 지금 죽어도 미련 없어요. 그런 놈이 뭐가 겁나겠어요? 댓글이 어쩌고? 지금 죽어도 미련 없는 놈이 뭔 댓글에 신경 쓰겠어요? 숲튽훈 나오거나 말거나 세상은 알아서 가요. 그 끝에 내가 어떻게 결정할지 정해지면 그때는 노래를 관둬도 상관없고, 삶을 끝내도 상관없어요. 다만 제가 신앙이 있으니까 자살 시도는 더는 안 해요. 제가 세 번 시도했는데 더는 못할 것 같아요. 사실 사는 게 지루해요. 재밌는 것도 없고. 제가 디시와 인터뷰 왜 하자고 했냐면, 한 세 시간 때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하하. 인터뷰 왔다가 기자들이 질려서 가요. 말로는 고맙다 하면서 뭔 말을 그리 많이 해 그러죠.


- 괜찮아요. 세 시간 하셔도 돼요. (웃음)

 저는 상관없어요. 그리고 저 요즘 되게 잘 나가고 바쁜 줄 아는데 스케줄 텅텅 비었어요.


- 마리텔 열심히 하시잖아요.

 그거밖에 더 있어요? 그게 세니까 많이 하는 줄 아는데 그거밖에 없어요. (웃음)


- 마리텔 숲방송이 인기가 많아요.

 제가 스태프 마인드예요. 지난주보다 시청률이 0.8 올랐더라고요. 아침에 PD한테 전화했어요. 작가들한테도 연락했더니 안대요. 다 봤대요. 시청률에 신경 쓰는 이유는 프로그램이 잘 되어야 스태프들이 신이 나서 해요. 제가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시즌 1은 획기적이었지만, 지금은 유튜브가 보편적이잖아요. 제가 트위치에서 하다 보면 시청자들도 '이거 방송 나갈 수 있어요?' 그래요. 욕도 없고, 야하지도 않은데 개판이니까. 하하하. 일반인 출연자들도 어디서 이상한 애들 기가 막히게 잘 골라내고. (웃음) 그리고 저는 학생들이 필터 없고 막 던지는 거 진짜 웃기고 귀여워요. 저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게, 어른들이 '요즘 애들' 이러잖아요? 웃겨요. 자기들은 안 그랬나. 개인적으로 애들하고 이야기하면 걔들 다 멀쩡해요. 대한민국 미래는 밝아요. 교육시스템이 엉망이라 수업 시간에 잠만 잔다고? 애들 한 명 한 명 보면 안 그래요. 요즘 애들 어른스러운 게 우리 때는 인터넷이 없었잖아요. 지금은 정보에 관해서는 서울 지방이 없어요. 그래서 애들이 성숙해요. 제가 '숲키즈 온 더 블럭'을 수능날 했어죠. 고등학생 애들 앉혀놓고 꿈이 뭐냐 물으니 엄청 다양해요. 소방관 경찰 복지사…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방송의 힘도 있지만 요즘은 예전같이 좋은 대학 가는 게 다가 아니라고. 좋은 대학이라는 게 없고, 50개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다고. 이제는 대학 안 가도 괜찮다는 부모도 많을 것 같다고요. 예전처럼 '무조건 대학' 하는 사회는 아닌 것 같아요. 기술 있으면 대학 안 가고, 등록금 자식한테 주고 '너 알아서 해' 그러고.
 

 제 조카가 한양대 나왔는데 장사 세 번 망했어요. 지금은 작은 조카랑 둘이서 자동차 딜러 하는데 잘 살아요. 우리 집은 그런 게 없어요. 다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하죠. 저희 엄마 자체가 청소년 교회 목사신데. 10대 교회라고, 제가 헌납한 곳이에요. 엄마와 저는 사단법인 '꿈이룸'이라고 아이들 돌보는 단체를 하는데, 생각해보면 저에 대한 한 같아요.


- 죄송하기도 하겠어요.

 제가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일이 끊겨서 업체 별로 돈을 못 준 적이 있어요. 참 고마운 게 몇 년 전 제가 지긋지긋해서 외국으로 떠날 거라고 했었어요. 언젠가 돌아와서 다시 우뚝 설 거라고 하고. 그런데 당장 돈이 필요했어요. 돈을 줘야 할 곳이 있었어요. 큰 업체들. 그들에게 '내가 밤일을 해서라도 갚고 갈게. 믿어 준다면 언젠가 줄게.' 그랬더니 '저희는 형님에게 받을 거 없는데요' 그러더라고요. 지금 제가 같이 일하는 특수효과팀은 저 어깨 사고 났을 때 그 팀이에요. 당시 제가 소송도 걸 수 있었는데 제 보험으로 처리했어요. 그때는 작은 회사였거든요. 수술 끝나고 와서 '됐어. 너희가 돈이 어딨어' 그러고 말았죠. 당시 공연 취소수수료가 1억이었는데 제가 지불했어요. 업체에는 의리나 지키라고 했죠. 끝까지 지키더라고요. 저는 스태프들이 전우예요.

 제가 블랙리스트에 자숙하느라 집에 있는데 갑자기 통장에 2,000만 원이 들어왔어요. 특수효과팀 대표 이름으로. 그냥 쓰래요. 그래서 제가 지금 그 회사 소속이에요. 그때 '기계 사고야, 사람 사고야'라고 물었더니 알바가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도망갔대요. 그냥 두라고 했어요.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어요. 기계 사고였으면 다시 못하는데 조작 사고니 사람만 바꾸면 다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펜싱에서 또 날아갔죠. 저는 그런 식이에요. 저에게 돈을 받을 업체 중에는 돈 못 받으면 눕는 분이 계셨어요. 저한테는 안 눕더라고요. '형님 안 누워?' 그러니까 '아무 데나 눕나요? 누울 곳에 다리 뻗지' 그러더라고요. 제가 열심히 하는 건 그런 것들 때문이에요. 다 기록되어 있어요. 제가 좀 유치해요. 의리를 지키면 어떤 복이 들어오는지를 이 바닥에서 보여줄 거예요. 제가 스태프들 차를 사준 게 19대예요. 제 대표는 레인지로버, 베이스 치는 친구는 크라이슬러, 기타 치는 친구는 포르셰. 우리 코디는 소렌토 신차. 제가 다 사줬어요.


- 김장훈 씨는 차 있나요?

 전 없어요. 어디 가서 구질구질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하는 뜻이었어요. 장모님한테 가는데 좋은 차 타고 가라고. 전 마티즈 타도 멋있어요. 인기인은 걸어 다녀도 멋있는 거예요. 제가 사업을 준비 중인데 목표가 연매출 5조예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어려워지다 보니까 옥석이 가려지더라고요. 떠난 자와 남은 자. 그런데 거의 다 남았고, 업체 중 한 팀만 저한테 내용증명 날린다고 해서 돈 바로 줬어요. 얼마 안 되는 돈이었는데 '뭐지? 뭐하러 그런 짓을 하지?' 해서 거기랑 지금은 일 안 하죠. 저는 인복이 있어요. 제가 5조를 벌면 나한테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건물 한 채씩 다 해줄 거예요. 유치하지만 내가 보여줄게. 이 바닥에서 조금만 뭐가 안 맞으면 등 돌리고 떠나지만, 의리를 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어. 이런 생각을 왜 했냐면 어느 날 공연하러 가는데 죽도록 하기 싫더라고요. 최고 충격이었어요.


- 사람을 만나기 싫었나요?

 노래가 지겨워졌어요.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노래를 신앙처럼 생각하고, 노래 안 나오면 담뱃불로 지지고, 긁고, 칼로 찔러가면서 했는데. 저 손가락도 자르려고 했어요.


- 왜요.

 고흐가 귀 자른 게 이해되더라고요. 원하는 소리가 안 나오니까 미쳐가는 거예요. 칼을 들고 연습실에서 이거 자르면 그 소리가 나오려나? 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기타를 쳐야 하잖아요? 왼손을 잘라야 하나, 오른손을 잘라야 하나. 왼손잡이가 아닌데 잘못 쳐서 삑사리 나면…. 그래서 손가락은 보류했어요. 또 한 방에 안 잘리면 아프잖아요. 하여튼 그 정도로 미쳤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애가 노래가 지겨워진 거예요.

 제가 예전에 사람들에게 한 번 질린 적이 있었어요. 제가 1991년에 데뷔했는데, 그때 제가 골든디스크 생방송을 펑크냈어요. 신인이. 김현식 노래 계속 시켜서. 엄밀히 말하면 펑크는 아니죠. 난 계속 안 한다고 했으니까. 사무실하고 방송국이 저를 끝까지 몰고 간 거지. 당일에 짐 싸고 날랐어요. 그리고 매장당했죠. 1991년부터 그렇게 살다가 엄마가 사업하시던 게 망했어요. 차압이 세 번 들어오고, 월세 8만 원짜리 살고, 푸세식 화장실에. 손에 흙 한번 안 만져보신 엄마가. 저 어렸을 때 잘 살았거든요. 그런데 교회 성미쌀을 얻어서 드실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진 거예요. 음악성이고 나발이고 난 영혼을 팔아서라도 돈 번다고 각오했어요. 그런데 사실 영혼 팔아도 다 되는 게 아니죠. (웃음) 그래도 '나와 같다면'으로 뜨고, 그렇게 5년 하니까 또 재미가 없더라고요. 인기 느니까 재밌을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해달라는 것만 많고 안 해주면 뭐라 하고. 그러다 공연 사기 맞았어요. 2억 정도. 그것도 제가 갚을 이유는 없었어요. 저는 기획자가 아니고 가수였거든요. 그런데 같이 공연밥을 먹었잖아요. '내가 밤일 뛰어서 갚아줄게' 하고 밤일했어요. 대신 이런 건 있었어요. 한 업체가 저한테 재촉을 하더라고요. '내가 분명 이야기했지? 난 법적으로 해야 할 의무가 없어. 식구처럼 대했는데 나한테 재촉해? 그럼 너한텐 안 줄게.'
 


- 진짜 안 줬어요?

 안 줬어요. 방법 있으면 해 보라고 했죠. 제가 인간적으로 대했는데 넌 뭐냐 그랬어요. 나머지는 다 줬어요. 그때 미국 갔죠. 하지만 공황장애 걸려서 다시 한국 돌아왔죠. 잘되고 나서도 인생에 굴곡이 참 많았어요. 인생에 환멸을 느낄 때가 오잖아요? 나 이거 해야 하나 생각할 때 오잖아요? 그런데 다 그렇게 참고 살아가는 거죠. 저는 그럴 때 다른 곳으로 떠나요. 사람들은 휴양 혹은 리프레시를 목적으로 떠나는데 저에게 떠난다는 건 지옥 가는 거예요. 저는 한국을 떠나서 살지 못해요. 난 한국을 너무 좋아해요. 외국 나가면 집에 오고 싶어서 미쳐요. 미국에 한 달 가 있는데 집에서 안 나오고 한국에 전화해요. 공연 관련해서. 후배들이 '이게 무슨 여행이야? 한국에 사는 게 낫지' 그래요. 그럼 저는 '그래도 몸이 미국에 있다는 자체가 여행인 거지' 그러죠. 저 미국 공연 가서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한 번도 안 갔어요. 캐나다 공연 가서도 나이아가라 폭포 안 가요. 보면 뭘 하나요. 아무 데도 안 가고 방에만 있고 공연만 하고 와요. 그런 애가 어느 날 노래가 설레지 않아서 '그만하자'. 기자님 지금 인터뷰 그만 하자는 줄 알았죠? (웃음)


- 아니에요. 하하하.

 당시 블랙리스트도 있고, 사람들에게도 질리고. 사람들이 좌우 이야기하는데 저는 둘다 실망했어요. 저는 상식과 정의에 움직여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에요. 사안에 따라 보수도 될 수 있고 진보도 될 수 있어요. 어떻게 그걸 칼로 자르듯 하나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좌로 보는 건 인정해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느낌이라는 게. 저는 양쪽 모두에서 상식이 없는 사람들을 봤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떠나야 겠다 했어요. 그때 아프리카 가고 싶었어요.


- 봉사하러요?

 봉사도 그렇고,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전에 아프리카 두 번 갔는데 이거 농담 아니에요. 관광에 종사하는 마사이족이 있는데, 그분들과 같이 공연한 적이 있어요. 마사이족과 살까 생각도 했어요. '거기는 다 같이 두루두루 사는 문화 아닐까? 그럼 재밌겠다' 그래서. 기타 하나 가지고 가서 '당신들과 5년만 살게요' 그러려고 했어요. 그런데 떠나려고 보니까 빚만 있는 거예요. 엄마와 누나에게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주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돈을 벌려고 하니까 또 안 벌려요. 돈 30만 원도 없었을 때가 있었어요. 일단은 사무실 폭파하고, 대표는 다른 곳 대표로 갔죠. 그때 매니저는…. 쟤도 기구한 놈이지. 김장훈 매니저 하다가 최민수 매니저로 갔어. 양대 산맥으로 아주.


- 그분 멘탈은 강하겠네요. 하하하.

 진짜 강해요. 제가 청와대랑 대치 중일 때 옆에서 밥 먹고 있더라고. 나는 도망가는데 걔는 육회 먹고. '너 안 말려?' 하니까 '형 말려도 안 듣잖아요' 그러더라고요. 경찰하고 싸우고 발차기하고 그러는데도 안 말리더라고요. (웃음) 하튼 아프리카 못 가고 한국에 남았죠. 그냥저냥 살았어요.

 블랙리스트 그거. 정권 바뀌고 인터뷰 연락 엄청 왔어요. 지난 일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사실 저는 블랙리스트 당시 기자회견 해서 대통령 비판했어요. 카메라에 대고 욕도 했어요. 국회의원들에게도 카메라 앞에서 쌍욕 하고. 그때는 악만 남았을 때니까. 그런데 그때는 기사 못 쓰고. 당시 기사 제목 중 제일 센 워딩이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못할 줄 몰랐다' 이거였어요 그런데 정권 바뀌니까…. 아까 자존감 이야기했잖아요? 저는 좀 치사한 것 같더라고요. 지나간 거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전 그거로 강해졌고, 노래를 다시 찾았으니 좋은 추억이라고 했어요. 
 


 무대에서 욕 한 거. 그전까지 저는 자숙이란 걸 안 했어요. 기내 흡연으로 논란 있었을 때도 안 했어요. 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양심적으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굳이 자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안 써요. 저 되게 뻔뻔해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인데 무대에서 욕 한 거는 어쨌든 부적절한 거 맞잖아요. 날이 날이니 만큼…. 그때 분위기는 좋았어요. 하지만 제 의도가 어떻든 간에 노 전 대통령이나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준 거니까 자성을 해야겠다 했죠. 그리고나서 집에서 노래만 하다가 3차 성대결절이 왔어요. 지금은 그걸 극복했죠.


- 지금은 치료 다 끝난 거예요?

 더 좋아졌어요. 제가 성악 발성으로 발성을 한 번 바꿨어요. 유튜브에 '아티스트'라는 채널이 있어요. 성악발성 선생님이 운영하시는데, 그분이 제 은인이에요. 그분에게 복식호흡을 완전히 거꾸로 해보는 걸 배워서 시도해봤죠. 쉽고 편하게 하는 발성을 배웠어요. 대신 고음은 주저앉고, 중저음은 좋아졌죠. 숲튽훈 영역은 못 하고 김장훈 영역이 잘 되는 발성이에요. 그런데 한 열흘 전부터 예전 발성으로 바꿨어요. 얼마 전에 공연에서 써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 다시 목 안 좋아지는 거 아니에요?

 일단은 안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처럼은 안 하니까. 그때는 집에서 쉬면서 25시간씩 안 자고 노래했어요. 목이 쉬어도 오히려 그걸 즐겼어요. 그런데 이게 나이도 있고, 목이 근육이다 보니까 젊지 않잖아요. 추석 때 기억나는 게, 사무실에 아무것도 없을 때 와서 5일 동안 75시간을 발성했어요. 120시간 중에 75시간을. 그때 목이 나갔죠. 요즘은 정말 재밌어요. 요즘 100회 콘서트를 하는 게, 그게 저한테 의미가 컸어요. 마지막 승부였거든요. 스스로 '마지막 콘서트이거나 첫 번째 공연이 될 것이다' 생각했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지금 목소리로는 공연 못한다고 했어요. 굶어 죽느냐, 맞아 죽느냐 둘 중에 고르라면 맞아 죽는 게 낫지. 이대로 노래 못하면 다른 길로 가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던져 볼래요. 100회 공연하다가 내가 안 되면 그 자리에서 마이크 내려놓고 '이번 생은 여기까지입니다.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약해요' 이러고 끝내려고 했어요. 그렇게 100회 공연을 시작했는데 역시 무대는 의학이나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주마다 좋아지더니 나중에는 하루마다 좋아지더라고요. 저희 밴드 중에 저와 30년 한 친구가 있어요. 물론 다 20년 넘게 같이 했죠. 그들은 제 흥망성쇠를 다 봤어요.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성대적으로. 어느 날부터 걔들이 저를 걱정 안 하더라고요. 어떻게든 소리가 나오니까. 그러던 걔들까지 '그 목소리에서 소리가 나오는 게 말이 되나?' 이야기하더라고요. 하튼 고음을 잃어버리고 중저음이 좋아졌어요. 숲튽훈을 잃어버렸죠. 그런데 숲튽훈을 열망하시더라고요.


- 그건 하려는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되잖아요.

 그래도 제가 해야죠. (웃음) 그런데 숲튽훈 할 때가 제일 짜릿해요.  '그대를 사랑하는데 잊으라 하니…' 이걸 저음으로 불러요. 그런데 사람이 화가 나거나 슬프면 목놓아 울어요. 그럼 노래도 목놓아 불러야 해요. 그때 나오는 필로 나도 모르게 ‘그대를 사랑하는데!’ 하는데 거기에 음이 필요가 있나요, 뭐가 필요하나요? 그냥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나도 모르는 소리가. 평가는 듣는 분들이 알아서 하시고, 저한테는 이게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인 거죠. 

 어떨 때는 저도 그냥 저음으로 조용히 부르고 싶어요. 그게 더 슬플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게 하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살아야겠으니까. 노래 잘한다 이런 소리 듣는 거 상관없어요. 제가 살아야 하잖아요. 내 감정을 내가 추슬러야 할 것 아니에요? 노래하는 게 좋아서 하는 건데. 그 순간의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아리랑도 얌전히 부를 수 있어요. 그런데 한이 있는 노래니까 숲튽훈으로, 그냥 나오는 대로 소리치며 불렀어요. 그걸 가지고 평가를 받고 어쩌고… 노래를 제가 평가받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일단은 내가 울고 네가 울고 내가 웃고 네가 웃고 그러자고 하는 거지.


- 비켜나가는 질문일 수 있는데. 김장훈이란 가수가 인기가 많았던 건 샤우팅보다는 쓸쓸함이라는 감성을 잘 표현해서라는 거죠. 나와 같다면이 인기가 많았던 건 특유의 쓸쓸함. 가을 느낌. 샤우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감성이 아닌 거죠.

 그런데 ‘나와 같다면’을 사람들이 잘 안 좋아해요. 요즘 음원 망했다 하잖아요? 음원시장이 망해서 우리 같은 사람은 음원 1위를 못한대요. 앨범도 안 팔리고. 그런데 그와 반대로 좋은 게 있지 않을까요? 앨범이 잘 팔릴 때는 사람들에게 맞춰서 음악을 했을 거예요. 그래야 잘 팔리니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서 망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어차피 안 팔리는 거. (핸드폰을 꺼낸다.)
 


- 오, 갤럭시 폴드 쓰시네요.
 
 
 네. 얼리어답터 느낌이죠? 그게 아닌데. 하하하. 제가 이걸 산 이유는 바둑 두려고요. 바둑 한눈에 보는 게 좋아서 샀죠. 다른 이유 없어요. 폴더로 바둑 두니까 염색과 파마가 너무 쉬워. 정말 지겹잖아요. 그리고 유튜브 워낙 많이 보니까.


- 유튜브 계정에서 아리랑 삭제하셨다면서요? (디시 이용자 'ㅇㅇ')

 다시 올려달라고 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가리라는 친구가 그 영상을 올렸어요. 그런데 내가 올리면 그 친구 조회수 안 나올 것 같아서 안 올렸어요.


- ‘장훈 형님이 님 수익창출하라고 본인 계정에 안 올린다시네요’라고 댓글에 쓰여 있던데.

 네, 맞아요.


- 그거 유튜브 정책 상 안 될 거예요.

 그래도 조회수 많이 나오면 그 친구 파워가 올라갈 거 아니에요? 저야 유튜브로 먹고사는 사람도 아닌데.
 

- 대인배시네요.

 그게 아니라, 그거로 얼마나 번다고. (웃음) 다시 말하지만, 어떤 놈이 스태프 돈을 기부하나요? 전 공연해서 기부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저는 보너스 많이 줬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 그런데 정말 많이. 저 예전에 거짓 기부 기사 났을 때 누가 살려줬냐면 디스패치라는 매체였어요. 저는 디스패치 진짜 좋아해요.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거기는 가십이든 뭐든 잠복하잖아요. 이게 기자 아닌가요? TV 나오는 거 받아쓰는 게 무슨 기자예요. 거짓 기부 논란 때 디스패치에서 연락이 왔어요. 잘 됐다고, 있는 그대로 파달라고 했어요. 디스패치에서 한국은 좋지만, 미국에서는 조금 문제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도했어요. 

 거짓 기부 기사 나기 전에 미국 블로거가 저한테 메일을 보내 질문을 하더라고요. 이게 뭐야? 하고 무시했는데, 그냥 내더라고요. 그 블로거가 제기한 내용이 찌라시로 돌았는데, 저도 그거 받았어요. 그걸 인터넷 언론사에서 기사화했어요. ‘기부 대신 강연’ 이렇게… 그때 사실 사이버 수사대 갔었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싶어서요. 그런데 안 했죠. 

 이후 디스패치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기사 잘 나올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러고 뒤통수 치는 거 아니냐, 그럼 전쟁이다 했는데 감동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선행 팔로우하면 안 되나고 하셔서 짜고 치는 것 같다고 하고 거절했어요. 디스패치는 기자들 얼굴 안 보여줘요. 제가 고마우니까 몇 년 지난 후 ‘제가 김장훈 기사 쓴 디패 기자다’ 한마디만 하시라고 했어요. 그럼 그때 소주 한잔 하자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아나네요.’ 했죠. 
 

 사실 그때 제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변명하는 것도 싫고, 의혹 가짓수도 많아 하나하나 다 할 수가 없었어요. 일단 한국에서 있었던 기부 활동은 아무 문제없었어요. 또 하나, 제가 남의 돈 받아서 한 것도 아니고 내 돈으로 하는데 무슨 거짓 기부인가요? 제가 200억을 기부했는데 미국에서 2억 가지고 이미지 포장할 게 뭐가 있어요? 문제는 그걸 해명하다 보면 교민 사회를 비난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내가 교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꼴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냥 하지 말자 했어요. 

 외국 갔을 때 저는 로비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일본은 로비를 많이 해요. 우리나라는 안 하는 편이고.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친한파를 많이 만들었어요. 교민들하고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교민이 800만인데 그분들이 하루에 한 번만 좋은 행동을 한다면 1년에 한국 브랜드가 얼마나 좋아질까. 문제는 중간에 있는, 예전에 알던 동생에게 10만 달러를 줬는데 그걸 중간에 자기가 다 써버렸어요. 제가 소송 걸 수도 있는데 안 했어요. 한때 저한테 고마웠던 동생인데. 구질구질한 거 싫어요. 또 귀찮아요. 고소하러 왔다 갔다 하고 지장 찍고 이런 거. 이거로 내가 망하게 되면 고소해야겠지만, 이걸로 망할 것 같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안 밝혀진들 어떠한가요. 저는 사람 돈 떼먹지는 않아요.


- 정정하고 싶은 알려진 사실 중 하나가 그거라면 또 하나는 뭘까요?

  스태프 돈을 기부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거 노동청에 걸려요. 모르는 사람 챙길 거 스태프 더 챙기지. 200만 원 줄 거 400만 원 주지. 어제 한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갔어요. 28년 된 기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여기 이십몇 년 된 수금하는 여자 직원분이 계시는데, 제가 미수금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왜 그 얘기 안 했냐고 하니까 ‘언젠가 또 오시겠죠’ 해서 안 했대요. ‘형이 옛날부터 밑에 어시 애들을 항상 더 챙겨주고 그래서 여기 거쳐간 애들은 형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더라고요. 전 기억 안 나는데. 추석 같은 날 제가 급하게 녹음해야 해서 고향 못 가는 친구가 있으면 50만 원 따로 찾아서 줬던 거는 기억이 나요. 녹음기사 말로는 그걸 안 받은 애가 없대요. 

 아까 이야기했듯 저는 택시 탔을 때 2만 원 나오면 무조건 5만 원 드려요. 최대한 겸손하게. ‘저도 요즘 자숙하느라 돈 없는데 이거 사모님하고 삼겹살 드세요. 김장훈이 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인증샷도 찍으셔야죠’ 하며 택시 앞에서 같이 사진 찍고. 그렇게 5만 원 주고 10만 원 주고, 발렛 주고, 이모들 봉투에 돈 넣어 드리고. 너무 과한 거 아니냐고 주변에서 그래요. 그러면 ‘내가 10만 원씩 1년에 100번 드리면 1,000만 원인데, 100번 했을 때 한 가족이 3명이라고 해. 그럼 300명이 3일은 행복하지 않을까? 그게 10억 기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라고 해요.

 10억, 20억 기부하는 건 저한테는 와 닿지 않아요. 그냥 통장에 왔다가 나가니까. 그거 정리해주는 노 대표라는 친구가 있어요. 친동생 같은 놈이죠. 저는 제 통장번호, 계좌번호, 비밀번호 몰라요. 그 친구가 알아서 다 해줘요. 장부 보여줘서 마이너스면 나를 돌려, 플러스면 좀만 놀게. 저는 이게 끝이죠. 제 복이죠. 제가 계산해야 하는 건데, 그건 가족도 못하는 거예요. 가족이 그 돈 다 써버리면 어떡할 거야. 고소도 못하는데. 그런데 남은 긴장을 하죠. 저는 믿어요. 김장훈 성질 거지 같아, 변태야. 그렇게 말하는 거 다 좋아요. 그런데 돈 가지고 치사한 거 저는 못하겠어요.


- 싸이 씨와는 아직도 사이가 안 좋나요? 일방적으로 김장훈 씨가 싸이 씨를 안 좋아한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죠. (디시 이용자 '스미조메', '숲튽훈')

 세 시간 동안 통화하고 그랬어요. 요즘.


- 사이가 나빴다가 좋아진 건가요? (디시 이용자 'ㅇㅇ')

 그렇죠. 예전처럼 살갑게 만나고 그러지는 못하지만, 전화하고, 싸이가 마리텔 재밌게 본다고 하고. 요즘엔 잘 지내요.
 


- 같이 음악 할 생각은 있나요?

 그 이야기도 나왔어요. 언젠가 한 번 ‘완타치 리턴즈’는 해야 하지 않냐 이런 말도 나오고. 올여름 싸이가 본의 아니게 큰 문제에 말려 어려웠잖아요. 그때 공연에 게스트로 올라갈까 한번 생각한 적이 있었죠. 싫어하고 그런 거 없어요. (‘완타치’ 공연 끝나고) 제가 2년 후에 전화했어요. ‘재상아, 어차피 지나고 나면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형은 마음에 이제 아무것 없다. 너도 마음에 짐 있으면 내려놓고 잘 지내’ 그랬더니 ‘형, 요즘 받은 전화 중 가장 행복한 전화예요. 저도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살갑게 보지는 못하지만, 외국 생활 잘해’ 그렇게 했죠. 어떻게 보면 저를 위한 거였어요. 누가 죽도록 싫고 밉잖아요? 걔 오래 못살아요. 누구 미워한다고 걔가 망하나요? 안 망해요. 그런 놈들 잘 살아요. 그런데 미워하는 나만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미워하지 않아요. 다 내려놔요.


- 한번도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없나요?

 있어요. 하지만 내려놓는 거죠. 이제는 화도 안 나고, 미워하지 않고 불쌍해하죠. 저를 심하게 괴롭히는 사람이 있잖아요? 주변에서 막 어떻게 하라고 그러는데 그 사람은 저한테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환자예요. 돌봐줘야 할 사람. 내가 돌봐주는 건 그렇지만. 언젠가 저 병이 고쳐지기를 바라는 거죠. 악플? 어떻게 5,000만에게 다 사랑을 얻나요. 공연장에 사람들이 채워지고, 방송국과 행사장에서 저를 불러주면 되어요.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욕하고, 좌빨이라고 하는데, 메르스 때 대구가 직격탄을 맞았어요. 저 그때 대구 재래시장 가서 공연했어요. 당시 거기 어르신들, 저한테 뭐라고 한 마디 안 하셨어요. 어느 곳에서도 저한테 나쁘게 하신 분, 뭐라 하신 분 없었어요. ‘어이구, 좋은 일 하시고 계세요’. 이러셨지. 

 저는 분석가고 기획자예요. 제가 아까 통장 번호랑 계좌 번호 모른다고 했잖아요? 제가 돈 관리를 못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가뜩이나 공연 기획하고 연출하는데 머리 쓰는데,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으면 노래 어떻게 하나요. 저 예전에는 디자인, 작전 전부 제가 짜고, 뮤직비디오 찍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 놨죠. 하지만, 이번에 제가 새로 활동하는 ‘하얀 말’이라는 노래는 제가 다 기획해서 하는 거예요. 

 기자님, 사람 많이 만나봤잖아요. 김장훈이라는 사람 진짜 골 때리는 사람이구나, 저게 진짜일까? 이런 생각도 드실 텐데 지금까지 보신 저는 진짜 저예요. 저 거짓말 안 해요. 인생에 있어서 전 지금이 제일 좋아요.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화나는 것도 없고, 마음이 평온하고, 몸이 아프지도 않고, 예전 같으면 들어 엎었을 일인데 좋게 이야기하고. 사실 나눔 공연 가면 그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이 엉망이에요. 공연이 두 시간 딜레이 되기도 해요.


- 그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평지풍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후자 같아요. 전과자가 감옥에 가서 선교받아 목사 되는 경우 있잖아요? 원래 극으로 갔던 놈이라 이쪽으로 확 바뀐 것 같아요.


- 그럼 오히려 옛날의 굴곡졌던 것들이 고마울 수도 있겠네요.

 재산이죠. 자살 시도라든가, 집 망했던 거, 아버지 없이 살았던 모든 것들, 차마 말할 수 없는 모진 사건들과 시간들. 베르베르가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자기는 시를 쓰기에 모든 조건을 가진것 같다고. 저는 노래하기에 모든 조건을 가진 것 같아요. 아플 만큼 아팠어요. 춥고 배고픈 건 말할 것도 없고, 노숙도 하고, 직업을 40가지 정도 가진 것 같네요. 룸싸롱에서 오브리(손님 뒤에서 손님 노래에 맞춰 연주하는 것)도 해봤고. 저 룸싸롱 같은 데 가면 웨이터들에게도 30만 원 정도 줘요. 제가 웨이터도 해봤거든요. 고생 많이 해요. 진짜. 

 저는 사람에게 편견을 갖는 건 없어요. 예를 들어 손이 없으신 분을 만나잖아요? 저는 팔에 악수해요. 그런 분들을 많이 봐서 그래요. 제가 다음주 수요일에 김장 봉사를 하는데, 그게 2회째예요. 매년 정례화하려는 행사를 분기별로 하나씩 하는데, 바자회 하나 할 거고, 장애인 행사 하나 할 거예요. 그다음에는 매달 하나씩 12개의 연례행사를 하려고 해요. 

 제가 장애인 관련 행사를 하려고 하는데, 가제가 ‘다나와 페스티벌’이에요. 장애인 숫자가 진짜 많아요. 그런데 밖에서는 안 보이잖아요? 안 나오는 거예요. 시선 때문에. 다 나오라고요. 다 나와서, 다 섞여서 개판으로 놀아보자고요. 장애인 비장애인 이런 단어도 필요 없고. 저 소록도 공연 갔을 때도 뽀뽀 다 해드렸어요. 저는 아프리카 갔을 때 필요하면 쓰레기도 먹었어요. 어차피 가기 전에 주사 맞았잖아요. 병 걸리면 치료 받음 되고, 치료 안 되면 죽는 거고. 그런데 쓰레기 주워 먹은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물 한국에서 가져와서 먹은 스태프들은 다 설사했어요. 생즉사 사즉생인 거죠. 저는 노숙을 또 많이 해서.
 


- 뭘 그리 노숙을 하셨나요. 하하하.

 고등학교 잘리고 가출했었으니까요. 제가 초등학교 3년까지 몸이 약했으니까 인격적으로도 굉장히 약했어죠. 학교 잘리고 집 나와 돌아다니며 험한 세상을 겪다 보니 이렇게 됐죠. 사실 제가 엄청 겁이 많거든요. 겁쟁이었어요. 사람들은 안 믿더라고요.


-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요.

 대학 때도 투쟁하면 선봉 서서 치고박고 그랬는데 겁이 진짜 말아요. 싸움도 못해요. 그런데 ‘지금 당장 눈앞에 다가오는 물리적인 압박과 피해, 뒤끝들, 감옥에 갈 수도 있고 가족이 다칠 수 있어. 그게 겁나’ 그것과 ‘이 모든 걸 하지 않고 나중에 갑자기 자다 깨 창피해한다면?’ 저한테 ‘어느 게 더 겁나?’라고 물으면 전 후자가 더 겁난다고 해요. 그래서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거예요. 생각 많으면 못해요. 그래서 지금은 겁이 없어졌어요.


-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쪽팔리지 말자?

 네. 쪽팔리기 싫어요.


- 본인에게 가장 쪽팔린 건 뭐예요?

 돈 가지고 치사한 거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 평생 직업을 가져 정말 다행이신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저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돈 주는 거가 제일 좋아요.


- 어머니는 걱정 안 하세요?

 걱정보다는 안쓰러워하죠. 우리 식구들이 제가 사고를 쳐도 뭐라 안 해요. 우리 엄마도 ‘예술하는 놈이 그런 거 있어야지. 그리고 걔가 모르고 했겠니? 생각이 있을 거야’ 하세요. 대차시죠. 그런데 이제는 83세세요. 미안하죠. 제 팬들에게도 그렇고. 하지만 저는 하기 싫은 거 안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서 지금 죽어도 원이 없어요.


- 조금 더 돈을 모으고, 조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어렵게 사시나요?

 장기적으로는 의도였을지 모르는 게, 저는 편안하면 노래 못해요. 저는 벼랑 끝에 있어야 노래가 되는 사람이에요. 제가 추구하는 건 끝까지 가는 거. 바람이 불고, 옷은 너덜너덜하고, 맨발에 벼랑 끝에 제가 서 있어요. 저는 바람에 지지 않고, 역풍을 맞으며 바람 안 쪽으로 계속 들어가려고 하다가 인생이 끝날 거예요. 벼랑 끝에서 인생이 끝나는 게 모든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할 때는 멀쩡하죠?


- 오늘 충분히 멀쩡하세요. (웃음)

 제가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노래는 생각의 반영이고, 생각은 생활의 반영이라고. 이런 노래를 하려면 이런 생각을 해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려면 그런 생활을 해야 해요. 제가 공연비를 4만 4,000원으로 한 이유가 있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형이 그렇게 싸게 받으면 안돼’.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를 생각해봐요. 그때는 모텔도, 레스토랑도 가격이 두배야. 그럼 못해도 5~60만 원을 써야 해요. 그런데 4만 4,000원에 공연을 보고, 커플로 오면 페어 할인해 줘서 한 7만 5,000원을 쓴다면? 그럼 정말 맛있는 거 먹고, 영화 한 편 보고 깔끔하게 데이트할 수 있요. 중요한 날 데이트 비용을 10만 원 안에서 해결해 주고 싶어요. 돈은 다른 거로 벌 수 있어요. 3,000번 공연을 사람들이 채워줬으니 이제는 봉사하는 거죠. 

 이것도 있어요. 노래가 지겨워지니까 공연만큼은 낭만으로 하자, 돈벌이가 아니라 취미로 하면 설레니까요. 몇 명이 들어와야 하고, 어떻게 하고 이거 따지다가 스트레스 받아 무너져요. 저 복귀했을 때 150석으로 시작했어요. 홍보도 안 하고. 지금은 200석, 250석으로 늘렸어요. 3만 명 동원하던 사람이 200석 한다니까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추례해 보이지 않을까’.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큰 공연장에서 컴백하는 게 멋있어요? 뭐가 큰 공연일까요? 


- 글쎄요. 공연을 안 해봐서 모르겠네요. (웃음)

 체조경기장? 주경기장? 관객 5만 명? 큰 공연장? 그건 그냥 큰 공연장이지 큰 공연은 아니에요. 전 80석부터 5만 석까지 다 해봤어요. 주경기장 공연을 객석 입장에서 생각해봐요. 3층에선 보이지도 않아. 감동이 커야 하는데 감동이 안 와요. 규모가 작을수록 큰 공연이에요. 관객 입장에서 가장 큰 공연은 나 한 명을 위해 가수가 노래해주는 거일 거예요. 제가 150석을 하잖아요? 진짜 큰 공연이에요. 뒤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보여. 음향적으로도 큰 공연을 하면 소리를 인위적으로 채울 수 있어요. 하지만, 작은 곳은 속일 수가 없어요. 사운드를 못 키우니까요. 저, 신인 때는 그것도 못 채웠어요. 50명 오고 60명 오고 그랬어요. 그러다 조금씩 늘면서 100명 오고 200석으로 늘린 거죠. 재밌더라고요. 처음에 유료가 2명이었어요. 2명에서 5만 명까지 간 거죠. 제가 체조 입성해서 매진시킨 게 딱 10년째였죠. 그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요. 그때는 히트곡도 없었잖아요. 100회 공연 중 75회 했는데 그거 마저 하고 2,000석 공연하고, 다음에 올림픽홀, 체조경기장 가고 한 2022년 정도에 주경기장으로 가서 연출의 끝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빨리 가고 싶지 않아요. 
 

 ‘올 겨울에 열심히 해서 체조 한 번 가봅시다’ 이랬던 적이 있어요. 제가 2000년에 부산 KBS홀, 서울 펜싱경기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게 제 최초의 큰 공연인데, 망했어요. 350석 공연장에서 40회 했는데 한 방에 매진되는 상황이었는데도 4,000석이 안 차는 거예요. 제가 큰 공연을 안 하고 소극장 공연만 했으니 큰 공연에 대한 신뢰도가 없는 거였죠. 그래서 그 공연에 모든 걸 넣었어요. 큰 공연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줬죠. 그 해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했는데, 바로 매진되었지요.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요. 나폴레옹이 ‘이 산이 아니었나 봐’ 했던 것처럼요. 체조경기장 입성하면 다 이뤘다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뭔가 아니야, 채워지지가 않아요. ‘아, 이게 아니구나’ 했어요. 그때부터 생각이 깊어졌어요. 어떤 게 진짜 큰 공연인가, 공연이란 건 뭔가 그때부터 생각했죠. 

 연출 하나하나에 철학을 담았어요. 남들이 볼 때는 그냥 날아가는 거지만, 거기에 담긴 철학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열흘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휴머니즘에 자본주의까지. 와이어 하나에 우주가 나오죠. 거의 사기꾼이지. (웃음)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모든 것들을 다 관객을 위해서.


- 인터뷰 준비하면서 봤더니 거실라이브? 40명 정도 모아서 하셨다면서요? 그게 제일 좋았다 하더라고요. 가수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으니까.

좋죠. 제가 이런 이야기했어요. 소극장 우습게 보지 말고 많이 하라고요. 요즘은 신인들도 큰 공연장에서 하잖아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큰 공연은 소모품 같고 소극장은 소장품 같아요. 마이클 잭슨처럼 한 달씩 리허설하고 공연해야 하는데 그렇게 준비해 1, 2회만 하면 아무리 잘해도 실수투성이로 끝날 수밖에 없어요. 소극장은 큰 공연장에 비해 준비할 게 적어요. 하루가 모자라면 다른 하루에 채우고. 전체가 하나로 되죠. 소극장이 진짜 어려운 게 소극장은 진짜 진검승부예요. 대극장 쉬워요. 말도 많이 안 해요. 노래만 부르고, 사운드도 빵빵 잘 나와요. 그런데 소극장은 울림 효과를 못 넣어요. 그냥 내 목소리로 해야 해요. 각 잡고 하죠. 소극장 하다 보니 큰 곳에 대한 열망도 생기더라고요. 야외 공연도 하고 싶고. 아무래도 큰 울림과 관객과 하나 되는 게 있으니까.

 공연 전에 요즘 나이가 들어서 연령대가 높아져서 뛰는 건 어떡하지 했는데 숲튽훈 터지는 바람이 중고등학생들이 단체관람을 와요. 지난 번에 정말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제 공연에 어린이들이 많이 와요. 7~8살 아이 둔 엄마들이 타겟층이니까. 애들한테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용돈을 주기 시작했어요.


- 아니 왜 줘요. 하하하.

 애들이 안됐잖아요. 그래서 3만 원씩 줬어요. 제가 음력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해요. 재밌지 않아요? 크리스마스가 너무 허전한 사람들 있잖아요. 할 거 많지 않아 더 쓸쓸해. 그래서 음력 크리스마스 공연을 했는데 애들이 16명이 왔어요. 48만 원 나갔어요. 저 지금까지 애들 용돈으로 준 게 1,70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세계 최초 제작비에 애들 용돈이 포함된 공연. 하하하. 그런데 지금은 안 줘요. 

 고양시에서 공연하는데 중학생들이 보이는 거예요. 내 공연 온건 아니겠지 했는데 저한테 오더라고요. 공연 간대요. 노래가 좋대요. 허니랑 소나기 좋아한대요. 그래서 허니 안 부르려고 했는데 불러준다고 했어요. 제가 3만 원씩 주면서 가서 카레 먹고 와. 했죠. 그런데 4만 4,000원 공연에 학생 할인하면 2만 2,000원이잖아요? 8,000원 남네? 그중에 10번 온 놈이 있어요. 현준이라고. 제가 걔한테 ‘너 지금까지 나한테 8만 원 받았지? 그거 때문에 공연 오는 거야?’ 하니 맞대요. 하하하. 정말 귀여워요. 한 놈은 키가 좋대요. 그래서 노래 키가 좋다고? 그러니 ‘아니요. 신장이요’ 그러더라고요. 하하하. 
 

 아까 이야기한 7~8살 애들한테는 어떻게 용돈 주냐면 ‘졸리지? 그냥 자’ 그러고 줘요. 그리고 귓속말로 무슨 말 알려주고 그걸 크게 말하라고 해요. 그럼 애들이 '저금한다고 뺏어가지 마세요', '용돈이랑 퉁치지도 마세요' 그래요. ‘엄마가 용돈뺐으면 신고 해. 그럼 엄마 못 오게 할 거야’ 그랬어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저금한다고 뺏어간 돈으로 모으면 집을 샀다. 그래도 애들 무대 올라와서 놀라고 해요. 30명 올라와서 ‘뛰어’ 그러면 같이 뛰고. 제가 피리 부는 아저씨처럼 돼요. 공연 정말 재밌어요. 

 저한테 최고의 칭찬이 뭐였냐면 전국 공연 이벤트 업자들이 꼽은 가수 1위. 김장훈은 어떤 무대에 올려놔도, 관객이 할머니든 누구든 분위기 잡고 내려온다, 그런데 초등학교 보이스카웃은 안되더라고요. 아니, 나를 거기 왜 부른 거야. 1998년 오페라 때였는데 고등학교인 줄 알고 갔더니 초등학교더라고. 객석으로 뛰어내려 갔는데 다 도망가. 아, 저 요즘에 고등학교 축제 많이 다녀요.


- 오, 초청이 와요? 숲튽훈 덕분이네. 축제는 보통 대학에서 섭외 오잖아요.

 오히려 안 와요. 대학은 걸그룹이나 아이돌 부르고. 고등학교는 그 정도 돈은 없으니까 만만한 게 나지.


- 안 그래도 거실 콘서트 때 학생들 불렀다면서요. 학생들은 공연 가는 게 어렵죠.

 2만 2,000원인데 거기에 용돈 주니. 나중엔 소문 나서 애들이 너무 많이 와요. 해도 해도 너무하지. 심야에 애들 16명 데려오는 부모가 어딨어요. 하하하. 소극장 정말 재밌어요. 방언 터지는 날은 진짜.


- 관객 무대에 올려서 노래도 시키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안 해요. 나 노래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리고 공연장이 정말 좋았던 게 밑이 바닥이고, 바닥과 무대 경계가 없어요. 세계 최초 일식집 등받이 의자에서 관객이 봐요. 처음엔 방석만 놨는데 허리 아프다고 해서 그거 가져다 놨어요.


- 독도킥 하기는 좋겠네요.

 그렇죠. 높아 보이지.


- 킥 연습하세요? (디시 이용자 'ㅇㅇ', '무적반수생', '토르')

 안 해요. (웃음)


- 최장 연속으로 몇 번 하셨나요, 독도킥. (웃음) (디시 이용자 'ssee')

 10번. 노래 부른 다음에. 지금은 못 해요.


- 그런데 왜 이렇게 독도에 관심이 많아요?

 독도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나요?


- 유독 많다는 거죠.

 저는 제일 싫어하는 게 갑질이에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차별하고 편견을 가지면 안 돼요. 저는 대화가 되면 상대가 노숙자든 누구든 상관없어요. 대화가 안 되면 돈이 많아도 저는 안 돼요. 제가 힘으로 사람 누르는 걸 제일 싫어해요. 저희 같은 가수는 돈 많은 회장과 친해지면 협찬도 받고 그러는데, 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런 분들 만나잖아요? 재수가 없는 거야. 저는 돈 많은 놈 중 멋있는 놈 만나보는 게 소원이에요.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의식 있는 사람들은 돈이 없고, 돈 있는 놈은 의식이 없고. 저는 어중간이고. 

 한 회장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가수인데 이 자리에서 제가 무대에서처럼 행동하면 이상하겠죠? 지금 회장님이 그러고 있어요. 저는 회장님 직원이 아니에요. 저는 회장님을 떠받들 필요가 없는데, 지금 하시는 행동은 아랫사람한테 하는 행동이에요. 그 태도를 바꾸실 거면 저 앉아 있고 아니면 저 집에 갈게요.’ 그랬어요. 하도 이상한 소리 해서 듣다가 ‘회사 망하실 것 같은데요?’ 이러고요. 욕 안 한 게 다행이죠. 

 그때 욕 사건 났을 때. 김장훈이 욕 했어, 인성 별로야 이러는데, 제가 주차 따위 때문에 유세부렸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아무 소리 안 했어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 밑에서 일어났었지만. 그런데 변명을 하다 보면 무대 위에서 있었던 일까지 합리화시키는 것처럼 될까 봐 좀 그랬죠. 그래서 페이스북에는 설명했어요. 그랬더니 ‘이게 무슨 반성이냐’ 그러는 거예요. 속으로 그랬어요. ‘이거 반성 아니고 설명이야. 상황이 이렇게 된 거라고. 그래 내가 안 한다고, 자숙한다고.’ 다만 억울한 건 ‘왜 나만 잘릴까’였죠. 

 전 어렸을 때부터 길거리 지나가다가 싸우는 걸 보는데 한 사람이 갑질 하는 것 같으면 껴들어요.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못 지나가겠어요 그러고 끼어들죠. 그럼 제가 그 싸우던 사람이랑 싸워요. 애들 때리면 저는 가서 뺨 때려요. 책에도 썼어요. 문방구에 바둑판 사러 갔는데 주인이 애를 때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주인을 때렸어요. 그냥 맞는 기분이 어떤지 느껴보라고. 애가 보복당할 것 같아서 애 학교 끝나는 시간이 몇 시인지도 물어봤어요. 약간 병이에요. 
 


 독도도 그런 거예요. 일본이란 아이가 한국이란 아이한테 나라가 강하다고 갑질을 하는 거예요. 왜 만날 우리나라한테 그러는 거야. 샌프란시스코 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51년 9월 8일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맺어진 평화조약이다.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일본이 포기한다고 명문화했다. 그러나 독도가 명기되지 않아 일본은 이를 근거로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으로 하잖아. 그리고 35년 동안 지배했으면… 진짜 뻔뻔하네. 그런데 이걸 가만히 보고 있어요? 어찌하다 보니 반크 홍보 대사가 되었고, 그다음에 의식이 생겼죠. 역사 공부도 하게 되고. 독도는 자신이 있었어요.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에요. 재밌는 건, 예전에 일본 대사가 직원들 데리고 공연 보러 왔었죠. 참, 일본에서 오시는 팬도 두 분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제가 특별히 관리하고 항상 잘해드려요. 어머니가 아프시다고 해서 영상 편지도 써드렸죠. 사람이 사람 미워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 인본주의자시군요.

 얼마 전 독일 친구를 만났어요. 아프리카 봉사활동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런 말을 했어요. ’내 국적은 휴먼 비잉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국적이 그냥 어린이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이 있냐고요. 제가 스와힐리어 공부를 하고 아프리카에 갔어요. 그런데 제가 간 곳이 영국령이어서 영어를 쓰더라고요. ‘라삐끼’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친구란 뜻이에요. 혹시 삐끼가 거기서 온 건가? (웃음) 애들이 다 ‘장훈 라삐끼’ 그랬어요. 다 친구예요. 

 속으로 미안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안 했어요. 한국에서 할 곳 많은데 굳이 나까지 갈 필요 있나 해서. 그러다 SBS와 남수단을 가게 되었는데 괜히 미안한 거예요.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봐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안 쓰는 게 아니라 일단 저는 제 자신 안에서 문제 해결하는데 바빠요. 내 양심에 창피한가, 떳떳한가. 제가 양심에 떳떳하다는 게 도덕성이 좋다는 게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양심은, ‘이건 도덕적으로 안 좋긴 한데, 내가 나쁜 놈 되는 건데, 그래도 가. 이건 내가 뒤집어 쓸게. 먼 훗날 내가 까이더라도 이건 가야 해’ 이거예요. 
 


 그렇다고 진정성이라는 것도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도왔는데, 어떤 사람은 사진 한 장 찍고 100만 원 냈어요. 그럼 100만 원 낸 사람 진정성 없나요? 아뇨. 있어요. 그 사람의 진정성은 100만 원 내고 사진 한 장 찍는 거죠. 진정성은 주관적인 거고, 옳고 그름은 아니라고 봐요. 진정성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게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제 진정성이 사회적으로 봤을 때 별로 옳지 않음에도 여러 가지 상황을 봤을 때 누군가가 해야 하는 거라면 내가 조금 구겨져도 그냥 가자. 그런 경우가 제가 양심에 거리낌 없다는 거죠. 그게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거 아니에요. 도덕적으로는 저 하자 많아요. 그래도 스스로 부끄러운 것 정도는 알아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연예인 하려면 남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고. 저는 벼랑 끝에 서 있어서 누가 이렇게 살라고 해도 바꿔 살 수 없어요. 저는 그냥 제 자리에서 살려고요. 다 그들만의 리그예요. 우리는 만화에서 스쳐가는 사람이야. 그렇게 진지할 필요 없고, 눈앞에 왔다 사라지면 그냥 가는 거고, 너희는 너희 대로 삶을 잘 살아가는 존재인 거예요. 서글플 것 같지만 전 그게 편해요. 여러분, 연예인한테 목숨 걸 필요 없어요. 제가 제 직업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제 운명을 스스로 결정 못하기 때문이에요. 은퇴하고 싶어도 저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은퇴를 못해요. 그리고 내가 가수가 하고 싶어도 인기가 없으면 활동을 못해요. 제 운명은 대중이 가지고 있어요. 정말 좋지 않아요? 꼴리는 대로 하다가 대중이 ‘그만 해’ 그러면 ‘네.’ 그러고 그만 하면 돼요.


- 서글프지 않나요?

 아니죠. 그만큼 원 없이 살아서 그래요. 치열한 삶이고 자기가 원하는 걸 다 하는 삶인데 인기라는 걸 붙잡고 사는 삶은 끝나면 억울해요. 해볼 거 다 못해봤으니. 그런 거 신경 안 쓰면 지를 거 다 지르고 원 없이 다 해요. 바닥 기는 그래프를 겪어본 사람만 알아요. 원 없이 했다는 게 뭔지. 원 없이 한 사람은 생명줄이 끊어져도 아쉽지가 않다는 걸 제가 느껴요.


- 지금 100% 원 없이 하고 있나요?

 네. 그리고 지금은 가식적으로 살고 있어요. 비겁하게. 굉장히 모범적인 사람처럼. (웃음) 여자 있는 술자리 안 가고요, 건물 한 세채 살 때까지는 조심하고, 욕 안 하고.


- 지금 몇채 샀나요?

 빚만 있어요. 마이너스예요. 세금을 갑자기 많이 땐 시기가 있었는데, 그게 컸죠. 싸울 수 있었지만. 돈 없는데 몇 억 내려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그거로 이지스함 사고 구축함 사야 하잖아요. 세금 내는 거 안 아까워요. 아직 많이 남았어요. 자숙하느라 돈을 번 게 없어서. 저 지인들이 준 돈으로 살았어요. 돈 하나도 없었어요. 지인들에게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정말 잘 될 거예요. 제가 사업을 3년 동안 준비하는 게 있는데 예전 같으면 벌써 했어요. 내후년에 할 건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업이고, 내가 하는 사업이라고 안 알릴 거예요. 사업 자체 아이템으로 키울 거예요. CSV라는 게 있어요. CSR은 이익이 났을 때 돈을 기부하는 거라 마음이 바뀌면 안 내고 그러는데, CSV는 매출 단계부터 기부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신발 사면 신발 하나 기부하는 거. 그게 우리나라에는 잘 없는데, 그런 거를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했어요.

 ‘형 성격으로 사업할 수 있겠어? 머리 숙여야 하는데?’ 그러는데, 저는 그게 직업이라면 철저히 해요. 지금은 예술인이 직업이니까 굳이 제가 높은 사람들에게 머리 굽힐 이유 없잖아요? 예를 들어 국회의원, 돈도 내가 많이 벌고, 선출직에 지역구인데. 저는 전국구예요. ‘의원님, 저쪽 가면 반찬도 못 얻어먹죠? 전 저쪽 가면 반찬 더 받아요. 그런데 왜 제가 당신한테 그런 이야기를 듣나요?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마시고 식사하세요’ 그러죠. 누가 저보고 국회의원 선거 나가라고 하는데, 국회의원 되면 1개월 만에 잘리겠죠. 국회의원 폭행죄로. 일단 10명은 때리고 시작할 것 같아요.


- 실제로 제의 오나요? (디시 이용자 '추노')

 예전엔 많이 왔어요. 지금은 안 와요. 그 이유를 어떤 기자가 알려줬는데 블랙리스트 때 성향 조사한 게 있었대요. 제가 좌성향 2등급이래요. 왜냐,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독도에, 연평도 폭격당했을 때 북한 이놈들 먼저 타격해야 한다고 난리 치고, 세월호 때는 선봉에 서서 날라차기하고. (웃음) 세월호 1주기 때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 단식할 때였는데 가족들 다칠까 봐 뒤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에 밀려서 앞으로 갔잖아요. 내가 그렇게 밀지 말라고 그랬는데. 제가 앞으로 가려고 해서 간 게 아니에요. 전 뒤로 가려고 했는데 갈 수가 없어. 뒤에서는 김장훈! 소리 지르고, 저는 나가야 되니 밀지 말라고 하고. (웃음) 그때가 단식 20일째였어요. 아, 그때 저 행사 한 번도 펑크 안 냈어요. 가슴에 단식일수 쓰면서 공연했죠. 그래서 공연했던 게 기억이 안 나요. 하다가 너무 못하겠으면 마이크 관객석에 돌렸죠. 애들이 그거 4초 창법이라고 하더라고. 하하하.
 

- 김장훈이니까 가능하다 했겠죠. 힘든싱어에서도 그랬잖아요.

 이번에 복면 가수에서도 묵음 창법 해서 코러스한테 마이크 돌렸죠. 부르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창법. 하하하.


- 유쾌한 이미지로 바뀌어서 다행이네요.

 맞아요. 너무 좋아요. 저는 투쟁의 에너지도 있고 사랑의 에너지도 있어요. 극과 극인데, 두 가지 다 하는 건 힘들어요. 나이도 인정해야 하고. 청와대 100m 앞에 가는 것보다 밥 먹어야 하는 아이 2m 앞에 가는 게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제 에너지를 밝은 쪽에 쓰고 싶어요. 그리고 할 만큼 했어요. 절대 행복, 절대선은 나눔 밖에 없어요.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힘들지 않아요. 요즘엔 그런 행사 있으면 설레요. 두근거려요. 복지사님들 만나는데, 표정 좋으시겠지? 그분들께 ‘저는 동업자예요’라고 이야기해요. 장애인 분들 만나면 편하고. 

 전문가들과 이야기할 때 전 항상 이렇게 말씀드려요. ‘시설이 먼저입니까, 시선이 먼저입니까. 시선이에요’라고. 장애인 분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시선이 안 좋으면 안 나와요. 시선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방송이죠. 드라마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주인공 나올 때 배경 거리에 장애인 나오는 거 봤나요? 의도적으로 나와야 해요. 저는 그게 안타까워요. 그게 어렵나요? 


- 지역 행사도 많이 하시죠?

 얼마 전에 부안에 갔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갔는데 부안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하루 동안 연구해 결과를 발표하겠다 하고 다음날 군의원장님, 지사님한테 이야기했더니 너무 좋다고,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모든 것들을 재밌는 나눔으로 섞어서 해보자, 마치 언박싱하듯. 시골 가서 행사하면 거기 특산물 달라고 하고, 제가 그걸 언박싱하는 영상을 올리고, 제품 판매하는 곳 전화번호 알리고. 직거래하라고 홍보해주는 거죠. 군청에는 영상 마음껏 쓰시라고 하고요. 유통단계로 사실 힘든데, 그러면 좋잖아요. 제가 지자체 홍보대사처럼 유튜브로 ‘이런 게 있네? 좋아요’ 제품 알리고, 이벤트도 하고. 


 완주군에서 ‘와일드 푸드 페스티벌’을 해요. 그럼 뭔가 랜드마크가 있어야 하잖아요? 건강 관련이니 5km 정도 달리기 대회를 하는 게 어떨까요? 완주 내 아름다운 곳을 지나는 코스를 짜서, 코스 중간에 힘들 때마다 먹으라고 특산물로 만든 즙 같은 것들 놓고. 참가비는 5,000원 내서 나눔도 하게 하고. ‘완주 마라톤대회 꾸지뽕 먹고 완주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어때요? 괜찮지 않나요? 그렇게 재밌는 나눔으로 승화시키는 거죠. 저는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워야 해요. 김장행사도 은평구 복지사들과 한솥도시락에서 도와줘서 하는 거예요. 요즘 몸이 근질근질해서 빨리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교복 비싸다니 교복 관련 행사도 하고 싶었고, 한 소셜 커머스와는 오랫동안 나눔 생리대도 준비했었어요. 제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제가 인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 그럼 마지막으로 저희 이용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디시라는 세상 안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 숲튽훈을 만들어준 야갤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제가 지금 나눔을 하고, 스스로 잘 살려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것에 대한 감사함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의도야 어쨌든 야갤에서 누군가 만든 것 그 하나 때문에 제가 이런 상황이 되어서 정말 고마워요.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돈 줄 수도 없고. 잘 살아야겠더라고요. ‘숲튽훈으로 생기는 걸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하나님이 주신 기회니 이걸 더 좋은 데 쓰고, 좋은 사람 되려고 노력하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다들 야갤이 세다고 하는데 그들만의 리그잖아요? 그렇게 즐겁게 사세요. 그런 곳도 있는 거죠. 그리고 가장 큰 고마움은, 숲튽훈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걸 떠나서 제게 자유로움과 너그러움을 줬어요. 굳이 ‘안티를 내 팬으로 만들자’ 이런 게 아니라도 조금 더 마음을 넓게 쓰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걸 캠페인적으로 알릴 수 있고. 생각해보면 야갤 애들이 누굴 죽이려고만 했지 살리려고 한 적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살린 케이스 하나를 만들었어요. 그게 저예요. 야갤 애들이 ‘우리 만든 숲튽훈을 까? 우리가 자존심상 못 참지’ 그러는데, 참 일이 될려니까 이렇게도 되더라고요. 그러다 정드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저에게 안티가 나쁜 이미지가 아니라 정겨운 이미지예요. 오죽하면 제가 안티 할인을 하겠어요. 사실 장난도 있긴 하지만 ‘다 같이 재밌게 살자’ 이런 의도도 있어요. 저 다른 가수들이 정말 부러워해요. PD들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하다 보니까 유의미한 곳까지 올라간 거예요. 어쨌든 숲튽훈 만들어준 거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리고 없는 것 가지고 한 거 아니잖아요? 있는 거 가지고 한 건데. 제가 팬들한테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팬들 너희 하는 일 뭐 있어? 야갤 애들은 자료 모으고, 편집하고, 자막 달아서 영상을 올렸어. 그거 만들려면 정성을 들여야 해. 너희는 공연 와서 편하게 보기만 하고. 걔들을 본받아’. 공연장에서 그랬어요. 그리고 그거로 고용창출하잖아요. 그 친구들이 제 영상 올려서 2~300만 원 정도는 벌었으면 좋겠어요. 몇만 원이라도 벌면 얼마나 좋아요. 숲튽훈으로 청년실업도 해결하고. 그리고 단어에 ‘숲’이 들어가는 게 너무 좋아요.


- 안 그래도 공연 간다니까 피톤치드 받고 오라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하하하.

 그리고 아까 ‘숲’ 영상 올리는 친구랑 둘이 노래 부르니 ‘숲과 숲의 만남 여기는 노르웨이’ 이래요. 댓글들이 작살이야. 하하하. 대한민국은 김장훈 보유국 이러고. ‘천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가수’라는 댓글이 달리니 ‘천명에 한 명도 나오면 안 될 가수’ 이러고. 천재들이야. 제 스타일리스트는 하루 종일 댓글만 본대요. 너무 웃겨서. 마리텔에서도 제 방 댓글이 정말 재밌대요. 야갤 애들이 넘어와서 쓰는 건데, 그 친구들에게는 그게 놀이인 거죠.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서로 드립 치는 놀이. 재치 있게 안 치면 밀리니까 지기 싫어서 하고. 너무 웃겨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그래서 방송작가들이 제 댓글창 엄청 봐요. 아이디어 얻으려고.
 

- 이용자들이 더 열심히 치겠다.

 누가 댓글에 ‘우울하면 유튜브에 숲튽훈 쳐봐. 하루는 재밌게 놀아’ 써놨더라고요. 혹시 ‘위플래시’라는 영화로 제 패러디 영상 만든 거 보셨어요? 영화 속 교수와 제가 티키타카 하는 영상인데 고퀄이야. 너무 잘 만들었어. 솔직히 디시나 야갤을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연예인은 저밖에 없지 않을까요? 다들 두려워하는데. 저는 전부터 그랬어요. ‘김장훈이 뭐가 좋아?’ 그런다고 뭐라 할 필요 없어요. 거긴 거기대로 노는 거고, 걔들이 저한테 목소리 곱다고 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그 친구들이 오프라인에서 얼굴 보면서 하는 건가요? 그게 익명의 장점이에요. 밑도 끝도 없이 우주의 모든 걸 까잖아요. 서로 다 까는 거예요. 10개 구단 다 까고. 서로 까다 보니 '그래도 우리가 LG팬보다는 덜 상처 받겠지' 이러는 거죠. 


- 긴 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영상 인사말 남겨주세요.
 

  집에서 TV를 보다가 한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내가 왜 김장훈 인터뷰 추진을 안 했지? TV 속 김장훈은 숲내투어를 간다며 사이렌 소리로 목을 풀고 있었다. 아니, '숲내투어'라니. 방송을 보니 김장훈은 '숲튽훈'을 사랑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인터넷을 검색했다. '김장훈의 숲튽훈 콘서트'라며 '숲서트'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개최하고, 여러 방송에 나와 '숲튽훈' 덕분에 인기를 얻었다며 행복해했다. '숲튽훈'을 좋아한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은 당장 전화기로 향했다. 실제로 김장훈 측은 인터뷰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고, 디시 직원들은 김장훈 인터뷰 확정 소식에 야갤러들이 좋아하겠다며 큰 웃음을 터트렸다. 

  햇빛 쏟아지는 오후에 시작한 그와의 인터뷰는 하늘이 까맣게 바뀐 저녁에 끝이 났다. 약 세 시간 정도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마음에 담아뒀던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덕분에 하고 싶었던 질문들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었고, 듣고 싶었던 말도 들을 수 있었다. 

  팬이 아닌 사람이 봐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비아냥과 조롱이었던 '숲튽훈'에 그는 환호했다. 그랬더니 네티즌들도 환호했다. 김장훈이 말했던 것처럼 계속 까다가 말렸을 수도 있고, 웃음 영상으로 보다가 팬이 된 것일 수도 있다. 길은 여러 가지지만, 결국 그 길의 끝은 '숲'이었다. '숲튽훈'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모두 숲 안에서 피톤치드 받으며 즐겁게 어울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