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人터뷰] 개죽이가 돌아왔다!

 2000년 초, 디시인사이드가 '디지털카메라 인사이드'였던 시절. 이제는 방송이나 일상 생활에서 이미지를 지칭하는 용어로 흔히 사용되는 '짤', '짤방(갤러리에 사진이 없으면 게시물이 삭제된다하여 올렸던 짤림방지 사진의 준말)' 이라는 용어가 처음 디시에서 만들어져 쓰이던 시기.

 당시 유머 코드였던 '엽기'와 '합성'이 가미된 짤들은 합성, 엽기 갤러리를 통해 대량 생산됐고, 이슈나 사건을 통해 디시에서 이용자들의 공감대를 얻은 캐릭터들은 ‘합성 필수요소’라는 이름으로 합성에 꼭 들어가야 하는 필수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해 재미와 웃음을 공유하는 이용자들만의 놀이 방식이었다. 그렇게 디시에서 만들어진 짤은 전 인터넷 사이트로 퍼져 인기를 끌던, 참으로 아햏햏한 시절이었다.

 그 중 디시 1티어라 할 수 있는 합성필수요소는 개벽이에 이어 등장한 개죽이였다. 대나무에 사람처럼 매달려 있는 귀여운 외모의 개죽이는 이용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합성필수요소로 등극한 개죽이는 이용자들의 손을 거쳐 웃는 개죽이, 플라잉 개죽이 등 다양한 캐릭터로 발전했고, 디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시위행사의 깃발 위에, 투표부대의 포스터 캐릭터로 가끔은 방송에도 등장하게 된 개죽이는 디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개죽이는 알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 개죽이와 개벽이

 당시 개죽이를 탄생시킨 일명, '개죽이 아빠'로 불리던 이용자 닐스님 또한 단순히 개죽이 아빠여서가 아닌 고퀄리티의 영상 제작과 뛰어난 합성 실력으로 힛갤에도 여러 번 등록된 능력자로 이름을 알렸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처음의 디시인사이드를 떠올려보며, 당시 네임드급 이용자로 활동했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닐스님을 만나보았다.

 

-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래전 활동하셨으니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컴퓨터 그래픽 다자인을 하고 있는 권한일입니다. 인터넷에 개죽이로 알려진 사진의 저작권자이고 당시 디시 카툰 연재 갤러리에서 Nills(닐스)로 활동했습니다. 2002년부터 개죽이와 햏권브이 등 캐릭터를 활용한 합성 저작물, 컷 만화 등을 연재했었습니다. 5년 정도 글과 그림도 자주 올리고 정모와 출사도 열심히 참석 했었죠.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010년에 결혼을 했고 지금은 초등학생 둘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케이블TV 방송국, 영상 제작업체를 거쳐 지금은 온라인 마케팅을 주로 하는 광고 기획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SNS와 유튜브 영상 제작을 담당하고 있고요. 가끔씩 사진촬영과 그림을 취미로 그리고 있습니다.
▲ 닐스님이 제작한 광고 영상

- 당시 개죽이가 방송이나 언론에 소개 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후에 이렇게 인기 얻을 줄 알았다면 다른데 분양 보내지 말 걸 그랬다고 적으신 걸 봤어요.

 신기하기도 했고 어딜가도 개죽이 아빠로 통하게 된 것이 즐거웠습니다. 일생에 한 번 찾아오기 힘든 행운 같은 느낌 이랄까요? 당시엔 갓 상경한 자취생이라 강아지를 키울 환경이 안되어서 분양을 했었는데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아마 제가 키웠다면 동물농장에도 출연했을 겁니다. 실제로 섭외가 오기도 했었구요. ^^

▲ 개죽이

- 디시인사이드에서 처음 활동하던 당시를 회상해 보신다면요?

 2000년 무렵엔 디지털카메라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디시도 디카(Digital Camera)의 이니셜이란 걸 요즘 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필름으로 찍어 현상하고 스캔을 받아야만 컴퓨터에서 편집이 가능했던 당시에 디지털카메라는 혁신적인 장비였습니다. 이젠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죠.

 수많은 디시의 갤러리에 올라오는 사진들과 재미있는 밈, 댓글 등은 당시 어떤 포털에서도 경험할 수 없던 독특한 문화였습니다.

▲ 과거 디시인사이드 메인

- 초기 디시서 활동하셨던 네임드급 이용자이신데 지금의 디시 분위기와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저는 거의 1세대인지라 최근에 들어가본 디시는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대의 격차를 느꼈습니다. 햏자, 본좌, 아햏햏. 하오체 등 요즘 이용자들에게는 한참을 설명해야만 하는 많은 상징들은 거의 다 없어졌더군요. 이용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세대도 많이 바뀌었구요. 그때의 추억이 그리워 잠시 다시 활동을 하였지만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지금의 디시가 좋다 나쁘다는 평가가 아니라 저의 어릴 때 시절이 그리웠나 봅니다.


- 많은 합성작들로 이름을 알리셨는데 지금의 작업 환경과는 또 달랐지요?

 지금은 중학생도 능숙하게 다루는 포토샵이지만 당시엔 전공자가 아니면 제대로 다루는 이용자가 드물었던 터라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던 소수의 이용자들은 특별한 호칭(본좌)을 부여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포토샵, 애프터 이펙트, 3D studio max등 실무에서 생업으로 다루던 프로그램으로 저작물을 수월하게 제작을 할 수 있었고 반응도 좋아서 즐겁게 디시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관련 직종이시니 변화에 대해 직접 체감하시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업 환경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당시엔 컴퓨터가 CPU 1.2G 싱글코어에 64기가 메모리를 사용했으니 현재의 보급형 스마트폰 보다도 낮은 사양이었죠. 지금은 컴퓨터 그래픽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게이머들이 엄청난 고사양 PC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져 이 업계는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고요. 광고에서는 CG가 입혀지는 것이 기본이고, 3D는 실사와 구분하기 힘들어 마케팅에서 계속 발전해 가는 퀄리티와 경쟁을 따라잡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와 SNS가 활성화된 시점에서 또 다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꼭 전문가가 아니어도,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기발하고 개성이 넘치는 콘텐츠가 호응을 얻기 시작했죠. 매끄럽고 고급스럽게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보게 되는 시대인 거죠. 사실 디시에선 초기부터 있어왔던 개념이고 그로 인해 많은 이용자와 크리에이터를 모을 수 있던 계기였습니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들의 전성시대입니다.

 물론 고퀄리티를 지향하는 분야는 그대로 계속 발전해 나가겠지요. 우리나라의 CG 수준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콘텐츠에 대한 접근 경로와 표현의 방법이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졌다는 것입니다. 20여 년 전 고가의 전문 촬영 장비로만 가능했던 고해상도 촬영은 이젠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졌고, 편집 소프트웨어는 유튜브를 찾아보면 기초부터 중급까지 쉽게 습득이 가능합니다. 앞으론 누구나 원하는 비주얼의 표현이 가능한 만큼 트렌드의 흐름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리드하며 자신만의 개성과 강점을 표출하는 사람이 주목받을 것입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아이디어를 낼 때도 이러한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영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 그에 따른 콘텐츠 유행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패션과 마찬가지로 유행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복잡하고 섬세한 표현이 인기가 있었다면 심플하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콘텐츠가 대세를 이루기도 하고, 다시금 기술력이 탁월한 콘텐츠가 패러다임을 바꾸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 메타버스로 표현되는 가상공간과 아바타는 20여 년 전에 이미 그 개념과 결과물이 나왔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죠. 느린 인터넷에 지금처럼 모바일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았던 터라 큰 반응 없이 사라졌는데 최근 재차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텀은 있겠지만 디시의 여러 콘텐츠와 문화들이 다시 화제가 되고 부상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 힛갤에 여러 번 가셨는데 2004 dcinside는 지금 봐도 대단한 수작입니다. 어떤 작품으로든 다시 한번 힛갤 도전하실 생각 있으신가요?

 언제라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작품활동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만 요즘 이용자들에게 어필하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요즘의 필수요소는 어떤지도 잘 모르겠네요. 단순히 일반인들보다 그래픽을 좀 잘 한다로는 이유로 힛갤에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하하.
 

- 몇년 전 카툰 연재 갤러리에 카툰을 연재하기도 하셨는데 다시 연재할 계획 있으세요?

 취미로 했던 연재이지만 하루 일하는 시간 외에 나머지 대부분을 투자하게 되더군요. 사실 전 연재 갤러리에도 거의 옴니버스식 단편만 올려왔던 터라 연재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참으로 중노동입니다. 퀄리티를 잘 유지하는 프로작가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다시 작품을 올리게 된다면 좀 더 가볍고 부담이 없는 소소한 재미를 추구해볼까 합니다. 작품을 연재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닌 즐거움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 혹시 과거 활동하셨던 이용자 중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아직 인연이 닿아있는 분이 있을까요?

 제 싸이월드가 문을 닫고, 블로그 활동을 중단하면서 소통하던 분들은 이젠 소식이 다 끊어졌습니다. 연령대도 모두 40대가 넘으셨을 겁니다. 김풍, 마인드C 님 소식을 TV나 웹툰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네요. 디시의 최지현 낭자와는 페북에서 몇 년 전까진 소식을 가끔 주고 받았습니다.

-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조만간 20만 개의 개죽이 NFT를 만들어서 이용자들께 드린다는 계획입니다. 개죽이 NFT 제작에 함께 참여하게 되신 계기가 있다면요?

 원체 가상 자산에는 흥미가 없던 터라 NFT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올해 초 오랜만에 연락 주신 유식대장님의 권유로 찾아보게 되어 NFT의 개념을 탑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많은 작품을 더 만들어 볼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저는 개죽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부터 일관되게 개죽이의 상업적 활용을 반대해 왔던 입장이었지만 유식대장님이 개죽이 NFT는 수익창출의 목적보다는 개죽이의 존재가치에 대한 증명과 디시인사이드 이용자에게 무료로 드리는 선물의 개념으로 제작하는 거라 하셔서 그 취지에 공감해 제작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 개죽이 NFT는 어떤 걸까요? 살짝 미리 공개해 주신다면요?

 클레이튼 기반으로 만들어져서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분들께 모두 20만 개를 배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하나도 같은 개죽이는 없고요. 이중에서 각각 열 가지의 레어템은 모두 천 개씩 제작되어 총 1만 개의 개죽이 NFT는 희귀템이 됩니다. 모든 개죽이 NFT에는 제 사인이 들어 있습니다. 게중에는 무서운 개죽이도 있습니다.


- NFT에 대해 평소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다면요?

 NFT와 같은 가상 자산은 경제적 가치로는 당분간은 침체기를 맞을 것 같습니다. 콘텐츠의 가치보다는 투자 또는 투기 대상으로 대다수였고 여러 경제 사정이 안 좋아져 외면 받고 있지만 다시금 반등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 앞으로의 계획 말씀해주세요.

 첫 개죽이 NFT의 제작에 최대한 많은 조합을 만들어 내고 싶었지만 아이디어만큼 다 제작을 못해 아쉬웠습니다. 차츰 업데이트를 해서 더 재미있는 조합과 레어템을 생산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조합형이 아닌 스페셜 버전이나 콜라보 작품들도 제작해 보고 싶네요.

 개죽이를 기억해 주시고 반겨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 개죽이를 잘 모르셨던 디시 이용자들에게 다시 개죽이를 소개하고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기쁩니다.

- 혹시 진짜 개죽이도 NFT 시장에 나오게 되나요?

 그렇습니다. 오리지날 개죽이가 나오는 제 게시물은 향후 디시의 게시물이 NFT화 하는 시점에서 제가 시장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시더군요.


- 마지막으로 디시인사이드가 닐스님의 삶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요?

 디시를 접하게 된 이후 디시는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여러 사람도 만났으며 제 추억의 가장 큰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와이프와 첫 만남 때 와이프가 꺼냈던 이야기도 “개죽이 아빠라면서요” 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가는 디시인사이드지만 저에게는 언제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디시는 단순한 놀이터가 아닌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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