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외국어대
지난 12일 경북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영남외국어대 본관 1층 수위실에서 백발의 노인이 신발을 갈아신고 나왔다. “수위세요”라고 묻자 “아니에요. 이 학교 이사장”이라고 했다. 이 대학은 1993년 설립된 2·3년제 전문대다. 지난달 교육부로부터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정원은 감축되고 정부 재정지원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으며, 신입생은 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을 전혀 받지 못한다. 김종화(71) 이사장은 본관 밖으로 나와 정원수에 물을 뿌렸다. 장영아 총장도 옆에서 호스를 들고 거들었다. 이사장과 총장은 부부다.
“아침에 (내가 직접) 교내 청소하고, 밤엔 수위도 보고. 처음엔 교수들이 이상하게 여겼지만 학교 보세요. 어디 쓰레기 하나 있나. 용역 한 명 쓰지 않아요. 현금 150억원 있어서 아이들에게 교비로 장학금 주고.”
![올해 2월 폐쇄된 대구외국어대 오너이자 인근 영남외국어대를 운영하는 김종화 이사장. 2008년 대학을 인수했다. [강홍준 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809/15/55aa80a0-ebe3-4438-8ffb-793ef29d1673.jpg)
올해 2월 폐쇄된 대구외국어대 오너이자 인근 영남외국어대를 운영하는 김종화 이사장. 2008년 대학을 인수했다. [강홍준 기자]
경산 인구 39%가 대학생, 고교생의 14배
교육부가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향후 3년 내 38개 대학이 폐교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최근 국회에 보고했다. 실제로 영남외국어대에서 800여m 떨어진 같은 협석리엔 대구외국어대가 있는데 이 대학은 올 2월 교육부에 의해 강제 폐교됐다. 또 6.5㎞ 떨어진 평산동 소재 대구미래대도 같은 시기 폐교됐다. 교육부는 부실대학에 대해 재정지원을 안 하고 신입생을 가지 못하도록 장학금 등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대학 수가 자연 감소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지방부터 서서히 벌어지고 있는 대학 폐교는 현재까지는 외부의 강제에 의한 것이지, 자의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교육부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정원감축을 단행한 지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로 5만6000명 입학정원이 감축됐으나 2015년 이후 폐교한 대학은 5곳에 불과했다.
전문대와 일반대 13곳이 있는 경북 경산시는 교육부의 예측대로라면 폐교가 속출했어야 했다. 경산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현재 경산시의 인구(26만6486명)의 39%가 대학생(전문대·일반대)이다. 고교생 인원(7346명)의 14배가 대학생(10만4115명)인 것이다. 지역 고교생이 모두 대학생이 되어도 정원은 9만명 이상 채우지 못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809/15/17c6a4c0-0122-4807-824d-0502d38505af.jpg)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의 대학 폐쇄는 대체적으로 ‘설립자 비리 등 내부요인 발생→학내 분규 장기화→설립자 퇴출 또는 공석→신입생 모집 감소·임금체불→교육부의 개선 명령 불이행→폐교’란 사이클을 밟는다. 전북 남원의 서남대나 김제의 벽성대도 거의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런데 설립자 등이 내부인의 투서 등으로 비롯된 검찰 수사나 교육부 감사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면 버틸 수 있다. 영남외국어대 김 이사장의 말은 과장은 아니었다. 전직 교육관료는 “학교 폐쇄는 외부의 강제에 의한 것이지 자발적 선택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돈 주고 산 재산을 누가 자발적으로 손 털고 나오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대학 자발적 아닌 감사 동원한 강제퇴출

두 도시 비교
교육부는 20년 전 우후죽순처럼 대학설립을 허용했다. YS정부 시절인 1996년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대학 설립을 허용했고, 그 결과 4년제 대학 37개와 전문대 18개 등 총 55개대가 새로 문을 열었다. 교육부의 대학 설립준칙주의에 따라 땅값 비싼 대구에서 학교용지를 확보하지 못한 설립자들이 경산으로 몰려온 것이다. 경산시와 비슷한 인구 규모를 지닌 곳이 전북 익산시(30만5031명)인데 여기엔 대학이 3곳, 대학생은 1만 9915명이다. 고교생수(1만1513명)의 1.7배에 불과하다.
한국대학법인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20여년 전 교육부가 잘못된 정책결정을 해놓고, 이제 와서 대학 법인이 알아서 손 털고 나가라고 강제한다. 개인 재산을 출연한 이사장들은 학생이 한 명도 없더라도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제 폐쇄를 위해선 교육부 감사나 검찰 수사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리를 잡아내야 하는 교육당국과 전직 관료 등을 방패 삼아 버티기에 나서는 대학 설립자 간 싸움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산=강홍준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