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세계 최고 원자력공학 대학 키운 해너 총장, 나의 롤모델이 됐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미국 국제교류처(USAID) 처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존 해너 미시건 주립대 총장. 1941~69년 총장을 지내면서 작은 농대를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에 초점을 맞춘 연구중심대학으로 키웠다. [중앙포토]

1970년대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미국 국제교류처(USAID) 처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존 해너 미시건 주립대 총장. 1941~69년 총장을 지내면서 작은 농대를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에 초점을 맞춘 연구중심대학으로 키웠다. [중앙포토]

나는 어려서 특별히 조숙한 편도 아니었다고 하는데도 학교에 들어가서는 남들보다 빨리 성장한 편이다. 경기고 1학년 때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통과해 고교 생활은 1년 만에 끝났다. 서울대 행정대학원도 1년을 다닌 뒤 유학을 떠나야 했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선 자격시험에서 A를 받은 덕분에 석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나는 고교 졸업장과 석사 학위가 없다. 지금 돌아보면 후회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지금 누군가 월반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반대 입장이다. 시간을 단축하는 장점이 있지만, 공부와 인간적인 성장을 급하고 설익게 된다는 단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란 걸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 충분히 익힌 곡식이나 과일이 맛과 향, 그리고 영양분이 뛰어나듯 공부도 시간을 들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공부만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방과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하지만 월반하는 바람에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인생 경험을 더 많이 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아무튼 미시간 주립대에서 곧바로 박사 과정에 진학하게 된 나는 이번엔 ‘과정 시작 시험’을 치르게 됐다. 처음에 봤던 자격시험에 비하면 의외로 쉽게 통과했다. 이를 통해 대학 측이 유학생들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혹독한 자격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당시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이공계 연구·교육 체계를 혁신하고 과학기술자 확보에 몰두한 미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인재를 가려내는 작업이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한국 교육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

존 해너 미시건 주립대 총장(왼쪽)이 퇴임 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을 맡던 시절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을 에방하고 있다. [중앙포토]

존 해너 미시건 주립대 총장(왼쪽)이 퇴임 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을 맡던 시절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을 에방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시간 주립대에서 존 해너(1902~91년) 총장을 만난 건 인생의 행운이었다. 학부 중심의 단과대학을 전국적인 종합대학으로 키운 ‘열정의 교육자’다. 39살인 1941년 총장에 올라 69년까지 이 대학 사상 최장수인 28년간 자리를 맡으며 규모와 내실을 함께 키웠다. 이 대학은 1855년 ‘미시간주 농대(Agricultural College of the State of Michigan)’로 출발했다. 해너 총장 시절인 55년 종합대학인 ‘미시간 주립 농업·응용과학대(Michigan State University of Agriculture and Applied Science)’로 승격했고 64년 미시간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가 됐다.  

미국r국제개발처(USAID) 처장 시절 한국을 방문해 주한미상공회의소 주최의 오찬에서 연설하는 존 해너 . [중앙포토]

미국r국제개발처(USAID) 처장 시절 한국을 방문해 주한미상공회의소 주최의 오찬에서 연설하는 존 해너 . [중앙포토]

해너 총장은 열정과 치밀한 전략으로 지역 농대를 ‘과학기술 두뇌’를 주로 양성하는 연구중심 대학으로 학교를 재편해 미국 과학기술의 고속성장과 궤를 함께했다. 그 결과 현재 농학·축산학 등 생명과학으로 이름 높으며 물리학과 원자력공학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연구·개발에 연 5억 달러 이상을 투입한다. 한국도 눈여겨볼 대학 성장 전략이다. 해너 총장은 그 뒤 나와는 물론 한국과도 밀접한 인연을 맺게 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