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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서 폐손상 사례 보고 잇따라

현재는 GS25를 포함한 대부분 편의점에서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찾을 수 없다. 점포 수 기준 업계 2위인 CU와 3~5위를 차지하고 있는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이 모두 정부 발표 4일 만에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공급 중단에 나섰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1~5위 업체가 국내 전체 점포의 90%를 차지한다”면서 “담배의 70%가 편의점에서 팔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액상형 전자담배는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가향에 속하지 않는 박하향 등 5종은 정상 판매되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액상형 전자담배 퇴출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 유해성 문제를 제기하자 대형마트와 면세점까지 줄줄이 판매 중단에 동참하고 있어서다. 유통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와 삐에로쑈핑, 일렉트로마트 등 대형마트가 전자담배 기기·액상 판매를 중단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10월 28일 액상형 전자담배 가향 제품 신규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상 제품은 쥴랩스, 시드 툰드라, 픽스, 비엔토 등 액상형 가향 전자담배 12종이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박하향인 쥴 프레쉬를 포함한 액상 5종의 신규 발주를 중단했다.
유통이 막히면서 생산도 멈췄다. 담배회사 KT&G는 현재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인 ‘릴베이퍼’에 쓰이는 가향 액상 시드 툰드라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 등 주요 판매처가 판매를 중단하면서 이미 생산한 액상이 소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T&G 관계자는 “편의점 등에서 판매를 재개해 재고가 소진되면 제품 생산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만드는 킴리코리아 역시 자사 액상형 전자담배인 ‘버블몬’ 생산을 중단했다. 주요 판매처인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버블몬 납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원인이 됐다.
유통 업계와 액상형 전자담배 제조사들은 정부가 사용 중단을 권고하면서 밝힌 유해 성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정부는 제품 회수와 판매 금지 근거 마련을 위해 액상형 전자담배 내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 등 유해성분 분석을 11월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분석은 식약처가 맡았다. 식약처 분석 결과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유통 업계가 재판매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실제 액상형 전자담배 이용으로 가장 많은 폐손상 환자가 발생한 미국은 대마 추출 성분인 THC와 THC를 기화하는 데 필요한 비타민E 화합물이 폐손상 원인 물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THC는 대마가 불법인 국내에선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가 유해성 검사를 종료한 후에도 액상형 전자담배의 퇴출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THC와 비타민E 화합물이 액상에 들어가지 않는 국내에서도 폐손상 사례가 나온 가운데 이미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10월 28일 발표한 3분기 담배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유해성 논란이 빚어지기 이전인 3분기 이미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3분기(7~9월) 액상형 전자담배는 총 9800만개(1회용 카트리지 기준)가 팔렸다. 월평균 3266개가 팔린 것으로, 지난 5월 출시 이후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진 지난 6월 3600개보다 적었다.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는 지난 7월 4300개 판매를 정점으로 8월 2700개, 9월 2800개로 판매량이 줄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퇴출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액상형 전자담배는 그동안 담배 줄기에서 니코틴을 추출했다는 이유로 정부의 안전성 검사 및 제세를 피해왔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뱃잎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포함한 제품만 담배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줄기 추출 니코틴을 액상으로 쓴 액상형 전자담배는 세금이 없는 덕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을 장악했다. 전자담배 소매점에서 팔리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 같은 유사담배가 지난해 전체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의 97.2%(니코틴액 기준)에 달했다. 그러나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와 동시에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 활용 담배도 법으로 규제할 근거를 연내 마련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담배사업법 개정을 통해 담배의 정의를 확대, 담뱃잎뿐 아니라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 제품도 포함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줄기 추출 니코틴이라고 해도 액상 1㎖당 1799원인 담배 제세부담금 적용을 받아야 한다. 담배제품 관리체계에서 정한 분기별 안전성 및 유해성 성분 분석 규제도 적용된다. 그동안 전자담배 소매점에서 파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개별소비세, 국민건강증진기금 등 제세부담금이 포함되지 않아 액상 1병(30㎖ 기준)당 약 3만원에 팔려왔다. 그러나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이 개정되면 세금만 5만4000원에 달해 병당 가격은 8만원을 넘어 경쟁력을 잃을 전망이다. 전영철 전자담배협회 부회장은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더 음성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액상형 → 궐련형 전자담배 풍선효과 우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