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삼성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악은 면했다. 대법원이 지난 1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낸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 기피 신청을 기각하면서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은 기존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에서 7개월 만에 재개될 전망이다. 특검팀은 대법원 결정 직후 "과연 재판장에게 '집행유예 선고의 예단이 없다'고 볼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즉시 반박성명을 발표했다.
재판부가 교체됐을 경우, 삼성이 받을 리스크는 컸다. 일단 특검팀이 바뀐 재판부를 대상으로 "삼성바이오 사건 관련 수사 자료를 증거로 채택해달라"는 요구를 다시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재용 부회장 측에 불리한 증거자료다. 기존 재판부에선 지난 2월 기각했다. 당시 특검팀은 곧바로 법원에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다.
파기환송심 절차가 '리셋'되지 않는 것도 이 부회장 측에 유리하다. 이 부회장 측은 다음 달 22일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 재판의 첫 공판준비기일도 앞두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 절차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경우, 이재용 부회장의 법원 출석은 더욱 잦아질 수밖에 없다.
기존 재판부가 파기환송심을 계속 맡게 되면서 향후 삼성의 경영 행보도 일정 수준 예측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 당시 정준영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체제 혁신 ▶총수 이재용의 선언 등 3개 항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삼성, 재판장 '3대 요구' 적극 수용할 전망
'삼성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위상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올 1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삼성은 재판부 요청에 따라 최고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외부 기구 형태로 삼성준법위를 만들었다.
최근 삼성준법위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7개 계열사에 이사회 산하 '노사관계 자문그룹'을 신설·운영할 것을 요구했다. 현행법에 따라 노조를 경영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노조 활동을 명문화하는 노사 간 단체협약(단협) 등을 체결하라는 취지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한국노총 출신의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가운데 노조 관련 발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재벌체제 혁신' 관점에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등장할 가능성도 커졌다. 파기환송심 1차 공판에서 정준영 부장판사가 "재벌체제 혁신을 통해 혁신기업 메카로 탈바꿈하는 이스라엘의 최근 경험을 참고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한 까닭이다. 이스라엘은 2012년부터 재벌개혁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회사 보유를 제한), 대기업 집단의 출자구조 단순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금산 복합자본 문제는 삼성이 내내 공격받은 부분이다. 때마침 삼성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개정안은 보험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가치 반영 방식(취득원가→시장가격)을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실제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시가 기준으로 총자산(약 309조원)의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전자 지분 8.5%(약 30조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15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보험업법 개정 등의 제도 변화에 따라 삼성생명의 지배구조 중간고리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이 커지면, 오너 일가의 삼성생명 지분 매각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사과 당시 "승계 문제로 더는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