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에스퍼 딴소리했는데…국방부는 "한미 전작권 전환 진전"

한국과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공개석상에서 드러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다. 

SCM은 한ㆍ미 국방장관이 양국의 주요 군사정책을 협의하는 회의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5월 이전에 전작권 전환을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구상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서욱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열고 있다. [국방부 제공]

서욱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열고 있다. [국방부 제공]

양국의 견해차는 회의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나타났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하여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 전환’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러나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모든 조건에 맞춰 전작권 전환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중앙일보에 미국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전작권 전환은) 시간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간(time frame)'을 정해 하기보다는 '조건'이 충족됐을 때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ㆍ미 국방장관이 언급한 조건은 지난 2015년 양국이 시기를 못 박지 않고, 조건을 충족한 상황에서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한 합의를 뜻한다. ▶연합방위 주도를 위해 필요한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ㆍ역내 안보 환경 등을 갖출 때 연합군사령부에서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미군 대장이 부사령관을 각각 맡기로 했다. 지금은 사령관은 미군이, 부사령관은 한국군이다.


그런데 한국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라는 문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하려고 한다. 반면, 미국은 조건을 통과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날 전작권 전환 논의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흥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15일 “‘한·미 공동의 노력을 통해 전작권 전환 조건 충족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고 주목한다’는 공동성명이 나왔다”며 “양국이 함께 노력하고 긴밀히 협의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공동성명에서 전작권 전환 검증평가에 대한 일정을 분명히 적어놓은 데 비해 올해는 “전작권 전환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평가·점검해 나가기로 했다”는 문구에 그쳤다. 정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부 소식통은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미 국방부가 섣불리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을 상황”이라며 “국방부가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전작권 전환에 대한 입장에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한국에 약속했지만, 전작권 이후에 대한 검토와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미국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미국의 많은 외교·안보 실무자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작권을 전환하는 게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에 불분명한 태도를 가진 한국이 유사시 미군을 지휘하는 데 불안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ㆍ미연합군사령부 의장대가 양국 국기와 사령부기를 들고 있다. [한미연합사 제공]

한ㆍ미연합군사령부 의장대가 양국 국기와 사령부기를 들고 있다. [한미연합사 제공]



하지만, 양국 합의사항인 전작권 전환 자체를 미국이 뒤집는 게 쉽지는 않다. 대신 가급적 과정을 천천히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ㆍ미는 전작권 전환 ‘예비고사’ 성격으로 지난해 1단계인 기본운용능력(IOC) 검증을 시작으로, 올해 완전운용능력(FOC) 검증, 내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을 마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FOC 검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이틀만 약식으로 진행했다. 나머지 FOC 검증은 내년으로 미뤘다.

미국은 검증을 철저하게 치르겠다는 입장이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연합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평가도 치르지 않았는데 한국은 2022년 5월 이전 전환을 주장해 미국은 불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비역 장성은 “특히 주한미군에서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 능력에 대한 평가가 냉정하다. 아주 박한 편”이라며 “이런 의견은 미 국방부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ㆍ미연합사령관은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많은 진전이 있지만, 솔직히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도 여권에선 신속한 전작권 전환만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홍철 국방위원장은 “조건 충족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단으로 (전작권 전환이) 가능하다”라고까지 말했다.

한편, SCM 후 예정됐던 공동 기자회견이 미국 측 요청으로 취소된 데 대해, 정부 소식통은 “미국 측 사정이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에스퍼 장관이 코로나19 예방 조치로 외국 국방장관과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있다”며 “한국만 배려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