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2030의 이유있는 반란

이정민 논설실장

이정민 논설실장

7일 재·보선의 승부를 가른 건 2030 청년 민심이었다. 출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20대의 55.3%, 30대는 56.5%가 오세훈 후보(국민의힘)를 지지했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20대 34.1%, 30대 38.7%)와 격차는 두 자릿수다. 특히 20대 남성의 오 후보 지지는 72.5%였다. 60대이상 남성(70.2%)보다 높은 수치다.
 
“지구가 거꾸로 도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만큼 현기증 나는 반전이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이들은 야당을 심판했다. ‘꼰대당’ ‘적폐당’ 취급했다. 20대, 30대는 각각 56%, 61%의 화끈한 지지로 180석 거여(巨與)의 압승을 안겨줬다.(미래통합당 지지는 20대 32%, 30대 30%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69%)와 30대(76%)의 압도적 지지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이래 2030은 현 집권세력의 헌신적인 동맹 파트너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대권과 지방권력에 이어 입법권력까지 손에 넣으면서 2030과 민주당의 ‘달빛 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정과 정의는 눈속임용 위장일 뿐 오만과 탐욕·위선으로 가득찬 그들의 실체가 죄다 탄로났기 때문이다. 청년 민심의 반란은 화산의 마그마처럼 뿜어져나왔다. 하나 둘 오세훈 후보 유세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이런 청년들이 모여 만든 연설 무대는 이번 재·보선 최고의 진풍경이다. 선거 전 마지막 휴일이던 지난 4일, 필자는 서울 어린이대공원 후문 유세장을 찾았다. 분출하는 2030 의 생생한 민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몇 대목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지난 4년, 국민들은 편을 갈라 싸우고 삶은 팍팍해졌다. 공정이란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부모가 누군지, 돈이 얼마인지가 대화의 주가 돼버린 시대가 됐다. 국민이 부처의 장관, 국회의원, 검찰총장과 부장검사,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이름을 외우는 시대가 올바른 시대인가.”(대학생) “내일이 안보이고 하루하루 말라 죽어가는 느낌이다.…심장이 뛰는 삶을 살게 도와달라.”(37세, 직장인)  “입시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게 기회의 평등인가. 대다수가 반대하는 일들을 개혁이란 이름 하에 토론도 합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게 과정의 공정인가. 일반 국민은 꿈도 못 꿀 액수의 차익을 신도시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로 벌어가는 게 결과의 정의인가. 본인들만이 정의를 논할 수 있다는 오만, 자기 편이 하는 일이라면 이견이 있으면 안된다는 착각, 이런 나라를 만들자고 촛불을 들지 않았다.” (23세, 대학생)
 
‘촛불 정권’에 걸었던 기대가 좌절과 배신감으로 되돌아온 데 대한 분노의 절규다. 한 대학생은 “청년들에게 분노하라고 해서 분노했더니 역사적 경험치가 없어서 그렇단다”며 여당 후보를 저격했다. 군 복무를 마친 복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은 “다급해지니까 10만원을 주겠단다. 그러나 돈 10만원과 우리의 미래를 맞바꿀순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능란한 거짓말과 가식적인 연극이 뿜어낸 독성이 자율신경마저 마비시킨 탓일까. 집권세력은 턱밑까지 차오른 이 마지막 절규마저 외면했다. 고작 한다는 말이 “보수정부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이라거나 “문재인 찍은 거 후회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정부가 투기세력 못잡았다고, 투기세력 차량에 오르면 어떡해. 그 차량 내곡성에서 온 거 정말 모르겠어?”였다. 툭하면 남 탓하며 초점을 흐리는 물타기, 전형적인 꼰대 수법이다.
 
청년들은 이 좀스럽고 비루한 협박글에 위축되지도 주눅들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오히려 분노만 더할 뿐이었다. 여당이 전매특허처럼 써온 갈라치기와 적폐 프레임이 먹히지 않았다. 한 청년이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공기와도 같은 시대에 태어난 세대다.” 조부모 세대가 이뤄놓은 산업화의 토양과 부모세대가 열매 맺은 민주화를 자양분 삼아 나고 자란 이들이 2030 청년세대다. 배고픔을 경험한 할아버지·할머니 세대나 ‘민주화’가 이념·관념의 영역에 머물던 아버지·어머니 세대와 달리 이들은 결핍으로부터 당당하고, 이념의 과잉에서 자유롭다. 그러니 당당하고 상식적이다. 친문 지지층을 결집한답시고 “선거를 거의 다 이긴 것 같다”(이해찬 전 대표)는 궤변을 늘어놓거나, “박원순이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냐”(임종석 전 비서실장) 같은 코미디 수준의 레토릭에 현혹되지 않는 이유다. 이런 2030 세대를 집권세력은 ‘손 안의 작은 새’쯤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오판을 불러온 것이다. 만약 “과거 박근혜에 분노했던 20대와 문재인에 분노하는 20대는 같은 사람”이라는 외침에 진즉 귀기울였다면 선거 참패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20대 취준생이 전한 ‘청년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소개한다. “당장의 지지에 안주하지 마시라. 청년들은 특정 정당에 애착을 갖고 있지 않아 맹목적 지지를 하지 않는다. 오 후보, 국민의힘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동안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고쳤으면 저들보다 낫겠다 판단해서 기회를 주는 것 뿐이다.” 다가오는 대선, 2030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이정민 논설실장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