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넘어서도 새 사업 진출…미래 위해 세화여중·고 설립"

태광그룹은 16일 창업주인 일주(一洲) 이임용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 기념행사를 했다. 이날 행사는 내실경영을 실천해 온 고인의 뜻을 기려 임직원을 대상으로 기념 영상을 상영하고 2016년 출간한 경영철학서인 ‘큰 일꾼 일주, 큰 빛 태광’의 저자 특강을 실시간 줌(Zoom)으로 진행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태광그룹 창업자인 일주 이임용 회장. [사진 태광그룹]

태광그룹 창업자인 일주 이임용 회장. [사진 태광그룹]

 
이 회장은 1921년 5월 7일 경상북도 영일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10월 부인인 이선애 여사와 모직물을 생산하는 동양실업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섬유사업에 뛰어들었다. 1954년 7월 부산 문현동에서 태광산업사를 설립, 독자경영을 시작했으며, 1961년 9월 이 회장은 태광산업사를 자본금 1억 환의 주식회사로 출범시켰다.  

태광산업은 국내 최초로 아크릴섬유(1967년)와 스판덱스(1979년)를 생산했다. 이어 아크릴, 폴리에스터, 스판덱스, 나일론 등 모든 화학섬유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섬유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인 1990년대에 이르러 더 큰 도약을 위해 석유화학 분야에 진출했다.

금융업과 전자사업에도 진출한다. 1973년 흥국생명을, 1978년 고려상호신용금고(현 고려저축은행)와 천일사를 각각 인수했다. 흥국생명은 1975년 보유계약고 1조원 수준에서 1977년 2조원을 돌파했고, 고려상호신용금고는 1983년 자본금 규모 6억3900억원, 자기 자본 15억 원대로 인수 3년 만에 부산에서 가장 건실한 신용금고가 됐다. 천일사는 인수된 이후 태광전자㈜로 사명을 바꾸고, 이후 당시 혁신적인 디자인의 태광 에로이카(Eroica) 등 오디오, 전화기, 무전기 브랜드를 선보였다.  

태광그룹 창업자인 일주 이임용 회장의 젊은 시절. [사진 태광그룹]

태광그룹 창업자인 일주 이임용 회장의 젊은 시절. [사진 태광그룹]

 
그는 사업뿐 아니라 ‘부국강병’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특히 교육은 나라의 미래를 여는 것이라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학교법인인 일주ㆍ세화학원을 통해 1978년에 세화여중ㆍ고, 1987년에는 세화고등학교를 각각 개교했다. 그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며 법인 설립 이후에도 사재 102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다양한 공익활동을 위한 일주학술문화재단도 1990년 설립했다.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사업과 장애가족 교육지원, 다문화가정 지원사업, 학술지원사업은 물론 문화예술사업의 발전 등을 위해 현재까지 총 518억원 규모의 공익사업을 펼쳐왔다.

한편 태광그룹은 “오늘 행사 외에도 10월 태광산업 창립기념일에 맞춰 일주 기념서적을 발간할 예정이며, 포항공과대학 수학연구소에서는 올해 7월 말 일주 탄생을 기념한 국제심포지엄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