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혁신도시에 사는 주민 김모(35)씨는 지난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김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 바로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 산다. 공단에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집회가 열리고 있다. 건보 콜센터 노조는 지난 1일 공단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3차 파업에 돌입했고, 공단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변 주민들에겐 시위대가 확성기를 동원해 하루종일 외치는 구호가 고통스럽다. 5살, 1살된 두 아이의 엄마인 김씨는 “둘째가 낮잠 한번 제대로 자질 못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자칫 코로나가 확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고 한다. 동네 온라인 카페에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시위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씨는 “확진자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어디서 모인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동네에 몰려와 너무 걱정이 된다”라고 전했다. 그는 “상가 화장실에 가보면 시위대가 머리를 감고 세수하고 난리가 나서 동네 사람들은 아예 발길을 끊었다”라며 “집단감염이라도 터질까봐 두렵다”라고 말했다.
건보공단 콜센터 노조 조합원 1000여명은 현재 민간 업체에 위탁해 운영하는 고객센터를 직접 고용해달라고 요구하며 앞서 지난달 10일 1차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건보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업무 성격상 직접 고용을 해야한다고 요구한다. 위탁업체의 정규직이긴 하지만 건보가 위탁업체를 바꾸면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노조는 직접 고용에 반대해왔다. 건보 전체 직원(1만6000명)의 10%에 달하는 인원을 직접 고용하면 인사와 임금체계에 큰 혼란을 부르고 무엇보다 채용 과정의 공정성이 무너진다는 주장을 편다. 이렇게 노-노(勞勞) 갈등이 심화하자 김용익 건보 이사장이 단식 투쟁을 벌였고 사흘만에 양측을 협의 테이블에 불러 앉혔다. 하지만 콜센터 노조는 한 차례 협의 이후 “사측이 시간만 끈다”며 지난 1일 재파업에 들어갔다.
콜센터 노조는 파업에 돌입한 이후 조합원 1000여명 중 전국 각지에서 300여명이 모여 교대 농성을 벌여왔다. 집회 현장에서 사실상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집회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들 노조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23일과 30일 건보 콜센터 노조를 지원사격하기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와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예고했다.
전국적으로 2000~3000명 가량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원주시는 거리두기 1단계라 현재는 200명 이하 집회를 열 수 있는 상황이다. 15일부터는 100명 이하 집회만 가능해진다. 상황에 따라 지자체가 해산명령을 내리는 등 개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건보공단 인근에 사는 원주시민들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국내 신규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등 전국에서 시위대가 몰려드는것을 우려한다. 혁신도시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모(27)씨는 “처음 콜센터 노조가 파업할땐 자기 권리 찾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갈수록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니 걱정된다”라며 “시청, 경찰에 민원을 넣어도 출동해서 구경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인근의 한 상가에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의 고생과 편의를 위해 화장실 사용을 묵인했지만 화장실에서 세탁을 한다거나 불결하게 사용하는 등 도가 지나치고 있다”며 노조를 향해 화장실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안내문이 나붙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당 주인은 “코로나로 내내 어렵다가 봄부터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집회에서 확진자라도 나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다”라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전국적으로 몰려드는 대규모 시위는 상당히 우려스럽다”라며 “강원도와 상황 대응을 어떻게할지 의논해보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