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는 방역패스 면제해주면서”…영세 자영업자들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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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 기자 사진 박건 기자
서울 광진구에서 혼자 분식집을 운영하는 임경애(62)씨는 11일 “마트는 방역패스를 면제해주면서 왜 식당은 다 똑같이 잡는지 모르겠다. 방역패스 계도기간이 끝난 이후 손님이 부쩍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장년층 단골들은 방역패스 인증을 어려워하고, 학생들은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 발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14일 법원이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에 일부 제동을 걸었지만,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지난 10일부터 면적 3000㎡ 이상의 백화점·대형마트 등 점포가 방역패스 의무 적용 시설에 들어갔으나 이번 결정에 따라 서울시 내 점포는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미 3일부터 방역패스가 적용돼 온 식당·카페 등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 붙은 방역패스 적용 안내문.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 붙은 방역패스 적용 안내문. 연합뉴스

대형 점포 방역패스 효력 정지…식당·카페 등은 그대로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한원교 부장판사)는 이날 조두형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 등 1023명이 ‘유흥업소 등을 제외한 17개 업종에 적용되는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서울에 있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 적용된 방역패스 조치의 효력이 정지됐다. 12∼18세 청소년들은 방역패스 없이 모든 시설을 출입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방역패스의 형평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매장 면적에 따라 방역패스가 다르게 적용됐지만,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은 예외 없이 방역패스가 일괄 적용됐기 때문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아내와 김밥집을 운영하는 조모(37)씨는 “분식집처럼 작은 식당은 테이블 개수가 많지 않고 손님들이 머무는 시간도 짧다. 정부가 모든 매장의 사정을 일일이 따지기 어렵다면 마트처럼 일정한 기준을 만들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는 당초 출입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았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해 지침을 변경했다. 다만 생활필수시설로 분류되는 식당과 카페는 미접종자가 혼자 이용할 수 있게 예외를 인정했지만, 대형 점포의 경우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 대체재가 있어 1인 이용이라도 방역패스를 제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날 법원의 결정이 나오면서 사실상 식당·카페에 대한 방역패스만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 됐다. 


10일부터 백화점, 대형마트에 가려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서나 48시간 내 발급받은 PCR(유전자증폭검사) 음성확인서를 내야 한다. 연합뉴스

10일부터 백화점, 대형마트에 가려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서나 48시간 내 발급받은 PCR(유전자증폭검사) 음성확인서를 내야 한다. 연합뉴스

‘방역패스 효력 정지해달라’ 법원 판단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방역패스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게 보건당국의 일관된 설명이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서울 성동구에서 1인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송모씨는 “방역패스를 더 엄격하게 적용할 거면 영업시간 제한 등 거리두기를 좀 풀어주는 게 공평한 조치다. 필수시설이라는 식당·카페를 제일 먼저 똑같이 규제해놓고 오히려 늦게 들어온 마트만 편의를 봐준 건 차별”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방역패스 논란이 불거진 원인으로 정부의 준비 부족을 지적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자영업자마다 상황이 다르다 보니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면서도 “사실상 백신 접종률을 높이려 식당·카페 등 필수시설에 방역패스를 적용한 게 문제”라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방역패스 적용에 따른 부작용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형평성 문제를 최소화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