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 글로벌 공급망의 차질, 물가 상승과 각국의 통화정책 대응으로 인해 금융ㆍ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무역수지 적자 전환과 실물 경기의 둔화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중구 명동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뉴스1
윤 대통령은 첫 대외 행보로 경제ㆍ금융 현장을 선택했다. 환율ㆍ금리ㆍ수출ㆍ물가 등 모든 경제지표에 경고등이 켜진 ‘사면초가’ 상황이라서다.
‘바람에 가장 빨리 눕는’ 주식ㆍ외환시장은 이미 비상이다. 이날 정부가 대응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쏟아냈지만 시장은 전날의 충격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12일 2550대로 내려앉으며 1년6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던 코스피는 이날 기관 매수에 힘입어 간신히 2600선을 회복했을 뿐이다.
외환시장엔 공포가 여전했다. 이날 장중 1290원대로 다시 추락했던 원화가치는 이후 소폭 상승(환율 하락)하기 했지만 1280원대 중반에 머물렀다. 원화값이 달러당 1300원 선을 뚫는 건 시간 문제란 인식이 시장에 팽배하다. 외국인 이탈을 부추길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은 예상보다 높은 물가 흐름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주식ㆍ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수요는 자연스럽게 달러화의 강세(원화 약세)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높은 물가와 경기 둔화 우려로 금융시장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짚었다.
12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유임으로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무게가 더 실리면서 한ㆍ미 금리 역전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연 1.5%로 미국(1%)과 0.5%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Fed가 0.5%포인트씩 두 차례만 올려도 미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진다. 국내 외국인 자금 이탈 가속화,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는 변수다. 국내 시중금리가 미국 ‘빅스텝’을 따라갈 가능성도 커졌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차오른 가계빚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1일 오후 부산항 신선대부두.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수출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관세청 통계를 보면 이달 1~10일 수출입에서 37억2400만 달러(약 4조7800억원) 적자를 봤다. 이 기간 수출액이 증가(28.7%)하긴 했지만 수입액(34.7%)이 더 큰 폭으로 늘면서 적자를 키웠다.
석유류 등 수입 물가가 치솟은 탓에 수출하면 할수록 손해를 더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까지 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는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코로나19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원자재발(發) 물가 상승 충격은 국내 물가로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4.8%를 기록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란 점이다.
유가 상승에도 요금 인상을 늦췄던 한국전력은 올 1분기에만 7조8000억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분기별 기준) 영업손실을 봤다고 이날 공시했다.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공공요금 인상을 정부가 더는 억누를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사상 최대 규모인 59조원 추가경정예산(추경)도 이르면 이달 말부터 풀린다.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요인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최근 대내외 경제 여건이 급변하고 있다. 국민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매우 어렵다”며 “정부는 이럴 때일수록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걸 바탕으로 위기를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방기선 기재부 제1차관도 이날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최근의 엄중한 경제 상황에 대응해 국내외 금융시장ㆍ실물경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적기 시행 조치 등을 재점검하겠다”며 “전 부처가 위기의식을 갖고 거시경제 상황 관리와 정책 대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뉴스1
하지만 대외 악재 영향이 크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 장기화가 예상돼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 상태다. 안팎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맞는데 급급한 상황이다. 기재부 역시 이날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5월호에서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 확산 등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 가속화, 중국 봉쇄 조치 장기화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과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