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주가 달라졌어요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소주를 고르고 있다. [연힙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25/d4d58c2f-6a3d-48a2-9cc8-972e58f916b1.jpg)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소주를 고르고 있다. [연힙뉴스]
변화가 체감된 건 2019년 진로이즈백이 출시되면서예요. 우선 병이 달라졌습니다. MZ세대의 뉴트로 트렌드를 자극하는 디자인이었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대형소주잔 같은 굿즈는 품절 대란을 일으켰고, 패션잡화 등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이 이어졌습니다. 소주병의 재활용을 위한 업계의 녹색병 사용 협약을 깼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묻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말 소주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박재범이 만든 전통 소주 ‘원소주’를 사기 위해 백화점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팝업스토어가 끝나고 온라인으로 판매를 시작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1분 만에 품절이 되는 ‘1분 컷’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원소주 구매인증을 보면 그간 소주와는 친하지 않을 것 같은 MZ세대 인싸들이 대다수입니다. 원소주는 어떻게 MZ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브랜드가 되었을까요?
원소주 오픈런, 증류식 소주의 시대 열렸나

지난 2월 더 현대 서울에서 원소주 팝업스토어 오픈 행사를 연 힙합 아티스트 겸 원스피리츠 대표 박재범. 현대백화점 제공
떠오르는 소비주체인 MZ세대의 술 소비 트렌드는 기성세대와 달라요. 기성세대가 ‘부어라 마셔라 or 마시고 죽자’였다면, MZ세대는 술의 맛과 스토리를 즐기는 쪽이랄까요. 원소주라는 브랜드를 경험해 보았다는 것을 공유하는 놀이가 된 것입니다. 일단 원소주로 부어라 마셔라 하려면 지갑이 탈탈 털립니다. 술값 자체가 최대 7배 비싸요. (물론 돈으로 플렉스 할 수도 있겠지만….)
원소주가 증류식 소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반응도 있어요. 원소주 이전에도 힙스터들이 뉴욕에서 구해서 먹었다고 입소문이 돌았던 ‘토끼 소주’나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배우 고소영 등이 극찬했다는 ‘KHEE 소주’ 등이 스토리와 희소성 등으로 SNS 등에서 이슈가 되면서 증류주 바람을 예고했지요.
온라인에서 살 수 있는 술은 뭐가 달라?
원소주는 양조장이 강원도 원주에 있고 100% 원주에서 생산된 쌀만 사용하기 때문에 전통주로 분류돼 온라인 판매 허들을 넘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토끼 소주는 원래는 미국 술이었어요. 한국 전통 소주의 매력에 빠진 미국인 브랜 힐이 술 빚는 법을 배워 2016년 뉴욕에서 생산한 증류식 소주입니다. 누룩을 수입하지 못해 뉴욕에서 직접 배양에 성공하면서 이슈가 됐죠. 202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 양조장을 세웠고, 지역 전통술로 인정받아 온라인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병까지 당근하면 술이야, 굿즈야?
소주병의 디자인 패키지에도 하나하나 브랜드 스토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일단 ‘원’이라는 네이밍에는 하나(One)와 승리(Won)와 소망(Want)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태극기 건곤감리에서 패키지 디자인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고요. 하나하나 인스타에 자랑하기 좋게 되어있습니다.

원소주가 당근마켓에서 거래되고 있는 모습
박재범 팬덤은 화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예전에 박재범이 방송에 신고 나왔던 곰돌이 양말을 사기 위해 공장에 연락해 단종된 모델을 재생산하게 만든 일화는 팬덤 굿즈업계에서도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당장 당근마켓에 들어가서 원소주를 검색해보세요. 심심치 않게 공병을 거래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원소주 인기는 단순한 스타 팬덤일까요? 원소주 기획자 김희준 CCO와 브랜드 소개팅을 하고 돌아온 정세희 기자에게 다시 바통을 넘깁니다.
프로필
![[원스피리츠 인스타그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25/f23ae401-adc8-4354-b6a3-d586c9169219.jpg)
[원스피리츠 인스타그램]
워너비 : 술 좋아하고 광고도 잘 만드는 라이언 레이놀즈
가치관 : WANT하는 걸 WON하고 ONLY ONE이 되자
꿈: 대한민국 소주의 세계화
이상형: 오늘 하루 응원하고 내일의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 모든 이들
첫인상
![김희준 원소주 브랜드 매니저 [김희준 제공]](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25/476ea456-3d5d-4c0f-bc19-146c083f5f29.jpg)
김희준 원소주 브랜드 매니저 [김희준 제공]
초록색 소주는 가라, 힙한 소주가 왔다
“해외여행 가서 ‘한국에도 좋은 술이 많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모르더라고요. 초록색 병 술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브랜드는 몰랐어요. 희석식 소주 말고도 우리나라에 잘 만든 술이 많은데 안타까웠어요.”
이런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놨는데 마침 박재범이 소주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며 연결해줬대요. 박재범은 2019년부터 꾸준히 소주 브랜드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의 술에 대한 지식, 다양한 마케팅 경험과 박재범의 트렌디한 감각이 만나는 순간이었죠.
소주에서 쌀향이 난다고?

사진 연합뉴스
증류식 소주는 쌀, 보리, 고구마 등 재료를 발효시킨 다음 이를 증류시켜 만드는데요. 재료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어요. 보통 20도 이상으로 도수가 높아요.
반면 초록병 소주는 주정에 감미료를 넣고 물에 희석해 만들어요. 주정은 전분 성분이 있는 술의 재료인데요. 희석식 소주에는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자라는 카사바 식물 뿌리에서 추출한 식용 녹말 타피오카가 많이 쓰여요.
“쌀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1960~70년대만 해도 쌀로 밥을 해 먹지도 못했는데 이걸로 술을 빚는다는 거 자체가 어려웠죠. 그래서 주정을 활용한 희석식 소주가 많이 나왔어요. 이후 폭탄주 문화가 형성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더욱 빠르게 대중화됐죠.”
생각 날 때 꺼내 한 두 잔씩 마시고 잠가 두는 위스키처럼, 기분 좋게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술이 원소주가 되었으면 좋겠대요.
“부어라 마셔라 문화에선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가 가성비가 좋았죠. 그런데 코로나 이후 술 문화도 빠르게 변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과 딱 좋을 때까지 즐기고, 술의 재료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술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어요.”
22도, 24도 도수에 담긴 전략
“증류식 술은 도수가 높을수록 맛있어요. 하지만 16~17도짜리 술을 즐기던 분에게 너무 높을 수 있으니까, 일단 한 발짝 손을 내밀었어요. ‘증류주의 매력에 한 번 빠져 보세요’하고요. 다행히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요. 1차는 통과한 거죠.”
7월에 출시될 신제품은 24도로 2도 더 올렸어요. “한식은 맛이 강하기 때문에 22도가 음식을 뚫고 나오기에는 부족하거든요. ‘자 이제 2도 차이로 맛이 또 얼마나 달라지는지 경험해보세요’ 하고 한 번 더 손 내민 거예요.”
전통을 내세우지 않는 라벨링
![원소주 팝업 현장 포스터 [원스피리츠 제공]](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25/42afc087-eb2f-46d5-bf4b-9ea0aa17dd02.jpg)
원소주 팝업 현장 포스터 [원스피리츠 제공]
“우리나라 사람들은 양주 같다고 평가하지만, 외국인들이 봤을 때 라벨이 굉장히 전통적이라고 해요. 자세히 보면 태극기의 건곤감리도 들어가 있고 한국의 원 화폐 단위도 들어가 있어요. 소재 자체도 천으로 만들었어요. 한지를 떠올리게 해 더욱 전통적인 느낌이 나죠.”
홍보할 때 전통주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MZ세대들도 K팝, K뷰티 등 한류 문화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고유의 것을 대놓고 어필하면 젊은층과 멀어져요. 트렌드에 끌려서 먹어보니 전통주였네를 노린 거죠. 그래야만 ‘우리나라 전통주가 맛있네, 다른 전통주는 또 뭐가 있을까?’하며 자발적으로 움직일 거거든요.”
‘원’불교와 목탁 에디션? 유쾌한 원소주
스타마케팅의 승리로는 끝내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보였어요. “박재범 대표님의 원 소주라는 건 영원하겠죠. 그런데 그 틀 안에 갇힐 생각은 없어요.”
원소주는 애초에 처음부터 수출을 목표로 만든 술이었대요. 이미 ‘원 밀리언(부자되는 술)’ 같은 원소주 칵테일 레시피도 만들었다는데요. 칵테일을 만들려면 베이스가 깔끔해야 하는데, 이미 글로벌화까지 생각해 준비한 거죠.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게 목표예요. 올해 안에 해외에 진출할 예정이에요. 한국의 술 하면 원소주를 떠올리게 만들 거예요. 나중에 ‘원소주가 외화벌이하느라 고생했구나’ 칭찬하며 상을 줬으면 좋겠어요.”
원소주 맛있게 먹는 법
원소주의 인기에 가수 임창정도 증류식 소주를 판매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증류식 소주 시장이 커지는 걸까요? 연예인의 사업 아이템으로 변질되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고요? 똑똑한 소비자들은 소주에 진심인 브랜드를 기가 막히게 찾을 거라고 봐요. 참, 원소주는 7월부터 GS 편의점에서도 만나볼 수 있대요.
이번 소개팅은 여기까지예요. 원소주 더 만나볼까요, 말까요? 혹시 만나고픈 브랜드가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