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모가면 산골짜기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라드라비'. 바위 위에 건물이 들어섰다. 헤어디자이너 이상일씨가 디자인하고 10년에 걸쳐 가꾼 공간이다.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c57c2486-94e0-445f-90c4-365f3f4cb7df.jpg)
이천 모가면 산골짜기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라드라비'. 바위 위에 건물이 들어섰다. 헤어디자이너 이상일씨가 디자인하고 10년에 걸쳐 가꾼 공간이다. [사진 전재호 작가]
산속 신세계를 창조한 이는 전(前) 남자 미용사 이상일(66) 씨다. 이씨는 30년간 한국 미용업계의 지축을 흔들다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옆 ‘파크뷰 바이 헤어뉴스’를 끝으로 2012년 은퇴했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미용사 시절 장부를 들춰서 옛 고객과 지인에게 연락했다. “와서 밥 먹고 가라”는 이 씨의 초청에 나흘간 400명의 손님이 다녀갔고, 모두 놀랐다. 이 씨의 옛 고객이자 브랜드 전문가인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는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와. 광인(狂人)이 만든 공간이야”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씨가 10년간 매만진 복합문화공간 ‘라드라비’(L’art de la vie, 인생은 예술)의 개관식 날 풍경이었다.
![아카시 나무를 제외하고 나무를 베지 않고 건물을 지었다.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a1d3b59a-2f82-4bcd-8e89-16eeba518b41.jpg)
아카시 나무를 제외하고 나무를 베지 않고 건물을 지었다. [사진 전재호 작가]
![패션디자이너에서 미용사로, 이제 화가로 인생3막을 살고 있는 이상일씨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의 모습.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0bda04bd-fcde-450e-a968-17a2588e42e9.jpg)
패션디자이너에서 미용사로, 이제 화가로 인생3막을 살고 있는 이상일씨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의 모습. [사진 전재호 작가]
가위질로 숱한 유행을 창조하다 훌쩍 은퇴한 그가 손톱에 흙 때를 가득 낀 채 나타날 줄이야. 이천의 산골짜기 돌 틈에 자라난 버드나무 가지를 치며 가위질하고 있을 줄이야.
“손이 너무 예뻐서 손 모델도 하고, 기생오라비 같다고도 했는데 여기 와서 일하느라 손마디가 소도둑처럼 됐어. 저녁에 마디마다 파스 붙이고 해도 너무 행복해.” 은퇴하고 편히 쉴 법도 한데, 그는 왜 이런 공간을 손이 부르트도록 만들고선 행복하다고 하는 걸까.
![이상일의 손.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efbd99fa-06de-427c-b1ae-3f88c3183f76.jpg)
이상일의 손. [사진 전재호 작가]
치마 입은 남자 미용사
1981년 프랑스 국립미용학교를 수료하고 귀국한 그가 이듬해 서울 명동에 ‘헤어뉴스’ 1호점을 차렸을 때 ‘나리 미장원’ ‘꽃님이 미장원’ 일색이던 한국 미용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주간지에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말고 있는 여자 사진과 함께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 말던 시절이 그립습니다’는 카피 하나만 달랑 써 내보냈다. 두 번 정도 광고가 나가자, 잡지사로 이게 대체 뭐냐는 전화가 폭주했다.
![헤어뉴스 명동 1호점을 냈을 당시 잡지사 광고 이미지.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dd893c26-30cf-4dea-9a9c-1e25ec732940.jpg)
헤어뉴스 명동 1호점을 냈을 당시 잡지사 광고 이미지. [사진 전재호 작가]
일찍 성공했고, 일찍 은퇴했다. 은퇴한 그가 산속에 컨테이너 하나 놓고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자연이 참 좋더란다. 나만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싶었다. “고객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아 이렇게 성장하고 물질을 모았는데 돌려드려야지,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 말고 가진 재능을 다 펼쳐 보이며 후배들의 롤모델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곧장 앞산에 올라가 산자락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산의 등고선을 따라 미술관·객실·레스토랑 등과 같은 건물을 스케치했고, 그림은 현실이 됐다.
자연이 주인공이지
우선 산능선 꼭대기에 한옥 세 채를 지었다. 그리고 바위 등고선을 따라 내려가며 단층 건물을 구불구불하게 앉혔다. 진달래 나무 한 그루라도 있으면 나무를 피하기 위해 건물을 줄였다. 건물 모양이 구불구불하고, 계단과 길이 좁았다 넓어졌다 오락가락하는 이유다. 자연의 흐름에 따르느라 계단 난간마저 현장에서 일일이 제작했으니 공사비는 수직으로 상승했고, 이씨는 고집스레 감당했다.
![산능성이에 앉힌 한옥 객실. 생들기름으로 나무를 수없이 닦아 고재처럼 착색했다.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3a852f0d-7966-42aa-b038-14bdb902522a.jpg)
산능성이에 앉힌 한옥 객실. 생들기름으로 나무를 수없이 닦아 고재처럼 착색했다. [사진 전재호 작가]
![한옥 내부.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cefe3b89-81a8-465d-91bb-d8e34541cfeb.jpg)
한옥 내부. [사진 전재호 작가]
![바위 지형을 따라 건물을 앉히느라, 난간조차도 현장 제작했다.[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7d009439-be31-4dff-89f2-b737cbb121c0.jpg)
바위 지형을 따라 건물을 앉히느라, 난간조차도 현장 제작했다.[사진 전재호 작가]
숲속에 지은 객실의 경우 100t짜리 크레인을 불러다 멀찍이 세워놓고 철제 기둥을 크레인으로 옮겨 나무 사이에 꽂고 집을 티나지 않게 집어넣었다. 홍송 옆에는 붉은 벽돌, 참나무 옆에는 회벽돌로 집을 지었다. 객실마다 압구정ㆍ팔당ㆍ덕소 등 그와 아내가 살아온 동네 이름을 붙이고 실내도 그 시절 유행하던 스타일로 꾸몄다. 한옥의 경우 과거 충남 아산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참판 댁 별채를 빌려 6년간 살며 배운 것을 되살려 지었다. 그의 경험과 감성을 토대로 지은 ‘이상일표 감각의 제국’이 그렇게 완성됐다.
이 모든 공사를 이천의 인력만을 활용해 직영으로 했다. 자연스럽기 위한, 참으로 유별난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지난 여름 폭우가 쏟아졌을 때, 미술관·객실·레스토랑 등 라드라비의 모든 공간은 끄떡없었다. 자연대로 지으니 탈이 안 나더라는 것.
![숲속에 파묻힌 양옥객실. 나무를 자르지 않고 크레인을 동원해 지었다.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6baa2d34-17b1-48f0-96f0-99dc5da0702e.jpg)
숲속에 파묻힌 양옥객실. 나무를 자르지 않고 크레인을 동원해 지었다. [사진 전재호 작가]
“이 선생 나 좀 봐요. 내가 세계적으로 좋은데도 다 다녀보고 사업도 많이 펼쳐봤지만, 사인하고 오픈하는 날 가서 테이프 커팅만 했지. 이렇게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 참 대단해. 나는 이런 과정을 모르고 산 것 같아요.”
인생은 예술이야
![이상일씨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59189f5d-11bf-4c93-8d75-80576d3fd1df.jpg)
이상일씨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사진 전재호 작가]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그림. 장면들이 살아 움직인다.[사진 전재호 작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9013106b-1050-409a-ab82-dcff709eedb2.jpg)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그림. 장면들이 살아 움직인다.[사진 전재호 작가]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에요. 항상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삶이고,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해요. 한 시간이라도 자기 정신없이 산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는 오늘도 창조했는가. 이게 내 삶의 신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