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아 초음파사진
#결혼 4년차 정 모(33) 씨 부부는 2020년 딸을 낳았다. 맞벌이 중인 두 사람은 둘째는 낳지 않을 생각이다. 정씨는 “결혼 전부터 딸을 낳고 싶었는데 소원 성취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둘 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아이 하나인데도 양가 부모님께 신세를 진다”라며 “딸 하나면 충분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출생아의 성비는 104.8명이다. 여아 100명이 태어날 때 104명의 남아가 태어났다는 의미다. 자연성비(104~106명) 범위에 들어가는 정상적인 수준이다. 지역별ㆍ출산순위별로 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울산의 성비는 99.1명으로 자연성비 아래로 떨어졌다. 첫째아 성비는 98.2명이나 둘째는 102.9명으로 살짝 올랐다가 셋째아 이상에서는 87.7명까지 떨어진다. 남아가 비정상적으로 적게 태어났다는 얘기다. 출생성비가 자연성비 이하로 떨어진 지역은 울산 외에도 광주ㆍ세종ㆍ강원ㆍ전북 등 5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 사회의 남아선호사상이 자취를 감췄다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2006~2007년에만 해도 전체 성비로 보면 정상인데 첫째가 아닌 둘째, 셋째아 성비를 보면 남아가 훨씬 많은, 성비 불균형 상태였다”라며 “지금은 출산 순위별로 봐도 자연성비 범위 내로 들어와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 여아보다 남아가 조금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에 자연 성비를 104~106명으로 보는데, 일부 지역의 성비가 100 이하로 떨어지는 건 거꾸로 ‘여아 선호’ 경향이 커졌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라고 풀이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산부인과 전문의)은 “예전엔 뱃속 아이가 아들이라고 하면 만세 하고, 딸이라 하면 눈물 흘리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완전히 바뀌었다”라며 “‘딸입니다’라는 말에 ‘너무 좋아요’라며 기뻐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라고 전했다.
3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국내 출생아 성비 불균형이 가장 극심했던 해인 1990년, 여아 100명이 태어날 때 남아 116명이 태어났다. 당시 첫째아 성비는 108명이지만, 둘째아는 117.1명으로 뛰어오르고, 셋째아 이상에서는 193.7명이라는 기형적인 성비가 나타났다. 당시 성비 불균형은 경북(130.7명), 대구(129.7명), 경남(124.7명) 등 영남지역에서 더 심하게 나타났는데, 대구의 셋째아 이상 성비는 392.2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아들 하나는 낳아야 한다”는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고, 초음파 기기가 도입되면서 태아 성 감별과 선별 낙태가 성행한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추세는 1980년대 후반~1990년 초반 계속 이어졌는데, 1990년의 경우 ‘백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에 여아 출산을 더 기피했다고 알려졌다.

신생아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1980년대 이전에는 아들을 낳고 싶다면 낳을 때까지 임신ㆍ출산했지만, 산아제한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하나 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분위기가 퍼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 산전검사와 초음파 기기가 도입됐고, 하나 아니면 둘을 낳다 보니 ‘내가 원하는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이 더해지면서 원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낙태가 흔했다”라고 설명했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출생아 숫자가 60만명대로 급감했는데, 이에 더해 여아 선별 낙태가 성행하면서 성비 불균형마저 심각해졌다.
그는 “당시 출생한 아이들의 성비 불균형은 30년이 지난 지금 가임기 여성 감소를 불렀다”라며 “잘못된 인구 정책 후유증이 현재의 저출산, 인구 소멸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30년 전에 시작된 인구 재앙의 여파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1분기(1∼3월) 합계 출산율이 같은 분기 기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분기 출생아 수도 역대 최소를 기록한 데다 사망자는 급증하면서 인구의 자연 감소가 29개월째 이어졌다. 조영태 교수는 “지난해까지 가임기 여성 숫자 자체가 최저를 기록했다. 올해도 합계출산율은 0.79명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