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 해외입국자들이 검역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승객들 앞에는 원숭이두창 관련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괌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A씨는 “오래전에 끊어 놓은 거라 떠나지만,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퍼진 감염병 ‘원숭이두창’ 때문이다. A씨는 “코로나19 당시 각종 ‘1호 확진자’에게 가혹하고 엄했던 동선 공개나 신상털이를 기억한다. 만에 하나 내가 그 ‘1호’가 될까 봐 신경이 쓰인다. 갔다 온 후 더 철저히 건강상태를 지켜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남긴 ‘1호 트라우마’
최근 방역당국에서 원숭이두창을 코로나19와 동급인 ‘2급 감염병’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해외에서 원숭이두창의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하고 국내 유입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A씨와 같은 걱정을 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이모(29)씨는 “최근 면역력이 떨어져 팔 쪽에 두드러기가 났는데, 마침 원숭이두창 기사가 나오고 있어 정말 깜짝 놀랐다”며 “단순 피부 질환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 혹시 내가 ‘1호 확진자’일까 봐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김모(29)씨는 “코로나19도 처음 유행했을 때,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면서 “원숭이두창도 코로나19처럼 수인공통감염병인 만큼 언제 퍼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이 입국자를 기다리는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그는 이어 “특히 원숭이두창의 경우 동성 간 성적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는 말도 나오는데, 과거 이태원 클럽 발 확진에서도 확진자들에게 가해졌던 사회적 뭇매나 편견을 기억하면 이런 두려움은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최일선에선 “악몽 재현될까”
의료계와 생업 등 각종 최일선에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이들은 감염병은 아직 낫지 않은 상처라고 말했다.
3년 차 간호사인 한모(28)씨는 최근 며칠간 출근준비를 할 때면 원숭이두창에 대한 기사를 찾아본다고 했다. 그는 “확진자가 정점이었던 시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갔었다”면서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로나19때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고 말했다.
경상북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경일(29)씨는 “코로나19 동안 매출이 25~30% 줄었다. 무엇보다 억울했던 건 영세 소상공인들한테만 가혹했던 방역 정책”이라면서 “카페 사장님들이 모인 단체 방에 원숭이두창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올라오고 다들 관심이 많다. ‘또 우리만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오면 이번처럼 우리만 온전히 피해를 감내할 거 같진 않다”고 했다.

한 브랜드카페 점주들이 모여있는 단체대화방에선 최근 들어 원숭이두창에 대한 기사가 자주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주로 코로나19 당시 방역 정책이 다시 시행될 가능성을 걱정한다고 한다. 김경일씨 제공
전문가 “코로나19 수준까진 안 갈 것”
전문가들은 원숭이두창에 대해 선제 조처를 해야 하지만 우려해야 할 수준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병은 전파력과 치명률이 중요한데, 원숭이두창은 큰 비말이나 밀접한 신체접촉으로 전염되는 만큼 전파력이 높지 않다. 치사율도 3%로 알려졌지만,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선 사망자가 아직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잠복기가 코로나19보다 길고, 이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만큼 방역 당국에서 정확한 정보와 증상 등을 알려주는 등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원숭이두창이 동성애자 병이라는 낙인 등 잘못된 정보가 많다. 이럴수록 확진자가 숨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밀접한 접촉으로 감염되는 병이지 동성 성관계가 전파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