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 사진은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관련해 문제 제기를 한 이용수 할머니. 그래픽=김은교
진실공방과 별개로 꼭 짚어야 하는 얘기가 있다. 합의 당시 생존 위안부 피해자는 총 47명이고 관련한 다른 시민단체도 있었는데 외교부가 합의 내용을 미리 설명한 사람은 윤 의원이 유일했다. 결국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지는 본질은 윤미향의 과(過) 대표성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당시 정부(외교부)가 피해자 모두의 의사를 아우르는 대표성이 없는 인물에게 과도한 대표 자격을 부여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라는 얘기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 전까지 위안부와 관련한 정대협의 활동은 이견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성역이었다. 위안부 일을 담당하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이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명히 보여준다고 느꼈다.
![한변이 공개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면담 내용을 담은 문건. 합의 전날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를 만나 일본의 10억엔 출연 내용을 전달했다고 되어 있다. [사진 한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6/fc059544-9cdf-4e32-b091-5462c4940fac.jpg)
한변이 공개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면담 내용을 담은 문건. 합의 전날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를 만나 일본의 10억엔 출연 내용을 전달했다고 되어 있다. [사진 한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생존 할머니 한 분이 조 장관 만나길 꺼린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전화 통화를 했다. 장관 만났다가 온 동네에 위안부 피해자라는 소문이 났다는데 본인도 그런 일을 겪을까 봐 겁이 난다는 거였다. 큰일이다 싶었다. 그런 일이 없도록 조처를 해야 했다. 그 할머니한테 그런 말을 전한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확인했더니 사실이 아니었다. 장관이 피해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 누군가가 정부와 할머니들 사이를 이간시킨 거라 짐작했다.
![지난 2013년 조윤선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이 충북 보은에 사는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를 찾았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6/f2f98d1e-87e1-4e4a-8b48-299516f93152.jpg)
지난 2013년 조윤선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이 충북 보은에 사는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를 찾았다. [연합뉴스]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정부 요청에 의해 화해치유재단 이사로도 활동했다. 합의문 내용을 피해 할머니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개별 방문을 시도했는데 방문이 성사되지 못한 두 곳이 각각 정대협과 나눔의 집이 운영하는 쉼터였다. 공문을 보냈더니 한 단체는 할머니들이 면담을 원하지 않는다는 회신을 보내왔고 또 다른 단체는 회신조차 없었다. 결국 두 쉼터의 할머니들에게는 직접 설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그 후 한 할머니가 외교부 앞에서 시위하며 화해치유재단 사람들을 만나 본 적도, 한마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인터뷰한걸 봤다. 할머니 의사라며 면담일정조차 안 잡아주던 단체들과 상반된 입장이었다. 피해 할머니들 중에는 단체 관계자 몰래 화해치유재단으로 연락해 일본 정부 위로금을 수령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분도 있었다. 할머니를 내세운 단체들 입장이 할머니들의 진짜 의사와는 달랐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현 무소속)은 지난 2020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대표 기간에 불거진 부정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김경빈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전시 성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역사적 비극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야 입장이 다를 수 없고, 정부와 시민단체 입장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특정 진영, 몇몇 시민단체에 독점화되어 있었다. 역사의 사유화였고, 피해자들의 도구화였다고 생각한다. 참상을 겪을 당시에도 가족·사회·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는데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누군가의 직업을 위해, 누군가의 권력을 위해, 누군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다.
![지난 2016년 1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6/38b8b25e-ee7c-4252-86b5-710e60a8cd8e.jpg)
지난 2016년 1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