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신' 나달 14번째 프랑스오픈 우승 새 역사...메이저 22회 우승

14번째 프랑스오픈 우승을 차지한 '클레이코트의 황제' 나달. [AP=연합뉴스]

14번째 프랑스오픈 우승을 차지한 '클레이코트의 황제' 나달. [AP=연합뉴스]

우승 후 하늘을 향해 두 주목을 내리지는 나달. [AP=연합뉴스]

우승 후 하늘을 향해 두 주목을 내리지는 나달. [AP=연합뉴스]

혼신의 백핸드샷이 테니스 코트 오른쪽 구석 깊숙한 지점에 꽂히며 매치포인트로 연결되자,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감격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관중은 숫자 '14'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라파(나달 애칭)'를 외쳤다. 

세계 랭킹 5위 나달이 6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2022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에서 8위 카스페르 루드(24·노르웨이)를 3-0(6-3, 6-3, 6-0)으로 꺾고 이 대회 통산 14번째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이었다. 

나달은 메이저 대회 우승 횟수를 22회로 늘렸다. 역대 최다다. [AP=연합뉴스]

나달은 메이저 대회 우승 횟수를 22회로 늘렸다. 역대 최다다. [AP=연합뉴스]

이 대회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인 그는 2년 만에 왕좌에 복귀했다. 우승 상금은 220만 유로(약 29억5000만원). 클레이코트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클레이코트의 황제' '흙신' 등으로 통하는 그는 이 대회 결승에 14차례 올라 모두 우승하는 진기록을 썼다. 프랑스오픈은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US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 중 유일한 클레이코트 대회다. 만 36세인 나달은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최고령 우승 기록도 썼다. 종전 기록 보유자는 34세의 나이로 1972년 대회에 정상에 섰던 안드레스 히메노(스페인)였다. 프랑스오픈 홈페이지는 "승리는 가장 꾸준한 자의 것"이라고 전했다. 

나달은 이날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 횟수도 22회로 늘렸다. 20회로 이 부문 공동 2위인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로저 페더러(47위·스위스)와 격차를 벌렸다.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 8강에서 나달에 패했고, 페더러는 무릎 부상 여파로 불참했다. 

나달의 14차례 우승 모습. [AFP=연합뉴스]

나달의 14차례 우승 모습. [AFP=연합뉴스]

36세 나달은 자신이 우승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AP=연합뉴스]

36세 나달은 자신이 우승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AP=연합뉴스]

나달은 고질적인 왼쪽 발목 부상이 악화해 스피드와 포핸드 공격이 무뎌졌다. 이번 대회에선 왼발에 마취 주사를 맞고 뛰었다. 그런 그가 정상에 선 건 노련하고 끈기있는 경기 운영 덕분이다. 나달은 승부처였던 펠릭스 오제알리아심(캐나다)과의 16강전에서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첫 세트를 내줬지만, 공격을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나달보다는 조급해져 공격을 몰아친 오제알리아심의 체력 소모가 더 컸다. 결국 4시간 21분간의 풀세트 혈투 끝에 3-2로 이겼다. 


스페인 축구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광팬인 나달은 16강을 불과 17시간 앞두고 파리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잉글랜드)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직접 찾아 응원하며 긴장을 풀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리버풀을 꺾고 통산 14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는데, 팬들은 나달이 레알 마드리드의 기를 받아 똑같이 1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고 말한다. 나달은 라이벌 조코비치와의 8강전도 4시간 12분간의 접전 끝에 3-1로 이겼다. 

노장 나달은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EPA=연합뉴스]

노장 나달은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EPA=연합뉴스]

결승에선 힘과 스피드에선 12살 어린 루드에 밀렸다. 나달은 긴 랠리를 유도하며 루드의 주 무기인 포핸드를 봉쇄하는 대신 백핸드로 받아치도록 유도했다. 나달에게 주도권을 뺏긴 루드는 실수를 연발하면서 경기는 2시간 18분 만에 끝났다. 

루드가 어려운 샷을 성공할 때마다 손바닥으로 라켓을 치며 칭찬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날 서브에이스는 두 선수의 기록을 통틀어 나달만 1개를 때렸다. 나달은 위너(37-16), 언포스드에러(18-26) 등 대부분 수치에서 루드에게 우위를 보였다. 

루드는 나달을 가리켜 진정한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AP=연합뉴스]

루드는 나달을 가리켜 진정한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AP=연합뉴스]

루드는 노르웨이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 오른 것에 만족해야 했다. 루드와 나달이 공식 대회에서 대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둘은 서로 잘 아는 사이다. 루드가 나달이 운영하는 라파 나달 아카데미 출신이라서다. 루드는 2018년부터 아카데미에서 훈련하며 나달과 여러 차례 연습 경기를 했다. 루드는 "당신은 이 대회에서만 14차례 우승했고, 메이저 대회는 22차례 우승한 챔피언이다. 오늘 나는 당신과 결승전을 치르는 게 어떤 건지 경험했다. 쉽지 않았다. 나와 세계 테니스계 당신에게 진정한 영감을 받았다. 당분간 더 현역으로 뛰길 바란다"고 축하했다.  

나달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36세의 나이로 프랑스오픈 결승 무대에 서고 우승가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척 큰 의미가 있는 우승, 아니 모든 의미가 담긴 우승이다. 계속 뛸 수 있는 에너지가 됐다. 앞으로 내 커리어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싸울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나달의 도전은 계속된다. 지난 1월 호주오픈에 이어 프랑스오픈까지 석권하는 그는 생애 처음이자, 1969년 로드 레이버(호주) 이후 52년 만의 남자 테니스 '캘린더 그랜드슬램(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 모두 우승)'을 노린다. 윔블던은 이달 27일, US오픈은 오는 8월 열린다. 

나달은 우선 부상 치료에 전념할 예정이다. 고주파 열치료로 통증을 줄이는 시술을 받는다. 효과가 없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나달은 "시술이 성공한다면 계속 전진하겠지만, 안 통한다면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수술을 받으면 다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지, 오랜 회복 끝에 다시 코트로 돌아올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몸이 윔블던에 나갈 준비가 된다면 갈 것이다. 윔블던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소염제만으로 충분하다면 가겠지만, 마취 주사를 맞으면서까지 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편 마지막일수도 있는 나달의 프랑스오픈 우승을 두고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유명 스포츠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전 남자 테니스 랭킹 3위 이반 류비치치(크로아티아)는 트위터에서 "프랑스오픈에 14번 출전하기도 힘든데, 나달은 14번 우승했다"면서 "스타드 롤랑가로스의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 이름을 나달 코트로 바꿔야 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