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시 중흥동에 조성 중인 '한강 북카페' 자리. 이 터 길 건너편에 한강 작가가 살던 집이 있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한강은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로 이사 온 건 1980년 1월.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지 않아 광주에서 그 사달이 일어났다. 이태쯤 뒤 광주 소녀는 서가에 거꾸로 꽂힌 사진집 한 권을 아버지 몰래 펼쳤다. 그 사진집에서 소녀는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했다.
소녀가 들췄던 사진집에는 인간을 죽이려고 총을 든 인간도 있었고, 인간을 살리려고 긴 헌혈 줄을 선 인간도 있었다. 광주 소녀는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었고, 긴 세월이 지난 뒤 그 질문들을 소설책 한 권에 눌러 담았다. 그 소설이 『소년이 온다』(2014)다. 한강이 노벨상 받는 자리에서 “이 책”이라고 콕 짚은 작품이다.

5ㆍ18 당시 헌혈을 위해 광주적십자병원에 모인 시민들. 사진은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가 촬영했고, 현재 옛 광주적십자병원에서 관련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5ㆍ18기념재단
광주는 올 5·18을 소년과 함께 보낼 참이다. 『소년이 온다』를 주제로 전시회·공연·여행상품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소년의 길.’ 광주관광공사가 기획한 ‘광주 소년 투어’의 이름이다. 한강에 감사 말씀을 올린다. 덕분에 해외로 안 나가도 노벨문학상 문학기행을 할 수 있었다.
소년을 찾아서

『소년이 온다』 의 주인공 동호의 모델이 된 문재학 열사 관련 자료.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에서 자료를 촬영했다.
문재학 열사가 살았던 동네가 광주시 북구 중흥동이다. 한강이 효동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문재학 열사 집이 학교 바로 옆이었다. 한강의 옛집은 학교에서 500m 거리에 있었다. 한강이 문재학 열사를 주목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골목에서 여러 번 마주쳤던 동네 오빠였을 테다. 한강은 1970년생이고, 문재학 열사는 1964년생이다.

한강이 살던 집터. 지금은 조립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그녀가 말한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세상 엄마의 걱정은 똑같다. 제 자식 끼니 걱정이다. 그해 5월 재학이 엄마도 도청을 지키는 아들에게 “같이 밥 먹자”고 말하고 돌아섰다. 이승에서 모자가 나눈 마지막 대화다. 재학이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그해 6월 망월동 공동묘지에서 발견했다. 아들 머리에는 머리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한강이 살았던 광주 집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생가고, 다른 한 집이 한강이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효동초등학교 근처 집이다. 이 집터에는 현재 조립식 건물이 들어섰다. 광주시에서 이 건물을 사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대신 건너편 공터를 사 ‘한강 북카페’를 조성 중이다. 올 연말에는 북카페가 문을 연다고 한다. 옛 도청 건물 앞 ‘5·18민주광장’에 동호가 일했던 상무관이 있다. 그러나 장벽이 쳐 있어 들어가기는커녕 볼 수도 없다. 내부 공사중이라는데 올 연말께 개방될 예정이다.

김주원 기자
소년들의 거리

전남대 벽화. 옛날 대학에는 이런 대형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전남대 민주길에 ‘윤상원 숲’이 있다. 전남대 출신 윤상원(1950∼1980) 열사의 흉상을 세운 숲이다. 윤상원 열사는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윤상원 열사는 1978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그해 12월 26일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과 1982년 결혼식을 치렀다. 신랑도, 신부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영혼들의 결혼식이었다. 그 결혼식에 바치려고 만든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통일운동가 백기완(1932∼2021)의 시 ‘묏비나리’를 바탕으로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지었다.
금남로로 들어서면 먼저 대인시장을 들러야 한다. 그해 5월 금남로를 가득 메웠던 광주 시민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주던 현장이다. 주먹밥 쥐여주는 어머니는 이제 없지만, 45년 전 일을 물어보면 누구든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증언한다. 시장에서 순대국밥만 먹고 나와도 좋다. 주먹밥은 ‘전일빌딩245’ 기념품 가게에서 판다.

광주극장. 아직도 손으로 그린 그림을 극장 간판에 거는 진짜 '옛날 극장'이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전무. 극장 간판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다음으로 가볼 곳은 광주극장 바로 곁의 독립서점 ‘소년의서(書)’다. 2016년 책방 주인 임인자씨가 『소년이 온다』를 감명 깊게 읽고 책방 간판에 ‘소년’을 걸었는데, 한강이 노벨상을 받은 뒤 하루아침에 광주 명소가 돼 버렸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를 찾은 여행자들이 성지 순례하듯이 방문해 한강의 다른 작품들을 사간다고 한다. 심지어 선물을 주고 가는 손님도 있었단다. 여행기자도 여기에서 한강의 새 산문집 『빛과 실』을 샀다.

광주 독립서점 '소년의서'의 한강 코너. 책 위에 놓인 모자 인형은 손님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소년이 있던 자리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년이 온다’ 특별 전시회 장면. 소설 속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현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소년이 온다’ 특별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소설의 주요 대목을 주제별로 나눠 소설 속 설정과 현실 역사를 적절히 배치했다. 문재학 열사 관련 기록도 이곳에서 발견했다. 소설 문장을 원고지에 필사하는 체험 코너가 있는데, 의외로 인기가 높다.

전일빌딩245 10층. 헬기 사격의 현장을 증명하는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2016∼2017년 네 차례에 걸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현장 감식 결과, 전일빌딩에서 모두 245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됐다. 특히 건물 10층에서 탄흔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10층 건물 기둥에 박힌 총알 자국은, 누가 봐도 건물보다 높은 곳에서 쏜 것이었다. 앞서 적었듯이 당시 전일빌딩은 광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금남로 245번지에서 발견된 탄흔 245개. ‘전일빌딩245’가 여기서 나왔다. 우연치고는 얄궂다.

전일빌딩 옥상 전일마루에서 내려다본 5ㆍ18민주광장. 사진 왼쪽 장벽을 두른 건물이 상무관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 전남도청 건물 뒤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