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은 어디 있을까…올해 5월 광주는 '노벨문학상 투어'

광주시 중흥동에 조성 중인 '한강 북카페' 자리. 이 터 길 건너편에 한강 작가가 살던 집이 있다.

광주시 중흥동에 조성 중인 '한강 북카페' 자리. 이 터 길 건너편에 한강 작가가 살던 집이 있다.

5월 광주로의 여행은 오롯이 아래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열린 2024년 12월 10일, 소설가 한강(54)이 스웨덴 한림원에서 읽은 수상 강연문의 일부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한강은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로 이사 온 건 1980년 1월.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지 않아 광주에서 그 사달이 일어났다. 이태쯤 뒤 광주 소녀는 서가에 거꾸로 꽂힌 사진집 한 권을 아버지 몰래 펼쳤다. 그 사진집에서 소녀는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했다. 

소녀가 들췄던 사진집에는 인간을 죽이려고 총을 든 인간도 있었고, 인간을 살리려고 긴 헌혈 줄을 선 인간도 있었다. 광주 소녀는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었고, 긴 세월이 지난 뒤 그 질문들을 소설책 한 권에 눌러 담았다. 그 소설이 『소년이 온다』(2014)다. 한강이 노벨상 받는 자리에서 “이 책”이라고 콕 짚은 작품이다.   

5ㆍ18 당시 헌혈을 위해 광주적십자병원에 모인 시민들. 사진은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가 촬영했고, 현재 옛 광주적십자병원에서 관련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5ㆍ18기념재단

5ㆍ18 당시 헌혈을 위해 광주적십자병원에 모인 시민들. 사진은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가 촬영했고, 현재 옛 광주적십자병원에서 관련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5ㆍ18기념재단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5주기다. 올 5·18은, 여느 해와 다른 의미로 각별하다.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고 처음 맞는 5·18이어서다. 앞서 적은 것처럼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림원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강렬한 시적 산문을 남긴 한국 작가 한강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광주는 올 5·18을 소년과 함께 보낼 참이다. 『소년이 온다』를 주제로 전시회·공연·여행상품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소년의 길.’ 광주관광공사가 기획한 ‘광주 소년 투어’의 이름이다. 한강에 감사 말씀을 올린다. 덕분에 해외로 안 나가도 노벨문학상 문학기행을 할 수 있었다.


소년을 찾아서

『소년이 온다』는 근래 10년간 한국문학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지난해 10월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연말까지 팔린 책만 120만 부가 넘는다. 하여 줄거리는, 소설을 안 읽은 사람도 대충 안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헬기와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왔을 때, 마지막까지 도청(옛 전남도청)을 지켰던 광주 시민의 이야기. 특히 ‘막내 시민군’ 동호의 서사가 소설을 이끈다. 동호가, 한강의 그 소년이다.

『소년이 온다』 의 주인공 동호의 모델이 된 문재학 열사 관련 자료.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에서 자료를 촬영했다.

『소년이 온다』 의 주인공 동호의 모델이 된 문재학 열사 관련 자료.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에서 자료를 촬영했다.

동호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이 있다. 동호처럼 도청에서 마지막을 보낸 학생 시민군 문재학 열사다. 문재학 열사는 그해 5월 도청에서 잡심부름을 했었다. 소설에서 동호도 도청 상무관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당시 상무관은 희생자 주검 임시 안치소로 쓰였다. 문재학 열사도 동호처럼 총에 맞아 먼저 죽은 친구가 있었다. 동호는 친구를 먼저 보낸 죄책감에 도청을 떠나지 못했다. 문재학 열사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동호는 중학교 3학년으로 나오지만, 문재학 열사는 그해 5월 광주상고 1학년이었다. 

문재학 열사가 살았던 동네가 광주시 북구 중흥동이다. 한강이 효동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문재학 열사 집이 학교 바로 옆이었다. 한강의 옛집은 학교에서 500m 거리에 있었다. 한강이 문재학 열사를 주목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골목에서 여러 번 마주쳤던 동네 오빠였을 테다. 한강은 1970년생이고, 문재학 열사는 1964년생이다. 

한강이 살던 집터. 지금은 조립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강이 살던 집터. 지금은 조립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소설에는 작가도 등장한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의 화자가 한강이다. 맨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땐 에필로그에 나오는 이야기가 다 사실인 줄 알았는데, 현장을 돌아보니 팩트와 허구가 영리하게 섞여 있었다. 이를테면 소설에서는 화자 ‘나’가 동호 어머니를 못 만나는 것으로 나오지만, 한강은 문재학 열사 어머니 김길자(85)씨를 실제로 만나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에서 취재한 내용으로 한강은 아래 대목을 구성했다. 1980년 5월 26일 오후, 아들이 걱정돼 어머니가 도청을 찾아갔을 때 이야기다.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그녀가 말한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세상 엄마의 걱정은 똑같다. 제 자식 끼니 걱정이다. 그해 5월 재학이 엄마도 도청을 지키는 아들에게 “같이 밥 먹자”고 말하고 돌아섰다. 이승에서 모자가 나눈 마지막 대화다. 재학이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그해 6월 망월동 공동묘지에서 발견했다. 아들 머리에는 머리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한강이 살았던 광주 집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생가고, 다른 한 집이 한강이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효동초등학교 근처 집이다. 이 집터에는 현재 조립식 건물이 들어섰다. 광주시에서 이 건물을 사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대신 건너편 공터를 사 ‘한강 북카페’를 조성 중이다. 올 연말에는 북카페가 문을 연다고 한다. 옛 도청 건물 앞 ‘5·18민주광장’에 동호가 일했던 상무관이 있다. 그러나 장벽이 쳐 있어 들어가기는커녕 볼 수도 없다. 내부 공사중이라는데 올 연말께 개방될 예정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소년들의 거리 

이제 소년과 함께 광주를 여행할 차례다. 광주에는 ‘오월길’이 있다. ‘5·18기념재단’이 5·18 주요 유적지를 연결한 걷기여행 코스다. 광주관광공사가 조성한 ‘소년의 길’도 오월길과 대부분 겹친다.

전남대 벽화. 옛날 대학에는 이런 대형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전남대 벽화. 옛날 대학에는 이런 대형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월길을 걷든 소년의 길을 걷든, 5월 광주 여행은 전남대에서 시작하길 권한다. 전남대 정문이 5·18 사적 1호다. 5·18은 하루 전날 전남대 시위가 확산하면서 발발했다. 다시 말해 전남대는 5·18의 최초 발상지다. 전남대 안에 ‘민주길’이 있다. 교정 구석구석을 이은 약 5㎞의 둘레길이다. 전남대 출신 민주열사 유적과 과거 집회가 열렸던 광장 등을 지난다. 

전남대 민주길에 ‘윤상원 숲’이 있다. 전남대 출신 윤상원(1950∼1980) 열사의 흉상을 세운 숲이다. 윤상원 열사는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윤상원 열사는 1978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그해 12월 26일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과 1982년 결혼식을 치렀다. 신랑도, 신부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영혼들의 결혼식이었다. 그 결혼식에 바치려고 만든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통일운동가 백기완(1932∼2021)의 시 ‘묏비나리’를 바탕으로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지었다.  

금남로로 들어서면 먼저 대인시장을 들러야 한다. 그해 5월 금남로를 가득 메웠던 광주 시민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주던 현장이다. 주먹밥 쥐여주는 어머니는 이제 없지만, 45년 전 일을 물어보면 누구든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증언한다. 시장에서 순대국밥만 먹고 나와도 좋다. 주먹밥은 ‘전일빌딩245’ 기념품 가게에서 판다. 

광주극장. 아직도 손으로 그린 그림을 극장 간판에 거는 진짜 '옛날 극장'이다.

광주극장. 아직도 손으로 그린 그림을 극장 간판에 거는 진짜 '옛날 극장'이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전무. 극장 간판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전무. 극장 간판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금남로로 접어들면 충장로를 먼저 들어가자. 이 골목에선 두 곳을 가봐야 한다. 우선 광주극장. 광주극장은 스스로 전설이 된 극장이다. 1935년 개관했으니 올해 90년 된 극장이다. 국내 유일의 단일 스크린 극장으로 아직도 손수 그린 간판을 내건다. 옛 정취가 고스란해 숱한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도 촬영했다. 김형수(56) 전무는 “극장 경영이 어렵지만, 광주 동구 고향사랑 기부제 지정 기부를 통해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가볼 곳은 광주극장 바로 곁의 독립서점 ‘소년의서(書)’다. 2016년 책방 주인 임인자씨가 『소년이 온다』를 감명 깊게 읽고 책방 간판에 ‘소년’을 걸었는데, 한강이 노벨상을 받은 뒤 하루아침에 광주 명소가 돼 버렸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를 찾은 여행자들이 성지 순례하듯이 방문해 한강의 다른 작품들을 사간다고 한다. 심지어 선물을 주고 가는 손님도 있었단다. 여행기자도 여기에서 한강의 새 산문집 『빛과 실』을 샀다.

광주 독립서점 '소년의서'의 한강 코너. 책 위에 놓인 모자 인형은 손님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광주 독립서점 '소년의서'의 한강 코너. 책 위에 놓인 모자 인형은 손님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충장로 골목에 들어온 김에 광주천까지 나아가자. 광주천 앞 골목 모퉁이에 낡은 건물이 서 있다. 옛 광주적십자병원 건물이다. 한동안 폐쇄돼 있던 옛 병원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임시 개방했다. 병원도 5·18 사적이다. 그해 5월 금남로에서 쓰러진 시민들이 이 병원으로 실려왔고, 병원에 피가 모자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시민이 제 피를 주러 긴 줄을 섰다. 소녀 한강이 사진집에서 봤던 헌혈하는 사진이 바로 이 병원에서 촬영됐다. 이 사진을 촬영한 주인공이 당시 중앙일보 사진부의 이창성 기자다. 

소년이 있던 자리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년이 온다’ 특별 전시회 장면. 소설 속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년이 온다’ 특별 전시회 장면. 소설 속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다시 금남로로 돌아온다. 지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바뀐 옛 도청 건물이 멀리 보인다. 도청 앞 5·18민주광장으로 가기 길, 지나치지 말아야 할 두 건물이 있다. 먼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5·18 관련 자료를 모아둔 곳이다. 

현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소년이 온다’ 특별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소설의 주요 대목을 주제별로 나눠 소설 속 설정과 현실 역사를 적절히 배치했다. 문재학 열사 관련 기록도 이곳에서 발견했다. 소설 문장을 원고지에 필사하는 체험 코너가 있는데, 의외로 인기가 높다.   

전일빌딩245 10층. 헬기 사격의 현장을 증명하는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전일빌딩245 10층. 헬기 사격의 현장을 증명하는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이제 ‘전일빌딩245’를 방문할 차례다. 전일빌딩은 5·18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건물이다. 전일빌딩은 옛 도청 바로 앞에 있다. 1968년 건축됐고, 1980년 당시 광주에서 가장 높은 10층 높이였다. 광주의 여러 언론사가 입주해 사용했고, 5·18의 중심지였다. 광주시 금남로 1가 1번지가 전일빌딩이었다. 이후 도로명 주소를 따라 ‘금남로 245’로 바뀌었다. 

2016∼2017년 네 차례에 걸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현장 감식 결과, 전일빌딩에서 모두 245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됐다. 특히 건물 10층에서 탄흔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10층 건물 기둥에 박힌 총알 자국은, 누가 봐도 건물보다 높은 곳에서 쏜 것이었다. 앞서 적었듯이 당시 전일빌딩은 광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금남로 245번지에서 발견된 탄흔 245개. ‘전일빌딩245’가 여기서 나왔다. 우연치고는 얄궂다. 

전일빌딩 옥상 전일마루에서 내려다본 5ㆍ18민주광장. 사진 왼쪽 장벽을 두른 건물이 상무관이다.

전일빌딩 옥상 전일마루에서 내려다본 5ㆍ18민주광장. 사진 왼쪽 장벽을 두른 건물이 상무관이다.

전일빌딩 옥상 ‘전일마루’는 광주의 새로운 야경 명소다. 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 옥상에 서면 발아래 옛 도청 건물이 보인다. 전일빌딩 옥상에서 보이는 도청 주변의 모든 것, 그러니까 시계탑·분수대·회화나무·광장·건물 모두 5·18 유적이다. 광주는 그렇게 온몸으로 1980년 5월을 증언한다. 5·18민주광장 시계탑에선 매일 오후 5시 18분이 되면 ‘임을 위한 행진곡’ 선율이 흘러나온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 전남도청 건물 뒤에 숨어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 전남도청 건물 뒤에 숨어 있다.

현재 복원 사업 중인 도청 건물 뒤에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 숨어 있다. 5·18을 기리기 위해 도청보다 낮게 지었다. 그래서 주요 시설이 모두 땅을 파고 지하로 들어갔다. 15∼18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5·18 레퍼토리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공연된다. 스타 연출 고선웅의 작품으로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