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뛴 호남 지역 광역단체장 후보들. 왼쪽부터 주기환(광주광역시), 이정현(전남도지사), 조배숙(전북도지사) 후보. 모두 15% 넘는 득표를 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같은 해 총선에선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호남 천재' 천정배와 목포고 동기인 아버지가 당연하게도 새정치국민회의(구 더불어민주당)를 열렬히 성원했다. 나도 따라 응원했다. 전라도는 김대중의 국민회의가, 충청도는 김종필의 자민련이, 경상도는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석권한 뒤 수도권 탈환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마치 내가 즐겨 하던 온라인 삼국지 게임을 보는 듯했다. 어린 나에게 국민회의는 호남인 한을 풀어주고 대한민국을 개혁할 정의로운 군대였다.
2000년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수능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며 노래 한 곡을 가르쳐줬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5·18 노래였다. 그렇게 아버지 세대의 아픔이 내게 대물림이 됐다.
호남 출신 많은 계양에 깃발꽂은 이재명
그런데도 민주당이 내세운 대선후보는 광주 시민이 붉은 피를 흘리던 때 화염병 한 번 던져보지 않은 범죄자이자 대장동 비리 의혹을 받는 이재명 전 경기지사였다. 심지어 대선에 패한 지 불과 두 달 뒤에 다시 이재명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의 정치적 고향 성남을 벗어나 호남 출향민이 많아 민주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던 인천 계양구에서 출마했다. 출마 명분이 부족한 탓인지 예상과 달리 정치적 무명인 동네 의사를 상대로도 고전하다가 김포공항 폐항이라는 황당한 공약을 내놨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의 로고에 이재명 후보의 얼굴을 합성한 그래픽. [트위터 캡처]](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7/29ef3034-9c40-4818-92f6-5b923119132c.jpg)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의 로고에 이재명 후보의 얼굴을 합성한 그래픽. [트위터 캡처]
송영길 불신임한 서울 교차 투표
일부 강성 여권(국민의힘) 지지자들은 호남 비하로도 모자라 차라리 독립해 살라는 과격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역으로 묻고 싶다. 2018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승리했는데, 그렇다면 대구·경북은 독립해 따로 살았어야 하나?
2020년 GRDP(1인당 지역내총생산)를 보면 대구가 꼴찌, 부산이 꼴찌에서 2등, 광주가 꼴찌에서 3등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방 권력을 한 정당이 독점하면서 빚어진 퇴보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니 인구 부족과 투자 부재의 악순환으로 전라도·경상도의 많은 도시가 소멸해간다. 서로 힘을 합쳐 해결책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누가 누구보고 따로 떨어져 살라 비난한단 말인가? 현실정치는 삼국지 게임처럼 전쟁과 섬멸의 대상이 아닌 타협과 연대의 대상이지 않은가?
"아따! 꼴도 보기 싫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호남은 과거 이 지역 출신 김대중뿐 아니라 노무현을 전폭 지원해 당선시킴으로써 노무현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호남의 이런 선택이 꼭 진보 정당만 향하는 건 아니다. 2016년 총선에선 안철수의 국민의당을 전폭 지지했고, 이명박 정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전주)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 이정현(순천)을 당선시켰다. 보수정당이라도 호남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이 주도적으로 지역과 나라의 발전을 이끄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이 이런 호남의 마음을 읽어 복합쇼핑몰 공약 같은 지역 밀착 공약을 개발해낸다면 충분히 호남에서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 광역의회 비례대표로 당선된 국민의힘 김용님 당선자. [뉴시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7/228ab2d7-3dfa-41c2-b75a-2d3bb886d152.jpg)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 광역의회 비례대표로 당선된 국민의힘 김용님 당선자. [뉴시스]
대안 세력 기다리는 호남
남북전쟁 시기 미국에선 북부의 공화당, 남부의 민주당이 지배적 정치권력을 형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반대의 정치지형이 형성됐다. 이런 역동적 정치권력 지형의 변화는 정당 간 경쟁을 촉발하여 나라 발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호남은 5·18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보수 정당을 지지했었고 오히려 대구 쪽이 진보 성향이 강한 곳이었다. 우리도 미국처럼 역동적 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