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알프스 빙하호인 안시 호숫가에서의 점심 식사.
이 지역을 ‘프랑스의 심장(Cœur de France)’이라고 부르며, 파리 같은 대도시와는 다른 프랑스 고유의 매력이 넘친다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기에 과연 그런지 궁금해졌다. 과거에 다녀본 파리와 동부 알자스, 남부 프로방스, 서부 보르도, 북서부 노르망디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경험상으로 프랑스는 어떤 지역에 가도 개성이 넘쳤다. 이번에는 어떨까.

프랑스 리옹의 푸르비에르 대성당.
공항 이름부터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라니
알프스산맥에서 지중해로 흘러내려 가는 론 강과 이탈리아와 유럽대륙 사이를 가로지르는 알프스 산맥 서부로 이뤄진 이 지역은 19세기 철도가 열리면서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관광‧레저가 발달한 곳이다.
고대 로마제국 속령인 갈리아의 수도였던 리옹부터 찾았다. 『어린 왕자』의 작가이자 비행사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성을 딴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에 혼자 도착했다. 리옹은 인구 200만 명으로 프랑스에서 파리와 마르세유 다음으로 크다. 론 강과 손 강이 도시 가운데에서 합류하면서 길고 좁은 반도를 형성한다. 프레스킬이라고 불리는 이 반도가 도시의 중심부다. 호텔로 가는 동안 리옹을 대표한다는 벨쿠르 광장과 레퓌블리크 광장을 지나면서 보니 시민들이 모여 5월의 시원한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인터콘티넨탈 리옹 오텔 듀’의 방에 들어서니 한글 손글씨로 환영 인사가 적혀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만난 호텔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스탄 자네통은 “한국인과 프랑스인 부모를 둔 20대 여성이 친구의 친구인데 특별히 부탁해 한글 손글씨 편지를 받아 객실에 넣어뒀다"고 했다. 정성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프랑스 리옹의 호텔인 인터콘티넨탈 오텔 듀의 외부. 중세부터 이어져온 병원을 호텔과 생활시설로 개조했다.
중세 병원을 21세기 호텔로 개조
호텔은 론 강변에 잡은 웅장한 돔형의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자체로 문화재였다. 중세 시대 병원이 들어선 뒤 시민들의 기부를 받아 수백 년간 증축을 거듭한 곳이라 병원이라는 뜻의 ‘오텔 듀(Hotel Dieu)’를 붙인다. 건물 곳곳에 남아있는 몇백 년 묵은 기부자 이름들이 인상적이었다. 기부를 기억하고 기리는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 알제리전 등에 참전하거나 희생됐던 군의관을 기리는 명패도 있어 그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2차대전 당시 건물 옥상에 올라가 프랑스 국기를 흔들어 미군의 오폭을 막았던 병사의 공로를 기리는 명패도 보였다. 당시 독일이 점령해 군 병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병원 근처의 다리는 당시 전투로 파괴됐다가 복구했다니 병원이 격전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 여기저기 총탄이나 파편으로 인한 손상이 보였다.
병원은 시설 현대화의 필요성 때문에 2007년 외곽으로 옮아가고 그 자리에 호텔과 함께 쇼핑몰, 카페 등 복합 생활시설이 조성돼 이용되고 있었다. 중세 때 지붕이 높게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방을 두 개 층으로 나눠 아래는 침실과 욕실, 위층은 거실과 출입구를 배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는 복층 호텔이었다. 두 개 층에 걸친 높은 창을 통해 아침과 밤에 바라본 론 강의 경치가 매혹적이었다. 높은 지붕 아래 들어선 바와 야외 코트의 넓은 카페이 매력적이었다.

프랑스 미식도시 리옹의 건물 벽에 벽화로 그려진 미슐랭 3스타 셰프 폴 보퀴즈의 모습. 1975년 프랑스 요리인 최초로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요리사를 그토록 존경하는 미식 도시
리옹은 미식의 도시다. 이 도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운영한 폴 보퀴즈(1926~2018년)는 리옹을 미식 도시로 만든 ‘영웅’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입대했을 때를 제외하곤 줄곧 리옹에 머물며 미식 문화 향상에 기여했다. 자신의 레스토랑이 미슐랭 3스타를 받은 것은 물론, 1975년 요리사로선 최초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했다. 최고의 프랑스 요리 셰프에게 주는 ‘보퀴즈도르’상도 제정했다.

프랑스 미식도시 리옹의 폴 보퀴즈 시장에 붙은 미슐랭 3스타 셰프 폴 보퀴즈 사진.

프랑스 미식도시 리옹의 폴 보퀴즈 시장.

프랑스 론 지역의 비엔에 있는 고대 바실리카(신전). 고대 유물 앞의 카페에서 주민들은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프랑스에서 발견한 고대 로마의 속살
성당 아래쪽에는 이 도시가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가 점령한 뒤 갈리아의 수도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야외극장과 종교 시설 유적이 보였다. 야외극장은 기본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웅장한 유적에서 음악 공연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프랑스 리옹 특유의 건출물인 트라불. 수해 방지나 신속한 이동 등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 내부의 안뜰이다.

프랑스 미식도시 리옹에 미슐랭 3스타 셰프 폴 보퀴즈의 이름을 본따 조성한 폴 보퀴즈 마켓. 리옹과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하고 품질 좋은 음식 재료를 판다. 이를 활용한 식사도 가능하다.
로마 때부터 이용된 포도밭과 광장
비엔(프랑스어로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과 철자법과 발음이 같다)이라는 소도시에 들르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선 재료를 파는 재래시장과 고대 로마 시대의 대형 원형 경기장, 그리고 신전을 둘러봤다. 고대 종교 시설이었을 신전 앞은 노천카페가 들어섰다. 주말을 맞아 시장과 카페를 가득 채운 주민들은 연신 웃음을 지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프랑스는 다시 일상을 되찾고 있었다. 오베르뉴 론 알프 지역 관광사무소의 라헬 그레고리는 ”자유분방한 프랑스인이 코로나 기간에는 통행금지와 봉쇄를 비롯한 정부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런 프랑스인이 이제 다시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혹독했던 시절과 결별해서인지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었다. 콜라를 마시는 젊은이들, 커피를 마시는 중년 부부, 지역 특산 독주에 물을 타서 마시는 노인들이 고대 신전을 배경으로 한데 어우러졌다.

프랑스 미식도시 리옹의 폴 보퀴즈 시장 모습.
초콜릿에 시식의 자유를 허했더니
견학 중간중간에 입장권을 찍으면 초콜릿을 몇 개 꺼내서 맛볼 수 있는 자판기가 있었다. 역시 초콜릿은 시식이었다. 구경만 하기에는 너무도 절실한 게 초콜릿 아닌가. 디저트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초콜릿에도 명품이 었었다. 알고 보니 발로나는 국내 고급 제과점에서 재료로 사용하는 브랜드였다. 그날 저녁 한국과 통화하다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식은 어울리는 와인으로 맛의 흥을 돋우고, 제대로 된 초콜릿을 포함한 멋진 디저트로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리고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프랑스 론 지방에 있는 그리냥 성. 중세 시대 영화를 누리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폐허로 변했지만 20세기 들어 복구가 이뤄졌다.
고성 그리냥에 숨은 미슐랭 맛집의 매혹

프랑스 론 지방 그리냥에 있는 '클레르 드 라 플륌' 호텔. 20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고즈넉한 호텔이다. 창밖으로 중세 성과 유기농 정원이 보인다.

프랑스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물의 도시 안시의 구시가지.
빙하호 둘러싼 안시, 맑은 물에 비친 알프스
이런 역사보다 더욱 흥미로운 게 안시 호수였다. 첫째, 물이 산속 개울물보다 맑았다. 관계자로부터 철저한 오염 관리와 과학기술을 이용한 수질 관리 덕분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둘째, 호숫가와 호수를 다니는 선박에서 볼 수 있는 알프스의 만년설이었다. 거기다 맑은 하늘까지 겹치니 금상첨화였다. 그래서 그런지 호수 주변은 프랑스 부호의 별장으로 가득했다. 호수를 보고, 알프스의 하얀 봉우리를 보며 식사를 하는 식당이 호숫가에 줄을 이었다. 복덕방도 많이 보였다. 셋째, 호수에는 수영과 보트 노 젓기, 항해를 즐기는 사람들, 호숫가에는 달리기와 자전거, 그리고 전기 스쿠터를 타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하늘은 행글라이더들로 붐볐다. 자연과 미식, 스포츠‧레저가 어우러져 삶의 질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프랑스 레만호변의 중세 어촌도시 이부아르.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모인다.
레만호반의 중세 어촌 이부아르
몽트뢰는 그룹 퀸의 녹음 스튜디오가 있었으며,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잠시 머물렀다. 호숫가에 그의 동상이 있으며, 그의 생일에는 축하 행사가 열린다. 그런 축제의 도시 맞은편 호변이 이렇게 깨끗한 수질을 유지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부아르 관광사무소의 캐롤튀팡에게 물었더니 적절한 규제와 과학기술을 비결로 들었다.
둘째로 놀란 점은 중세 어촌인 이 작은 마을이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을 끈다는 사실이었다. 오래된 거리에는 식당이 즐비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름마다 관광객이 몰렸는데, 올해 포스트 코로나 특수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오래된 성이 하나 보였지만 개인 소유라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신 그 앞에 있는 작은 식물원에서 약초와 식용 허브를 만지면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식물을 보는 곳은 많지만, 만지고 맛까지 보는 곳은 처음이었다.
셋째는 이 호수에서 갓 잡은 물고기로 만든 생선튀김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작고 소소한 즐거움, 자연과의 조화, 중세 도시에서 호수를 보며 즐기는 식도락이 이 작은 마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을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프랑스 에비앙 리조트.
에비앙에는 광천수만 있지 않았다
맨 처음 에비앙 생수를 받던 ‘원탕’, 병 치료를 기대하며 에비앙 생수로 목욕하던 광천탕 등이 시내에 있었다. 에비앙 역시 레만 호숫가에 있어 호변을 끝도 없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인상적이었다. 가이드 이블린은 ”리옹에서 이주했지만 아름다운 도시 에비앙을 소개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소개로 시에서 15분마다 운영하는 푸니쿨라, 즉 케이블로 기차를 끌어올리고 내리는 케이블 철도(강삭 철도라고도 한다)를 찾아가 무료로 타볼 수 있었다.

프랑스 에비앙 리조트의 루아얄 호텔 객실.

프랑스 에비앙 리조트 골프 코스의 1번홀. 매년 9월에 프랑스 유일의 LPGA 경기인 에비앙 챔피언십이 열린다.
100년 넘은 골프장서 한국 선수 연속 우승
에비앙 리조트에는 5성급인 루아얄과 4성급인 에르미타주 호텔이 3억 달러 이상을 들인 개조를 마치고 포스트 코로나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위트룸에 들어가 봤더니 레만 호가 한눈에 보이는 통창이 인상적이었다. 전 세계 부호들을 맞고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할 준비는 이미 마친 상태였다. 지로 매니저는 에비앙 리조트는 시설 개수와 보수에 꾸준히 투자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스위트룸은 중동과 러시아 부호를 주 고객으로 상정해 시설을 세계 최상급으로 정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호숫가에 있는 힐튼 호텔도 보수를 마치고 포스트 코로나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식기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미래에 대비한 셈이다.
에비앙 관광사무소 프레데리크 알레옹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은 관광 산업계에 한편으론 불경기였지만 다른 편으로는 미래를 위한 투자와 재정비 기간이었다”며 “관광객은 물론 관련 산업계 종사자들도 지금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에비앙도 매년 200만 명이 몰린 인기 관광지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알파인이 탄생한 도시, 샤모니몽블랑
코로나 이전 겨울에는 전 유럽에서 스키 관광객이, 여름에는 서늘한 기후를 노린 산중 피서객이 몰렸다. 18세기 영국인과 스위스인들이 몰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산악 등반이 이뤄진 알파인이 탄생한 도시다. 도시 어디에서나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해발 4807.81m)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몽블랑은 길이 46㎞ 폭 20㎞의 몽블랑 산지 가운데에 자리 잡은 최고봉이다. 샤모니는 1916년 중앙 정부에 로비해 도시 공식 명칭을 샤모니몽블랑으로 바꿔 달았다. 샤모니는 약칭으로 널리 쓰인다.

프랑스 샤모니몽블랑의 에귀뒤미디 전망대에서 바라본 몽블랑(가운데 동그란 봉오리).
케이블카로 에귀뒤미디 도착하니 현기증

프랑스 샤모니몽블랑 에귀뒤미디 전망대의 사방과 상하가 유리로 된 전망틀. 아찔함과 자연의 장엄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올라가는 인원이 제한되며, 신발도 전망대가 제공한 미끄럼 방지용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
추위와 바람은 미약했지만, 햇빛은 사정없이 강했다. 먼지 하나 없는 맑은 공기에 하얀 만년설과 빙하에 반사된 햇빛은 시력을 손상시킬 정도였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가벼운 고산병 증세도 느껴졌다. 중간역에선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에귀 디 미디까지 올라갔더니 잠시 뒤 귀가 먹먹해졌다. 침을 삼켰더니 증상이 조금씩 나아졌다. 어지럼증은 중간 케이블카 역으로 내려갈 때까지 미미하게 계속됐다. 가끔 에귀뒤미디와 몽블랑 사이에서 눈사태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동그란 몽블랑이, 눈앞의 이탈리아 쪽으로는 끝없는 눈의 벌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바늘같이 뾰족한 봉오리가 연이어져 있었다. 그곳은 대자연의 한복판이었다.
5월에 빙하 트래킹과 스키 활강 도전
에귀뒤미디에서 내려와 몽블랑의 전경을 새의 눈으로 담은 4D 영화를 보고 나서 이번에는 철도로 알프스에 올랐다. 샤모니 알프스 역에서 몽탕베르 산악 철도를 타고 몽블랑 산지 옆구리를 거쳐 ‘메르 드 글라스(얼음의 바다)’까지 올라가는 철도 여행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철도라고 하는데, 멋진 것은 빨간색의 귀여운 기차가 아니라 그곳에서 보이는 알프스의 풍경이었다. 거대한 협곡 건너엔 설산을 이고 있는 거대한 봉오리들이 줄이어 보였다. 그 사이에는 빙하와 눈이 녹은 물이 가는 폭포가 돼 자유낙하하고 있었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 나타난 모습과 흡사했다. 참으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SF의 한 장면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실제 올라가서 본 알프스는 현실적이지 않았다.

알프스의 설봉이 맑은물이 비친 프랑스 안시 호숫가.
기후변화로 사라진 거대 빙하
샤모니몽블랑 관광사무소의 세실 그뤼파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은 기후변화로 그 두꺼운 빙하가 사라져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 주변에 설치된 작은 박물관은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알프스의 몽환적인 풍경은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그곳에서 목격한 기후변화는 냉혹하고 분명한 사실이었다. 기후변화협약 당사자총회(COP)를 이곳에서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기차 종점에는 ‘그랑 오텔 뒤 몽탕베르 알 라 메르 드 글라스’라는 호텔 겸 식당, 카페가 있었다. 그뤼파의 도움으로 주인의 양해를 얻어 객실을 살펴봤다. 창밖은 신선의 땅이었다. 그뤼파는 “기차 막차가 끊긴 뒤 다음날 첫차가 올 때까지 그야말로 산새와 알프스의 봉오리와 함께 절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알프스는 사방이 놓칠 게 없어 보였다. 파면 팔수록 매력이 샘솟았다.
호텔에는 19세기에 메르 드 글라스의 장관을 보기 위해 몽탕베르 철도를 타고 올라왔던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객실 입구에 인쇄돼 있었다.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알퐁스 도데 등 작가와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얼굴이 보였다. 19세기에 보러왔던 메르 드 글라스가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는 걸 알면 그들은 어떤 목소리를 낼까.

프랑스 샤모니몽블랑의 야외 스파 QC 테름에서 바라본 몽블랑 산지.
알프스 바라보며 야외 스파
스파 야외 욕장에 들어가고 근처의 평상에 누우면 눈앞에 알프스의 설산이 보인다. 왼쪽을 보면 설봉과 함께 몽탕베르로 올라가는 빨간 기차가 달리고 있다. 눈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옆에는 행글라이더 착륙장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샤모니를 굽어보고 있는 동그란 몽블랑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라도 솔솔 불어오면 도저히 스파에서 나가기 힘들어진다.
알프스는 사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프랑스의 다양성과 맛과 멋을 확인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놀라운 것은 분명히 저잣거리를 돌았는데도 수도원에 머문 것처럼 마음이 맑아졌다는 사실이다. 자유를 만끽해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