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뿌리고 맹활약? 현대야구도 못 막는 징크스 세계

부진 탈출을 위한 '자체 고사'를 지낸 뒤 공·수·주에서 맹활약한 NC 박민우. [연합뉴스]

부진 탈출을 위한 '자체 고사'를 지낸 뒤 공·수·주에서 맹활약한 NC 박민우. [연합뉴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박민우(29)는 SSG 랜더스전을 앞둔 지난 7일 오후, 막걸리 한 병을 들고 그라운드로 나섰다. 양 팀이 훈련을 시작하기 전이라 창원 NC파크가 텅 비어 있던 시간이었다. 그는 타석과 1~2루 사이에 신중하게 막걸리를 붓고, 두 손을 모은 채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사'를 지내면서 액운이 사라지고 행운이 찾아오길 빌었다.  

박민우는 올 시즌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방역수칙 위반 관련 징계를 마치고 지난달 초 복귀했지만, 타율이 줄곧 2할대 초반에 머물렀다. 잘 맞은 타구가 1루와 2루 사이에서 잡히는 불운도 반복됐다. 최하위로 처져 있는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박민우는 "너무 답답했다. 훈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급기야 막걸리까지 준비해 '하늘의 도움'을 청했다. "착하게 살면 좋은 일이 생길까 싶어 최근엔 쓰레기도 많이 줍기 시작했다"라고도 했다. 그런 절실함이 통했는지, 7일 경기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2타점 적시 2루타를 때렸다. 3루 도루와 호수비까지 해내면서 공·수·주에서 맹활약했다. 박민우는 경기 후 "이 경기를 계기로 자신감을 되찾았다"며 비로소 웃었다.  

야구는 '멘털 게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수의 심리 상태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과학적 분석과 세분된 데이터가 자리 잡은 현대 야구에도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비과학적'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자체 고사'를 감행한 박민우의 이야기가 그렇다. 

KT전의 악연을 끊기 위해 수원 숙소 출입구를 바꿨다가 효과(?)를 본 김원형 SSG 감독. [연합뉴스]

KT전의 악연을 끊기 위해 수원 숙소 출입구를 바꿨다가 효과(?)를 본 김원형 SSG 감독. [연합뉴스]

 
최근엔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도 숨겨뒀던 징크스를 공개했다. SSG는 지난해 KT 위즈전에서 2승 2무 12패로 참패했다. KT전 성적 탓에 가을야구를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김 감독은 지난 4월 5일 KT와의 올해 첫 3연전을 앞두고 작은 변화를 꾀했다. "수원 원정 숙소로 들어갈 때 늘 오른쪽 출입구를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반대쪽(왼쪽)을 이용해봤다"고 했다. 오른쪽 출입구로 가는 길이 더 편한데도 굳이 불편을 감수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SSG는 3연전에서 모두 이겼고, 김 감독의 '왼쪽 출입구 이용'도 이어졌다.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지만, 김 감독 입장에선 기분 좋은 우연이다. 


야구계에 큰 획을 그은 전설적인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긴 날 입은 옷이나 속옷을 또 입는 건 가장 일반적인 사례다. KBO리그 역대 최고 타자였던 이승엽은 한때 홈런 친 경기에서 입었던 유니폼을 당일 밤에 세탁해 다음 경기에서 또 입곤 했다. 이미 준비된 여벌의 유니폼 대신 홈런의 기운이 남아 있는 유니폼을 선택했다. 스즈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MLB) 시절 홈에서는 카레, 원정지에서는 페퍼로니 피자를 먹고 경기에 나갔다. 아내가 집에 없어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카레와 미국 어디에나 있는 피자를 선택해 '변수'를 최소화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정해진 시간에 특정한 행동을 하는 '루틴'도 징크스의 기본 중 기본이다. MLB에서 18년을 뛴 내야수 웨이드 보그스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땅에 스파이크로 '인생'이라는 뜻이 담긴 히브리어 '차이(chai)'를 적었다. 보그스는 유대인이 아닌데 굳이 히브리어를 적은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수십 가지 루틴을 따르느라 매일을 피곤하게 보낸 그는 그저 "경기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라고 했다. 매일의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 해야 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신감을 얻기 위해 종종 '마음의 지푸라기'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