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오후 2시쯤 전남 완도군 대신리 앞바다. 3t급 낚싯배 레인보우호에 앉아있던 손선초(59) 선장이 벌떡 일어섰다. 선미에 설치해놓은 낚싯대에 민어 입질이 와서다. 10여년간 낚싯배를 운행한 그는 “최소 3㎏은 넘는 놈 같다. 작년보다 배 가까이 비싼 가격을 받을 것”이라며 황급히 낚싯대를 감았다.
선상 위로 끌어올린 5㎏급 민어는 “꾸우욱, 꾸욱” 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옛 민어잡이 어민들이 야간 조업 때 듣고 작업을 했다던 소리다. 인근에 있던 낚싯배 5~6척에서도 “크다” “월척이다” 등의 탄성이 연이어 나왔다. 손 선장은 “민어가 잡힐 땐 재미가 그만인데 기름값만 생각하면 바다에 나오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당시 면세유 경유 1드럼(200ℓ) 가격은 지난해(14만 원)보다 배 이상 높은 34만 원에 달했다.
기름값 작년 두배…‘출어 포기’ 어민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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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남 신안군 임자도 내 송도위판장에서 수협 관계자가 이날 잡아온 민어를 만지며 엄지손을 치켜세우고 있다. 오른쪽은 국내 최대 민어 산지인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입구에 세워진 민어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국내 최대 민어 산지인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도 올해 민어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지난 9일 오전 6시30분 임자도 내 송도위판장. 수산물 경매장을 찾은 중매인과 식당 업주 등의 얼굴이 어두웠다. 매년 이맘때면 민어를 실은 어선이 줄지어 배를 댔던 것과는 달리 위판량이 크게 줄어서다. 수산물센터 대표인 정성찬(54)씨는 “기름값 때문에 어민들이 출어하지 않는 바람에 경매가가 크게 높아져 사는 것도 파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 위판가 7만8000원…웃음 감춘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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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6시30분 전남 신안군 임자도 내 송도위판장에서 이날 잡아온 민어를 경매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9일 전남 신안군수협에 따르면 8월 들어 위판된 5㎏ 이상 민어(활어)의 ㎏당 가격은 5만~6만 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당 위판가 3만5000원~4만 원보다 50%가량 높다. 송도위판장의 지난 7월 한 달간 민어 위판량이 지난해 7월(7750t)의 61% 수준인 4702t까지 감소한 여파다.
“물때 한 달 늦춰졌다”…민어값 하락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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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전남 완도군 대신리 앞바다에서 3t급 낚싯배 레인보우호의 손선초(59) 선장이 낚아올린 민어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어민 김수만(72·신안군)씨는 “수십 년 전만 해도 임자도 앞에 보이는 바다가 모두 민어잡이 어선들이었다”며 “임자도산 민어 중 상당량이 목포 등으로 바로 가는 영향도 있지만, 신안에서 잡는 어획량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日 군침 ‘임자도’…“기생 50명 집단 자살” 구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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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타리(대태이도) 파시’로 기록된 임자도 민어 파시 당시 사진. 당시 임자도를 많이 찾은 일본인 상인들을 겨냥해 요리집 앞에 ‘어요리(御料理)’란 간판을 내건 것이 보인다. 사진 신안군
임자도가 민어로 유명해진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섬으로만 이뤄진 신안군에서도 뱃길로 30분가량 떨어진 외진 섬인데도 1970년대까지 바다 위 시장인 파시(波市)가 섰다. 여름철이면 어부와 상인들이 일본에서까지 몰리면서 요릿집과 기생집·잡화점 등이 불야성을 이뤘다. 지금도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의 입구에는 살이 오른 형상의 민어 조형물이 외지인을 맞는다.
민어 파시(波市) 불야성…도시 유흥가 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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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민어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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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타리(대태이도) 파시’로 기록된 임자도 민어 파시 당시 사진. 사진 신안군
신안군 등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임자도는 도시 유흥가를 연상케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숱한 식당과 기생집에서는 상인들과 선주·선원들이 날을 새며 술을 마셨다고 한다. 당시 임자도 기생집 중 일부는 일본에서 온 게이샤(기생)였다. 이들은 한복을 입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한·일 강제병합 직후에는 일본인 횡포로 기생 50여명이 집단 자살을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서울 양반도 즐긴 복달임…여름철 일품 보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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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탕. 민어는 회로 먹어도 좋고 탕을 끓이거나 찜으로 해먹는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민어 껍질과 부레도 별미로 꼽힌다. 프리랜서 장정필
옛날 서울 양반들은 “여름철 삼복더위를 나는 데 민어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먼 육지에서까지 여름철 선어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생선이 민어였다고 한다. “복달임에 민어탕이 일품, 도미찜이 이품, 보신탕이 하품”이라는 말도 있다.
회·탕·찜 모두 요리…껍질·부레도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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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회. 민어는 회로 먹어도 좋고 탕을 끓이거나 찜으로 해먹는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민어 껍질과 부레도 별미로 꼽힌다. 프리랜서 장정필
‘민어는 익혀 먹거나 날것으로 먹어도 좋으며, 말린 것은 더욱 좋다. 부레는 아교를 만든다’-『자산어보』(玆山魚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