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구촌을 덮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대기업 직원 김모(37)씨는 이번 추석 고향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지난 설만 해도 성과급을 두둑이 받은 데다 주식과 코인으로 꽤 짭짤한 수입을 올려 마음이 넉넉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물가 폭등과 대출 금리 인상으로 지갑이 얇아졌다. 주식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찍은 지 오래다. 교통비를 아끼려 귀성길 장시간 운전을 선택했지만 연초 L당 1400원대였던 경윳값이 1800원대로 올라 그마저도 부담이다.
정보기술(IT) 업체에 근무하는 박모(40)씨는 며칠 전 부모님께 드릴 추석 선물로 홍삼을 사러 갔다가 잠깐 머뭇거렸다. 10만원이 조금 넘던 가격이 12만6000원으로 뛰어서다. 박씨는 “값이 15%나 올라 직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원재료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인상이라고만 하더라”며 “명절에 부모님께 선물과 현금을 함께 드렸는데 최근 생활비가 눈에 띄게 늘어 올해는 선물만 드리거나 회사에서 받은 상품권을 그대로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귀성길 경윳값마저 올라 부담

추석 연휴 하루 전인 8일 경기도 용인시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신갈JC인근이 귀성길 차량으로 정체되고 있다. 뉴스1
금리 인상도 역대급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가계대출 금리는 4.52%로 2013년 3월(4.55%) 이후 9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16%로 2013년 1월(4.17%) 이후 9년 6개월 만의 최고치로 나타났다. 코스피 지수는 8일(2384.28) 기준 올 1월 3일(2384.28) 대비 20.2% 하락했다.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명절에는 지출 부담도 두 배다. 인사관리기업 인크루트가 지난달 30일~이달 1일 회원 1030명을 대상으로 추석 계획을 조사한 결과 예년보다 추석 선물 준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80.4%였다. 이 중 29.8%는 매우 더 부담된다, 50.6%는 약간 더 부담된다고 답했다. 약간 덜 부담된다거나 아예 부담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1%에 그쳤다. 나머지 18.6%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대기업 직원들은 연봉에 포함된 추석 상여금이나 명절 보너스를 받아 숨통을 틔웠다. 취재 결과 카카오 50만원, 카카오뱅크 30만원, 네이버페이 20만원, 아마존 40만원, 넥슨 22만원 등 IT 기업과 게임 업체들은 현금이나 상품권, 액수에 상응하는 선물로 명절 보너스를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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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앞으로도 성과급, 연봉 인상 기대 어려워”
중소기업 사정은 좋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900개 중소기업을 조사한 결과 추석 상여금(현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응답한 곳은 37.3%에 그쳤다. 상여금 지급 수준도 지난해에 못 미쳤다. 정률 지급 시 기본급의 평균 50%로 지난해 추석(63.2%) 대비 13.2%포인트 줄었으며 정액 지급 시 인당 평균 40만2000원으로 지난해(45만3000원)보다 5만1000원가량 감소했다.
문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직원 김씨는 “경기 불황으로 회사 실적이 악화해 올해 성과급이 없거나 크게 줄어들 거라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다”고 말했다. 박모씨 역시 “작년 인재 영입 붐으로 IT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임금을 높였지만 올해는 그 여파 때문인지 고용을 줄이고 있어 연봉 인상은 기대도 못 할 분위기”라며 “내년 설은 어떨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