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 주4일제 실험…"사람 집중력 생각보다 짧더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는 근로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단축 근무’가 일터를 파고들고 있다. 전 세계 근로시간 1위 멕시코도 ‘하루 6시간’ 근무를 제안하고 나섰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 홈페이지가 열려 있는 컴퓨터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 홈페이지가 열려 있는 컴퓨터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근로시간 1위 멕시코, 하루 6시간 근무 논의 

 
멕시코의 여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모레나)의 히까르도 벨라스케스 상원의원은 지난달 중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가를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법 개정안을 노동사회복지위원회에 제출했다. 핵심은 하루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벨라스케스 의원은 "근로자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가지고 일하려면 적절한 근무 조건과 충분한 휴식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해 기준 연간 근로시간이 평균 2128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근로시간 3위 콜롬비아가 2026년까지 주당 48시간에서 42시간으로, 근로시간 4위 칠레가 앞으로 5년 안에 주당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자, 멕시코는 하루 6시간(주당 최소 30시간) 근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했다.

이 개정안이 보도된 후, 멕시코 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현지 매체인 엘피난시에로는 "근로자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기업은 불가능한 환상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스웨덴 요양병원, 생산성·비용 다 올랐다

 
하루 6시간 근무는 워라밸 선진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에서 1990년대부터 수차례 시범 운영되고 있다. 가장 유명했던 시범운영은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의 한 노인 요양병원에서 2015년 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23개월간 실시한 것이었다. 

간호사들은 임금 삭감 없이 하루 6시간, 주당 30시간 근무했다. 그 결과 하루 8시간 근무했을 때보다 병가와 결근이 4.7% 줄었다. 절반 정도가 몸에 활력이 넘친다고 느꼈다. 환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질도 향상돼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면서 큰 비용이 들었고, 결국 이익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하루 6시간 근무가 정착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의료 전문가를 인용해 "하루 6시간 근무가 근로자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은 확실하다"면서 "해당 실험이 23개월보다 더 길었다면 6시간 근무가 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졌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일례로 예테보리의 토요타 자동차 정비센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하루 6시간 근무를 도입해 유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회사는 하루 6시간 근무로 바꾸면서 직원들이 더 행복하게 일하고, 이직률이 떨어져 이익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즉, 추가 직원 고용 비용을 상쇄할 만큼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대세는 주4일제, 英 세계 최대 규모 실험  

 
최근 노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건 ‘주4일제’다. 하루에 8시간씩 4일만, 주당 최소 32시간 근무하는 개념이다. 지난해부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올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험이 진행 중이다. 지난 6월부터 6개월간 영국의 70여개 기업에서 3300여명 대상으로 주4일제가 시행되고 있다.

임금 삭감 없이 종전과 같은 생산성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는데, 지난달 초 중간 평가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행 첫 주에는 우왕좌왕했지만 점점 주4일제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한 홍보대행사 임원은 "내부회의는 5분, 고객 회의는 30분 이내에 끝내고 업무에 집중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원래 업무 속도를 찾았다"고 전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그래픽=박춘환 기자

주4일제는 또 다른 워라밸 국가 아이슬란드가 선도했다. 지난 2015부터 2019년까지 유치원 교사·회사원·병원 종사자 등 다양한 직군의 25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임금 삭감 없이 주4일제(주당 35시간) 실험을 했다. 불필요한 회의와 커피 휴식 시간 등을 줄여 기존의 업무 생산성을 유지했다. 휴일이 3일로 늘어나면서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개선됐고, 기혼자의 경우 남성의 가사 노동과 육아 참여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영국·스페인·핀란드·일본·뉴질랜드 등의 기업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 2월 노동자의 필요에 따라 주4일제(주당 38시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지난해 7월 경제재정운영 기본방침에 주4일제 도입을 장려한다고 명시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지난 2020년 "휴일이 늘어나면 자국의 관광산업에 도움이 된다"며 주4일제 도입을 강하게 권장했다.  

하루 6시간 vs 주4일제, 어떤 게 좋을까 

 

그래픽=박춘환 기자

그래픽=박춘환 기자

 
하루 6시간 근무와 주4일제를 놓고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루 6시간 근무를 선호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집중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점을 강조한다. 

호주의 스타트업 기업가 스티브 글라베스키는 자신의 회사에서 두 가지 조건을 실험해 본 결과 하루 6시간에 손을 들어줬다. 그는 스웨덴의 저명한 인지 심리학자 앤더슨 에릭슨 박사의 연구를 들어 "깊은 인지 작업을 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은 4시간으로 그 이후에는 집중력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렇다면 8시간씩 4일 근무보다는 6시간씩 5일 근무가 낫다"고 주장했다. BBC도 "주요 연구에서 근무 시간이 짧을수록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작업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주4일제를 더 옹호하는 이들은 휴일이 하루 늘어나는 점을 주목했다. 유로뉴스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생활비 증가 문제가 심각한데, 휴일이 하루 늘어나면 부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기후위기 관련해서도 장단점이 있다. WP는 "자동차 등을 이용한 출퇴근과 사무실 사용 전력이 줄어 탄소배출량이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여행과 소비가 탄소배출량을 되레 늘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WP는 여가 시간이 늘면 산책·운동·요리 등 저탄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연구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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