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물건 돌려달라" 현대차 부품업체 간 분쟁...대법 판단은?

대법원 전경. 중앙일보

대법원 전경. 중앙일보

상대방에게 보관을 위탁한 물건을 찾아올 때는 물건이 인도됐던 시점부터 소멸 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사이 벌어진 법적 분쟁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배기가스 촉매제 제조업체 A사가 촉매 정화장치 제조업체 B사를 상대로 낸 물품 인도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해 환송한다고 13일 밝혔다.  

 
배기가스 촉매제를 만들어 현대차에 납품하는 A사는 물건을 현대차가 아닌 B사로 보냈다. 또 다른 납품업체인 B사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이 물건을 받아 촉매 정화장치를 만든 뒤 현대차에 보냈기 때문이다. B사가 현대차 생산 계획을 기준으로 필요한 촉매제 수량을 A사에 통보해 받아오는 방식이었다.

A사는 B사에 35만여개의 촉매제를 보냈지만, 정작 현대차에 간 촉매 정화장치는 32만여개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B사가 남긴 촉매제를 다시 돌려주거나, 이에 상응하는 돈인 약 24억 8400만원을 달라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A사가 주장하는 수량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B사의 입하처리시스템과 인수증에 비춰봤을 때 실제로 촉매제 1만9840개가 남았다고 봤다.

B사는 자동차 생산계획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예산 생산량과 실제 생산량이 달라지는 경우 익월 생산량에서 조정해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A사가 B사에 촉매제를 인도함으로써 소유권이 B사 또는 현대차에 이전되었다"며 "A사는 소유권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련 계약을 살펴봐도 A사가 남은 촉매제까지 현대차에 납품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A사와 B사 사이에는 묵시적인 임치 계약, 즉 남은 촉매제 보관을 위탁하고 승낙하는 계약이 성립돼 있었다고 봤다. A사가 촉매제 제품번호와 수량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었고, B사도 이를 확인한 후 촉매제를 받아가는 등의 상황을 고려했다.

재판 과정에서 A사는 이 같은 임치 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B사는 잔여 촉매제를 반환할 의무가 있지만, B사가 이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1심 재판부는 B사가 20억7100여만원과 지연손해금을 배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남은 촉매제를 1만9268개로 계산해 손해배상 액수를 20억1600여만원으로 조금 줄였다.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B사는 A사가 임치물인 '남은 촉매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앞서 B사는 "A사가 촉매제를 인도하는 시점부터 5년의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하는데, 소송을 낸 2017년에는 이미 이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재판부는 "A사가 임치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힌 2019년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임치계약에서 임치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임치물 반환을 구할 수 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반환청구권 소멸시효는 임치계약이 성립해 임치물이 인도된 때부터 진행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임치계약이 언제 성립됐는지, 잔여 촉매제가 B사에 인도된 날이 언제인지 등을 심리한 다음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대해 판단했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