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청천백일기 하강식이 이뤄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기 위해 대중(對中)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에 가했던 것처럼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대만도 유럽연합(EU)에 대중 제재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이 고려하는 제재는 서방이 이미 취하고 있는 조치를 넘어선다. 로이터는 “반도체나 통신 장비와 같은 민감한 기술에 대한 중국 투자와 교역을 제한하는 선을 넘어 (중국에 실제)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대만 해안선 근처까지 접근한 중국군 군함 위에서 한 군인이 저지에 나선 대만 호위함 란양호를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대중 제재 구상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시작됐다. 아직 초기 검토 단계지만, 지난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중국이 강력히 반발함에 따라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대만해협에서 군사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펴낸 대만 백서에서 ‘완전한 통일’을 주장했고, 무력 사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로이터는 “(미국의 움직임은)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대응”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검토 중인 제재의 세부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군사력 억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크레이그 싱글턴 미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연구원은 “초기 제재 논의는 대만에 대한 군사 작전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특정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방식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뤄진 대러 제재를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접촉 중인 한 외국 정부 관리는 로이터에 “백악관은 중국을 자극하는 걸 피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제재에) 동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동맹 및 파트너 국가를 모아 공동으로 러시아 제재에 나선 것과 같은 방식을 검토 중이다.
지난 2020년 9월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에서 열린 EU-중국 화상 정상회담에서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와 별도로 대만도 EU에 대중 제재에 나서달라고 요청 중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대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 당국자에 중국 제재에 나서달라고 했다. 또 최근 중국이 대만 주변에서 군사 훈련의 강도를 높이자, 더 자주 만나 이 같은 요구를 했다. 한 소식통은 “대만이 중국의 침공할 때 유럽이 어떤 행동을 취해달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하진 않았지만, 대만 침공을 강행할 경우 큰 대가에 직면할 것임을 중국에 비공식적으로 경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대중 제재와 관련해 백악관은 논평을 거부했다. 대만 외교부는 “세부 사항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중국이 최근 벌이고 있는 ‘워 게임(war game)’에 대해 미국과 유럽, 비슷한 생각을 지닌 파트너와 논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항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의 모습. AFP=연합뉴스
하지만, 대중 제재가 실제로 가능할지 회의론도 나온다.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자 글로벌 공급망에서 가장 큰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나작 니카흐타르 전 미 상무부 관리는 “미국과 동맹국이 중국 경제와 광범위하게 얽혀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에 대한 제재는 러시아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EU가 러시아를 제재할 때도 27개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해 실행 과정에서 합의가 어려웠다”며 “중국은 러시아보다 (유럽) 경제에서 훨씬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이 인권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제재를 가하는 것을 회피해온 이유”라고 말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는 14일 대만정책법(TPA) 심사를 시작한다. 지난 6월 민주당 소속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은 대만을 미국의 주요 비(非)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으로 지정하고, 45억 달러(약 5조9000억원)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이 골자다. 만일 법안이 통과하면 1979년 대중 수교 이후 미국이 지켜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외신은 전했다.
백악관은 이 법이 중국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법안 내용의 수위 조절을 시도 중이다.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은 13일 “행정부 내 입법 담당자들이 의회와 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발의한 법안이라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