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유라시아 대륙 제패를 꿈꾸는 두 나라가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감행하며 최대한 서구 자유주의 세력을 밀어내고 자신을 대륙의 중심에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중동을 거쳐 유럽에 이르는 영향권을 건설하는 중이다. 1960년대를 전후해 벌어진 중·소 분쟁에서 보듯 국경을 맞댄 이 두 나라의 관계는 지정학적으로 좋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1970년대 중국은 소련과 절연하고 미국과 손을 잡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유용한 러시아인이 있다. 알렉산드르 두긴(60)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상적 ‘브레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들어선 보리스 옐친의 자유주의 러시아를 극도로 비난했고 이후 등장한 푸틴의 권위주의 정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 히틀러 정권의 괴벨스에 비견될 만한 인물이다. 지난달 그의 딸 두기나가 운전 중 차량 폭발로 사망하자 푸틴이 용맹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2017년 4월, 알렉산드르 두긴 [사진 셔터스톡]](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11/29/0a230c3b-1f3b-4698-b55e-ae58f57db3ab.jpg)
2017년 4월, 알렉산드르 두긴 [사진 셔터스톡]
두긴은 세계의 주요 국가를 ‘로마의 후예’와 ‘카르타고의 후예’로 나눴다. 바꿔 말해 육상 세력과 해양 세력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육상 세력, 미국·영국은 대표적인 해양 세력이다. 육상 세력은 공동체주의를 우선하고 해양 세력은 개인주의, 물질주의를 중시한다. 따라서 두 세력은 필연적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의 논리 구조다. 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합쳐질 운명이며 절대 독립국가로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두긴이 생각하는 러시아에게 중국은 ‘지정학적 적’이었다.
그는 중국이 ‘대서양화,’ 즉 서구 자유주의 진영에 경도됐다고 봤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주창한 마오주의가 대세이던 시절에는 유라시아적, 친소비에트적 성향이었으나 개혁개방이 진행되면서 친대서양 모델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독일 같은 중부 유럽의 육상 세력과 친밀했던 일본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티벳·신장·내몽골의 독립을 비롯해 중국이란 국가가 분열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던 두긴이 최근 몇 년 사이 친중으로 변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최근 보도했다.

푸틴의 책사가 반중에서 친중으로 돌아선 이유는
중국이 “매우 강력하고 매우 독립적이며 매우 주권적인 국가가 됐다”는 것이다. 2018년 상하이 푸단대 연설에서 그는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지배에서 벗어난 다극적 세계 질서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엔 중국 잡지 기고문을 통해 “이제 우리는 대서양주의자의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지정학적 동맹으로서 러시아-중국 동맹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 비판적이던 일대일로에 대해서도 “유라시아주의자들의 통합된 제안” “중국과 러시아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중국에 대한 두긴의 생각 변화는 시진핑(習近平) 집권 후 미국 등 서방과 선을 긋고 서구 자유주의 세력과 체제 경쟁을 본격화한 데서 영향받았을 것이다. 중·러 관계 전문가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의 테무르 우마로프는 “두긴은 중국이 러시아와 달리 서방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을 보고 중국에 매료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간 두긴이 보인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달리, 서구 전문가들은 중국이 러시아와 경쟁하려는 의도가 없고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해양으로 진출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전문가인 애런 프리드버그 프린스턴대 교수는 중국의 국가전략에 대해 ▶미국과 대립을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을 배제하는 지역 기구를 결성해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대륙 후방의 안정을 추구해 ▶해상에서 발생하는 기회와 위협에 집중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전략이라면 대륙 후방의 거인 러시아와 절대 긴장 관계를 형성해선 안될 것이다. 실제 시진핑-푸틴 집권기 동안 두 나라는 그 어느 시절보다 밀월 관계를 이어왔다. 적어도 미·중 경쟁 구도가 지속될 동안에는 두긴의 친중 스탠스도 계속될 것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