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아파트’, 위치는 ‘상업지역’…사각지대 낳아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A아파트의 외벽에 현수막이 붙어 있다. 최서인 기자
현수막을 내건 A아파트 역시 상업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분쟁이 생긴 대표적 사례다. 초등학생·중학생 삼남매를 키우는 박모(44)씨는 “2년 전 아이들 취학 시기에 맞춰 초·중·고등학교가 10분 거리인 A아파트로 이사했다”며 “꼬맹이 3명 데리고 평생 다섯식구 잘 살 줄로 알았는데, 한창 클 아이들이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햇볕이 다 가려지는 곳에서 자라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시행사 측에서는 합의금을 제시했지만, 주민들은 “합의금이 아니라 설계변경을 원한다”고 말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건축 허가를 내주기로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아직 대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청 앞에서 A아파트 주민들이 인근 주상복합 건물의 건축 허가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서인 기자
비슷한 분쟁 사례는 다른 곳에도 산재해있다. 몇 해 전 ‘조망권 사라진 해운대 아파트’라며 화제가 되었던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도 이곳이 상업지역이라서 맞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다른 아파트가 올라갈 수 있었다. 특히 고밀 개발된 강남에서는 신논현역 오피스텔, 양재역 아파트 등 각지에서 일조권을 둘러싸고 주민 반발이 이어지는 중이다. 주민들은 이른바 ‘천공조망권’으로도 불리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권리’도 침해받는다고 주장하지만, 판례상 개념인 데다 이 역시 주거지역에서만 인정돼 왔다.
20년 전 도입된 ‘주상복합’…생활권 대비 없이 생겨나

몇 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격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의 건설 현장 모습이 화제가 됐다. 커뮤니티 캡처
‘주상복합 아파트’의 등장 자체가 문제의 발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태 도시와사람 대표변호사는 “90년도 후반부터 건설사나 시행사들이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마치 살기 좋고 고급스러운 곳인 것처럼 홍보했고 우후죽순 ‘주상복합’이 생겨 왔다. 지금의 사태는 20년 전 뿌려놓은 문제가 싹튼 결과”라며 “건축 허가를 내줄 때 행정청에서 중재·지도하며 적극적 행정을 할 필요가 있다. 기속행정을 핑계 대는 무책임한 행정이 지금의 기형적인 도시 경관을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