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 SM에 계약해지 통보…또 ‘세 멤버 잔혹사’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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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 기자 사진 박건 기자
보이그룹 엑소(EXO)의 멤버 백현(변백현)·시우민(김민석)·첸(김종대)이 1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데뷔 11주년을 맞아 완전체 컴백을 예고했던 엑소의 멤버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SM의 보이그룹 탈퇴 트라우마가 재연되고 있다. 세 멤버가 “SM이 장기 계약으로 부당한 횡포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법정 공방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엑소 멤버 3명이 1일 SM엔터테인먼트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왼쪽부터 첸(김종대), 백현(변백현), 시우민(김민석).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엑소 멤버 3명이 1일 SM엔터테인먼트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왼쪽부터 첸(김종대), 백현(변백현), 시우민(김민석). 사진 SM엔터테인먼트

10년 vs 17~18년. 진짜 계약은 몇 년?

세 멤버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린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친 내용증명을 통해 정산 자료 사본을 제공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SM이) 정산 근거를 제공해오지 않음에 따라 부득이 금일 자로 기존 전속계약 해지를 SM에 통보했다”며 “정확한 정산 내역을 살펴보기 위해 정산금 지급 청구 소송을 포함한 모든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부당하다고 특히 강조한 부분은 계약 기간이다. 세 멤버 측은 “SM이 종래 12~13년이 넘는 장기 계약을 아티스트들과 체결한 뒤, 이도 모자라 후속 전속 계약서에 날인하게 해 최소 17년 또는 18년 이상에 이르는 장기간의 계약 기간을 주장하는 등 극히 부당한 횡포를 거듭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습생 기간까지 합쳐 SM이 약 20년 동안 ‘노예계약’ 맺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전속계약 및 후속 전속계약서 체결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엑소 멤버 첸, 백현, 시우민은 유닛그룹 '엑소-첸백시'로 활동했다. 사진은 2019년 4월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콘서트를 펼치는 모습이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엑소 멤버 첸, 백현, 시우민은 유닛그룹 '엑소-첸백시'로 활동했다. 사진은 2019년 4월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콘서트를 펼치는 모습이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SM은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SM 측은 “아티스트가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당사와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자유의지로 재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M에 따르면 엑소 멤버 7인과의 재계약은 1년 6개월간의 협의를 거쳐 2022년 12월 30일 자로 체결됐다. SM은 “2022년 11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멤버 측 대리인과 총 8차례에 걸쳐 수정안을 주고받으며 전속계약서 조항 상 상당히 세밀한 단어 하나까지도 협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정산도 문제가 없다고 못 박았다. SM은 “정산 자료는 아티스트가 원하면 언제든 당사에 내방해 확인하도록 협조했고, 아티스트 내방 때마다 지출 내역에 대해 별도로 제공하기도 했다”며 “열람만 허용하는 이유는 외부 세력 및 제3자에 대한 부당한 제공이 우려되기 때문이라는 점을 아티스트의 대리인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SM은 이번 분쟁을 부추긴 ‘배후’를 지목하기도 했다. SM은 오전에 낸 보도자료를 통해 “당사 소속 아티스트에게 접근해 허위의 정보, 잘못된 법적 평가를 전달하면서 당사와의 전속계약을 무시하고 자신들과 계약을 체결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비상식적인 제안을 하는 외부 세력이 확인되고 있다”며 “당사 소속 아티스트가 당사와의 유효한 전속 계약을 위반하도록 유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아티스트를 통해 당사 소속 다른 아티스트까지 전속계약을 위반하거나 이중계약을 체결하도록 유인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산 자료 열람할 수 있었다” vs “사본 받지 못했다”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연합뉴스

SM과 세 멤버가 체결한 계약이 이른바 ‘노예계약’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멤버들에게 불리했는지가 우선의 쟁점이다. 세 멤버는 SM과 체결한 전속계약과 후속 계약 기간을 모두 합치면 17~18년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정한 최대 기간 7년과 비교하면 과도하게 긴 계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멤버 측이 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실제 계약 기간은 전속계약 7년에 해외 활동 추가 계약 3년을 더한 10년이다. 세 멤버 측은 이에 대해 “기존 전속계약에 구속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없었다”며 “대등한 지위에서 (후속) 계약 조건을 정하거나 자기의 희망을 반영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건 계약서 문구에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엔터기업 전문 송혜미 변호사(법률사무소 오페스)는 “계약 시작 시점이나 연장 조건 등 세부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기간이 다르게 계산될 수 있다”며 “만약 영구적인 계약으로 해석될 문구가 있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엑소 멤버 첸, 백현, 시우민으로 구성된 유닛그룹 '엑소-첸백시'는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엑소 멤버 첸, 백현, 시우민으로 구성된 유닛그룹 '엑소-첸백시'는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SM이 정산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도 논쟁거리다. 세 멤버 측은 “소속사가 정산 자료 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연예인은 수익 정산과 관련해 검토하고 소속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전속계약 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며 “정산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건 전속계약 해지 사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SM은 ▶매달 정산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했고, ▶멤버들도 지난 계약 기간에 문제를 제기한 바 없고 ▶다만, 정산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발생할 수 있어 사본 제공에는 응하지 않았다 등의 논리로 맞서고 있다. 

세 멤버 측은 2019년 가수 성현우가 소속사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 판례를 계약해지 근거로 제시했다. 소속사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고 정산 자료도 제공하지 않아 전속계약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소송이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표준전속계약서에 소속사가 연예인에게 정산금과 정산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를 위반한 건 계약해지 사유라고 판단했다. SM 측 주장에 따르면 엑소 멤버들은 매달 정산 자료를 회사에서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 판례를 이번 사건에 직접 적용하긴 어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송 변호사는 “보통 가수에게 제공되는 정산서에는 실제 정산 자료가 세세하게 다 들어가지 않는다”며 “만약 정산 자료와 정산서에 적힌 내용이 다르지 않거나, 정산 자료에 부당한 공제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법원에서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SM의 ‘세 멤버 잔혹사’

2009년 SM에 전속계약 효력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동방신기를 탈퇴한 JYJ. 왼쪽부터 김준수, 김재중, 박유천. 사진 씨제스엔터테인먼트

2009년 SM에 전속계약 효력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동방신기를 탈퇴한 JYJ. 왼쪽부터 김준수, 김재중, 박유천. 사진 씨제스엔터테인먼트

SM은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소속 가수와 분쟁도 많이 겪었다. 공교롭게도 인기 그룹의 세 멤버가 회사와의 갈등 끝에 이탈하는 일이 반복됐다. 첫 보이그룹 에이치오티(H.O.T.)는 재계약 과정에서 수익 분배 등 조건이 맞지 않아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이 회사를 나갔다. 이들이 탈퇴 후 기자회견에서 “음반 한장당 받는 인세는 1인당 20원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면서 SM은 뭇매를 맞았다.

‘세 멤버 잔혹사’의 정점은 2009년 동방신기와의 분쟁이었다. 영웅재중(김재중)·시아준수(김준수)·믹키유천(박유천)이 SM을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3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이때 SM의 전속계약 기간이 13년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이돌 노예계약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동방신기 사태는 SM의 흑역사이자 연예계 전반의 불공정 계약 문제를 공론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엑소는 이미 세 멤버의 이탈을 겪은 적이 있다. 2014~2015년 중국인 멤버 루한·크리스·타오가 전속계약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SM에 소송을 걸고 엑소를 탈퇴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SM보다 멤버들을 비판하는 여론이 더 우세해 팀이 와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한국인 멤버들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엑소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소송비 지원까지 불사하는 IP 전쟁

인기 가수가 곧 지적재산권(IP)인 K팝 소속사들 사이에서 IP 확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열린 드림콘서트. 사진 연합뉴스

인기 가수가 곧 지적재산권(IP)인 K팝 소속사들 사이에서 IP 확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열린 드림콘서트. 사진 연합뉴스

이번 엑소 사건의 이면엔 지식재산권(IP) 확보를 위한 소속사 간의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더 크고 열렬한 팬덤을 보유한 가수가 곧 소속사의 핵심 IP가 된다. IP 확보 경쟁이 과열되면서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가수에게 다른 소속사가 접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음원 강자로 통하는 한 인기 걸그룹 멤버를 경쟁사에서 영입하려다가 소속사 간의 갈등으로 번졌던 사례도 있다.  

인기 가수를 빼 오기 위해 기존 소속사와의 소송 비용 지원까지 불사하는 회사도 있다는 게 가요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수익이 확실한 가수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며 “법률 대리 비용은 새 소속사가 대는 식으로 소송을 진행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