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vs 17~18년. 진짜 계약은 몇 년?
이들이 부당하다고 특히 강조한 부분은 계약 기간이다. 세 멤버 측은 “SM이 종래 12~13년이 넘는 장기 계약을 아티스트들과 체결한 뒤, 이도 모자라 후속 전속 계약서에 날인하게 해 최소 17년 또는 18년 이상에 이르는 장기간의 계약 기간을 주장하는 등 극히 부당한 횡포를 거듭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습생 기간까지 합쳐 SM이 약 20년 동안 ‘노예계약’ 맺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전속계약 및 후속 전속계약서 체결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산도 문제가 없다고 못 박았다. SM은 “정산 자료는 아티스트가 원하면 언제든 당사에 내방해 확인하도록 협조했고, 아티스트 내방 때마다 지출 내역에 대해 별도로 제공하기도 했다”며 “열람만 허용하는 이유는 외부 세력 및 제3자에 대한 부당한 제공이 우려되기 때문이라는 점을 아티스트의 대리인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SM은 이번 분쟁을 부추긴 ‘배후’를 지목하기도 했다. SM은 오전에 낸 보도자료를 통해 “당사 소속 아티스트에게 접근해 허위의 정보, 잘못된 법적 평가를 전달하면서 당사와의 전속계약을 무시하고 자신들과 계약을 체결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비상식적인 제안을 하는 외부 세력이 확인되고 있다”며 “당사 소속 아티스트가 당사와의 유효한 전속 계약을 위반하도록 유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아티스트를 통해 당사 소속 다른 아티스트까지 전속계약을 위반하거나 이중계약을 체결하도록 유인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산 자료 열람할 수 있었다” vs “사본 받지 못했다”
하지만 멤버 측이 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실제 계약 기간은 전속계약 7년에 해외 활동 추가 계약 3년을 더한 10년이다. 세 멤버 측은 이에 대해 “기존 전속계약에 구속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없었다”며 “대등한 지위에서 (후속) 계약 조건을 정하거나 자기의 희망을 반영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건 계약서 문구에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엔터기업 전문 송혜미 변호사(법률사무소 오페스)는 “계약 시작 시점이나 연장 조건 등 세부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기간이 다르게 계산될 수 있다”며 “만약 영구적인 계약으로 해석될 문구가 있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 멤버 측은 2019년 가수 성현우가 소속사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 판례를 계약해지 근거로 제시했다. 소속사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고 정산 자료도 제공하지 않아 전속계약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소송이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표준전속계약서에 소속사가 연예인에게 정산금과 정산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를 위반한 건 계약해지 사유라고 판단했다. SM 측 주장에 따르면 엑소 멤버들은 매달 정산 자료를 회사에서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 판례를 이번 사건에 직접 적용하긴 어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송 변호사는 “보통 가수에게 제공되는 정산서에는 실제 정산 자료가 세세하게 다 들어가지 않는다”며 “만약 정산 자료와 정산서에 적힌 내용이 다르지 않거나, 정산 자료에 부당한 공제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법원에서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SM의 ‘세 멤버 잔혹사’
‘세 멤버 잔혹사’의 정점은 2009년 동방신기와의 분쟁이었다. 영웅재중(김재중)·시아준수(김준수)·믹키유천(박유천)이 SM을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3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이때 SM의 전속계약 기간이 13년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이돌 노예계약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동방신기 사태는 SM의 흑역사이자 연예계 전반의 불공정 계약 문제를 공론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엑소는 이미 세 멤버의 이탈을 겪은 적이 있다. 2014~2015년 중국인 멤버 루한·크리스·타오가 전속계약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SM에 소송을 걸고 엑소를 탈퇴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SM보다 멤버들을 비판하는 여론이 더 우세해 팀이 와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한국인 멤버들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엑소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소송비 지원까지 불사하는 IP 전쟁
인기 가수를 빼 오기 위해 기존 소속사와의 소송 비용 지원까지 불사하는 회사도 있다는 게 가요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수익이 확실한 가수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며 “법률 대리 비용은 새 소속사가 대는 식으로 소송을 진행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