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담회는 길데이 총장이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조정관과 함께 참석해 오커스(AUKUS)의 전략ㆍ군사적 함의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오커스는 2021년 9월 15일 미국ㆍ영국ㆍ호주가 결성한 안보 협의체다.
미 해군 원자력학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다. 퇴역한 공격 핵잠(SSN) 4척을 개조한 뒤 부두에 계류하고 실습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곳에 입학하려면 NFQT(원자력 분야 자격 시험)에 통과하고, NACLC(국립ㆍ지역 기관 신원ㆍ신용 조회도 거쳐야 한다. 1955년 개교 이후 외국인 입교는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영국이 첫 예외였고, 이번에 호주가 두 번째 예외였다.
오커스는 미ㆍ영ㆍ호 3국이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안보협력을 하려고 만들어졌다. 오커스 협정은 두 분야로 이뤄졌다. 제1 분과는 미ㆍ영의 기술로 호주가 핵잠을 짓는 게 목표다. 호주 잠수함 병과 장병이 미국 원자력 학교서 수료한 이유다.
오커스의 제 2분과는 무인잠수함, 양자기술, 인공지능과 자율화, 사이버, 극초음속 미사일과 방어 능력, 전자전 등에서의 첨단 기술 협력이다.
또
오커스 문 열어 확대하려는 美
이 간담회에서 커트 캠벌 조정관은 의미심장한 얘기를 꺼냈다.
다양한 국가들이 오커스에 흥미를 보이는 있으며, 미국은 그 국가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보다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 감사한다. 이는 매우 긍정적이며, 미국은 적절히 대처하겠다.
미 백악관은 지난해 4월 오커스와 관련, “이러한 중요한 국방ㆍ안보 역량 안에서, 미국은 동맹국과 우방국을 적절히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찰스 이덜 CSIS 호주 책임자는 “한국ㆍ프랑스ㆍ뉴질랜드가 오커스 제 2분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호주가 미 해군의 신형 공격 원잠 구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 호주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 3월 1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만나 오커스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3국 정상은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우선 호주군과 호주 조선소 인력을 미국에서 연수를 받도록 한다. 이에 따라 호주군이 미 해군 원자력 학교에 입교했다.
그리고 미ㆍ영의 핵잠이 호주의 퍼스에 자주 기항하도록 한다. 호주군이 이들 핵잠에 탑승해 현장 교육을 받기 위해서다.
다음 단계에선 영국이 설계하고 미국 기술이 들어간 SSN 오커스를 건조한다. SSN 오커스는 영국의 경우 2030년대 후반, 호주의 경우 2040년대 취역할 계획이다.
현재 호주가 보유하고 있는 콜린스급 잠수함(재래식) 6척은 2036년까지 운용한다. 이에 따르면 호주는 SSN 오커스가 나올 때까지 잠수함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잠수함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호주는 2030년대 초반 미국의 버지니아급 공격 핵잠 3척을 사들이고, 원할 경우 2척을 더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미 해군의 신형 공격 핵잠인 버지니아급은 배수량이 7900t에 길이 115m, 선폭 10m다. 물속에서 최대 속도는 20노트(시속 37㎞)다.
공격 핵잠은 핵탄두가 달린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없다. 그래서 전략 핵잠이라고 불리진 않는다. 적의 잠수함이나 수상함을 공격하거나, 특수부대를 적진으로 침투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버지니아급은 BGM-109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최대 12발까지 실을 수 있다.
걸림돌이었던 미 의회의 입장 변경
호주 해군의 핵잠 사업 TF장인 조너선 미드 중장은 지난 5월 30~31일 호주 의회 청문회에서 오커스의 액션 플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했다.
호주가 2032년께부터 미국으로부터 들여올 버지니아급은 일단 3척인데, 이 중 2척은 중고다. 미 해군이 운용 중인 핵잠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중고이지만, 20년 이상 운용이 가능한 것들이다.
버지니아급의 원자로는 33년이 지나면 핵연료를 갈아줘야 한다. 호주가 취역 후 10년이 조금 지난 버지니아급 공격 핵잠을 도입한다는 의미다. 나머지 1척은 신조 핵잠으로 가져온다.
호주는 2050년대까지 모두 8척의 공격 핵잠을 보유할 계획이다. 버지니아급 3척은 호주가 미국과 영국의 기술로 공격 핵잠을 만들 때까지 임시 전력이 아니다. 버지니아급 3척과 자체 건조 공격 핵잠 5척을 포함한 숫자가 8척이다
만일 자체 건조가 늦어질 경우 미국에서 2척의 버지니아급을 더 사들인다. 그렇다면 자체 건조는 3척으로 줄어든다.
오커스의 걸림돌은 미 의회다. 미국이 핵잠과 같은 전략 물자를 수출하거나 첨단 기술을 해외로 이전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 미국으로부터 구형인 LA급 핵잠을 사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다 없던 일이 돼 버린 배경에도 미 의회가 있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찬성했지만, 실무진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미국 의회가 입장이 바뀌었다. 민주당에서 버지니아급의 호주 판매를 승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국형 핵잠 사업 순항 중일까
한국은 핵잠을 보유하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 ‘362 사업’을 통해 비밀리에 핵잠을 건조하려고 하다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 때도 핵잠 사업을 모색하다 없던 일이 돼 버렸다.
핵잠은 재래식 잠수함보다 ▶항속거리가 길며 ▶더 많은 무장을 실을 수 있고 ▶조용하면서도 빠른 장점을 갖고 있다.
해군은 2030년대 초반 장보고-Ⅲ 배치-Ⅲ 잠수함 3척을 지으려는 데, 추진 방식을 재래식으로 할지, 핵으로 할지 결정이 안 됐다. 다만 작전요구성능(ROC)은 핵잠에 가깝다고 한다.
오커스가 문호를 열고, 호주가 미국 핵잠을 도입할 예정이라는 사실은 한국에도 의미가 있다.
한국은 잠수함 건조 기술이 뛰어나고, 핵잠 원자로를 설계할 능력도 있기 때문에 자체 건조 역량은 충분하다. 그런데도 부족한 게 있다. 그리고 오커스가 그 부족분들을 채워 줄 가능성이 있다.
우선 핵연료. 한ㆍ미는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농축할 수 있고,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원자력 협정을 맺었다. 미국의 핵잠은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쓴다.
20%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쓰면 된다. 그러나 저농축 우라늄은 여러 번 교체해줘야 한다.
362 사업단 단장을 지낸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오커스에 참가한다면 미국으로부터 고농축 우라늄을 핵잠의 동력원을 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고 예상했다.
또 오커스를 통해 한국은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핵잠 운용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핵잠은 복잡한 전력 체계다. 그래서 이미 핵잠을 운용하는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좋다.
현재 핵잠 보유 국가는 현재 미국ㆍ러시아ㆍ중국ㆍ영국ㆍ프랑스ㆍ인도다. 중ㆍ러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인도는 러시아 핵잠을 빌려 쓰고 있다. 한국이 프랑스로부터 기술을 받아올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수준은 오커스의 미ㆍ영에 비해 낮은 게 사실이다.
일본 핵잠 보유에 호의적인 오커스
길데이 총장은 지난 1월 “일본이 핵잠의 건조를 결정한다면 수년간 국가적으로 정치ㆍ재정 지원을 해야만 하는 큰 사업”이라며 “그런 사업을 하려면 적절한 인원ㆍ훈련ㆍ플랫폼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일본의 핵잠 보유를 지지할 가능성을 내비친 발언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선 어떻게 할까. 처음엔 부정적이었다. 미 해군 해상체계사령부의 제임스 캠벨 프로그램 분석관은 2019년 “미국은 한국이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핵잠수함) 기술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미국이 확고한 입장에서 유연한 입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는 “한국은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동맹 성격의 오커스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어려워할 수 있다”며 “미국도 정부가 갈릴 때마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 태도가 달라지는 한국을 못 미덥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 일각에선 오커스를 통해 미국이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한다면, 한국의 독자적 핵잠 운용에 간섭할 여지가 생길 우려를 제기한다.
결국 공은 한국에게 넘겨져 있다. 핵잠 사업을 밀고 나간다면 정부는 오커스에 대한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언젠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