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미국의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한장의 파워포인트가 올라왔다. 출처는 미 해군 정보국(ONI)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과 미국 해군의 전력격차’라는 제목의 슬라이드에서 눈에 확 띄는 그래픽이 있다. 총 톤수로 나타낸 미국의 중국의 상대적인 조선 생산 능력 비교다. 중국 조선소의 생산 능력이 약 2325만 GT(총톤수)인 반면 미국은 10만 GT가 안 된다. 미ㆍ중 격차가 232배가 넘는다는 얘기다.
미국의 군사 전문 매체인 워존은 미 해군에 문의한 결과 ONI의 슬라이드가 맞는다는 회신을 받았다. 미 해군이 미국 조야에 경고를 울리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점점 벌어지는 미·중 함선 격차
현재 해군력에서도 미국은 중국에 뒤떨어지고 있다. 중국 해군은 2015년(미 289척, 중 294척)부터 보유 함선수에서 미 해군을 앞섰고, 그 격차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격차가 57척(미 224척, 중 351척)로 늘어났다.
아직까진 미국이 핵추진항공모함이나 핵추진잠수함 숫자가 더 많지만, 중국이 무섭게 따라가고 있다. ONI는 2050년 미국(305~317척)이 중국(475척)에 한참 뒤지는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이 무조건 머릿수로 미국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 국방부와 해군은 중국 해군의 대부분이 대함ㆍ대공ㆍ대잠 능력을 갖춘 최신 다목적 함정이며, 기술적으로 미국에 상당히 근접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은 2045년까지 최대 80척의 핵잠을 포함해 500척의 함대를 꾸리겠다는 ‘2045년 전력 계획(Battle Force 2045)’을 2020년 발표했다. 물론 500척엔 무인수상정(USV)과 무인잠수함(UUU)이 들어가 있다. 유인 함정은 373척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미국 내부에서도 건함 계획의 현실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7월 미 해군이 발표한 ‘항해 계획 2022’에 따르면 2045년까지 유인 함정 목표가 350척으로 줄었다.
"중국 1개 조선소가 미국 전체보다 더 많이 만들어"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뒤늦게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지만 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리버티(Liberty)급 수송선 2710척을 건조했다.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24척을 만들어냈다. 한때 ‘민주주의의 무기고’였던 미국이 요즘은 중국에 완전히 기세가 꺾였다.
‘넘사벽’이었던 미국 조선 산업은 현재 초라한 수준이다. 미 해군은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HII)와 제너럴다이내믹스(GD)의 조선소에서 배를 주문하고 있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 장관은 지난 2월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에는 13개의 조선소가 있으며, 한 곳의 생산 능력이 우리 모든 조선소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며 “이는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
미 해군이 주력 잠수함인 버지니아급 핵추진공격잠수함 건조량을 매년 1.2척에서 매년 2척으로 늘릴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은 2028년이나 가능하다.
신규 건조뿐만 아니라 유지보수ㆍ수리ㆍ정비(MRO) 능력도 형편없다. 핵추진공격잠수함(SSN)인 보이시함(SSN 764)은 정비를 받으러 2017년 부두에 정박했지만, 내년에서야 작업이 끝나 다시 바다로 나간다.
수상함의 경우 정비 완수율이 2021년 44%에서 지난해 36%로 더 나빠졌다. 미 해군의 잠수함 책임자인 조너선 러커 중장은 지난해 11월 당시 “해군이 보유한 핵추진공격잠수함 50척 중 18척이 유지보수 중이거나 유지보수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은 미 해군의 주력 구축함인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의 유지보수는 평균 26일 늦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은 미국의 조선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조선 산업은 한국과 같은 아시아 경쟁국가에 밀려 쇠퇴했다. 설비도 낡고 생산력도 떨어진다.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공급망이 막혔으며, 생산 인력도 많이 떠났다.
미국 정부와 산업계가 조선 산업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숙련 노동력과 자원을 복구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 전망이다.
한국을 찾은 미 해군의 수상함 조달 책임자
지난 2월 미 해군 시스템사령부(NAVSEA)의 톰 앤더슨 중장이 한국을 찾았다. 앤더슨 중장은 미 해군의 수상함 부문장(PEO)이다. 미 해군의 수상함 조달 사업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는 엄동환 방위사업청을 만난 뒤 HD현대와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HJ중공업 등 한국 조선 업체를 찾았다. 앤더슨 중장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 업체를 찾으러 왔는데 여기서 있었다”며 “이번 방문이 상호 이익이 되며 앞으로 업무에서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1920년 만들어진 존스법에 따라 미국에서 건조하거나 개조한 뒤 미국 시민이 소유하고 미국 국적의 선원을 태운 선박만 미국 항만 간 운항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또 연방법은 미 해군ㆍ해안경비대 함정이 긴급 수리를 해야 하거나 해외 기지를 모항으로 삼지 않는다면 해외 건조ㆍ수리를 금지하고 있다.
콧대 높은 미국이지만, 중국과의 해양력 대결에서 힘에 부치자 자존심을 접고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손을 내밀고 있다. 당장 한ㆍ일과 계약을 맺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론 법을 고쳐서라도 한ㆍ일에 신규 함정을 주문하고 기존 함정의 수리를 맡길 가능성이 있다.
CNN은 지난달 한국이 만든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급 구축함을 세계 최고의 군함으로 꼽으면서, 한ㆍ일에서 배를 사거나 설계도를 주고 주문한다면 훌륭한 가성비로 중국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일본의 니케이(日經)는 미국이 일본의 민간 조선 업체들에 미 해군 함정의 MRO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당국자는 앞으로 일본 조선소에서 미국과 일본이 협력해 미 함선을 건조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MRO를 한국ㆍ싱가포르ㆍ필리핀ㆍ인도로 확대하는 계획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한국에 이지스함을 주문할 날이 올 수도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찾는 이유는 미국과 비교해 싼 비용으로 더 훌륭한 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을 만든 뒤 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1척을 완성하고 나머지 2척을 지을 예정이다. 모두 6척 중 5척을 HD현대가 맡았다. HD현대는 세종대왕급과 정조대왕급의 연구개발도 한 회사다.
HD현대에 따르면 한국의 이지스 구축함은 미국보다 비용은 절반이고 기간은 1년이 짧다고 한다. 일본과 비교해서도 기간ㆍ비용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 엄청난 경쟁력이다. 미국이 한국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이 전투함을 빨리 싸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잘 만든다는 장점도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의 설계도를 미국에서 사오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우리 기술력을 믿고 자체 설계했다. 일본만 하더라도 미국 것을 거의 그대로 들여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HD현대는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에 스텔스를 적용하고, 어뢰를 맞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했다. 부품의 국산화 비율도 76%로 올렸다. 함대지 순항 미사일인 천룡과 함대함 미사일인 해성, 대잠어뢰 유도 로켓인 홍상어 등 국산 무기를 달 수도 있다.
어려움은 있었다. 이지스 체계의 레이더인 AN/SPY-1이 정밀한 물건이고 전파간섭을 고려해야 하므로 설계 도면에서의 허용 오차가 ㎜로, 그 것도 소수점 단위였다.
미국은 한국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전문 매체인 워리어 메이븐은 세종대왕급을 전 세계 최고의 구축함으로 선정했다.
K-방산이 전투함을 앞세워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을 뚫을 날이 올 수도 있는 환경이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미국은 한국의 조선 능력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은 전시 병력과 물자를 나를 수송선단의 노후화로 고민하고 있는데, 한국으로부터 중고 선박을 사 오거나 신규 선박을 주문할 수 있다. 미국의 수송 능력 저하는 유사시 한국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한ㆍ미가 윈윈할 수 있으려면 미 의회에 적극적으로 설명해 관련 법을 개정해야만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