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SK하이닉스 이천 공장. 사진 SK하이닉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하순 반도체 구매담당 직원을 일본에 파견했다. 현지의 반도체장비 회사인 디스코·린텍 등과 접촉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 장비를 ‘급구’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삼성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한해 반도체 부문 투자에 47조원 이상 투입하면서 정작 필요한 수십억원 규모의 설비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높은 수준의 공정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본딩(접착) 분야 세계 1위인 네덜란드 베시(BESI)와도 접촉했지만 이 회사는 이미 TSMC와 주로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SK vs 삼성 HBM 경쟁 갈수록 치열

정근영 디자이너
이날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체 D램 매출이 107억 달러(약 14조1400억원)로 전 분기보다 15% 늘어났다. 업계 1위 삼성전자의 D램 매출은 41억 달러로 전 분기 대비 3%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49%가 늘어 34억 달러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이 42.8%에서 38.2%로 4.6%포인트 하락할 동안 SK하이닉스는 24.7→31.9%로 7.2%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의 점유율 격차는 18.1→6.3%포인트로 좁혀졌다. 옴디아에 따르면 이는 최근 10년 새 가장 작은 격차다. 급증한 HBM 수요가 D램 업체의 희비를 가른 것이다.
“땡큐 HBM” SK하이닉스 D램 점유율 급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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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HBM의 급부상을 놓고 전열을 재정비한 상태다. 사실 지난해 세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5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삼성전자(40%)를 10%포인트 격차로 따돌렸다는 트렌드포스의 분석이 나오자 삼성 내부에서 위기감이 역력했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후발 주자인 SK하이닉스에 밀린다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최근 4~5년간 단기 성과에 급급해 중장기 투자와 시장 변화 분석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이례적으로 보직 인사를 통해 D램개발실장을 황상준 부사장으로 교체한 것 역시 HBM을 포함한 차세대 메모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2013년 HBM을 최초로 개발하면서 시장을 선점한 것은 SK하이닉스다. 업계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도 HBM 개발팀을 조직하고, 설비 투자에 나섰지만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공격적 투자가 이어지지 않았다. 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대다수 공급량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하이닉스가 크게 앞선 상태에서 최근 들어서야 삼성이 공격적으로 공급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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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HBM3, 엔비디아 공급에 관심 집중
하지만 삼성전자가 HBM 분야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면 판세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이 각각 46~49%(2023년), 47~49%(2024년)로 엇비슷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올 4분기부터 엔비디아에 HBM3를 공급하며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세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이) 2분기 중 제품 샘플을 보냈으며 다음 달 말까지 품질 검증을 완료할 가능성이 크다”며 “내년에는 HBM3의 주요 공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며 엔비디아 내 점유율을 30%까지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