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헌장 제27조 3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에 합법적인 ‘셧다운 권한’을 부여한다. 결의 채택과 의장성명·언론성명 도출 등 안보리가 구체적 행동에 나서기 위한 조건으로 P5 전원의 동의를 명시하면서다. 이는 상임이사국이 마음만 먹으면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불량국가를 언제든 비호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23년 현재 안보리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北 핵·미사일에도 '비토' 연발하는 중·러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내에서 유일하게 법적 구속력 있는 조치를 내릴 수 있는 실세 기관이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의 비토권에 가로막혀 지난해부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식물 기구로 전락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5월 미국 주도로 북한의 원유·정제유 수입량을 추가로 줄이는 대북제재 결의가 마련됐으나 중·러는 이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문제 국가가 상임이사국과 결탁해 제재를 막아내는 철면피 행태였다. 이후 북한은 중·러의 비토권을 등에 업고 전례 없는 규모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지속했다.
당초 비토권은 유엔 창설 당시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제2차 세계 대전 승전국들의 유엔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1945년 초 유엔 헌장 초안의 구체적 내용이 논의될 당시 이들 승전국은 유엔 가입이 자칫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을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에 유엔은 미·영·프·러·중 등 5개국에 대해서만 자국에 해가 되는 안보리의 결정을 막아낼 수 있는 무적의 방패를 건넸다. 유엔 창설을 위해 건넨 특권이 유엔 체제를 흔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역설이다.
제재 위반 북·러 군사협력…멈춰선 안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2~17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개최했다. 김정은과 푸틴은 북러 간 무기 거래를 포함한 군사 협력 문제를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AP=연합뉴스
결국 안보리에서 북·러 군사 협력을 제재하기 위해선 러시아가 자국의 행동에 스스로 페널티를 가하는 모순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올레크 코제먀코 러시아 연해주 주지사가 방러 일정을 끝내고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은에게 살상용 자폭 드론을 선물한 것 역시 안보리 차원의 대응이 불가능하단 점을 인지한 고의적 제재 위반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을 화두로 던졌다. 대통령실 제공
개혁 본질은 '비토권'…5개 상임이사국 모두 동의해야

러시아를 상임이사국에서 퇴출하는 것은 물론 상임이사국의 비토권 조정 문제 역시 유엔 헌장 개정 사항이다.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손 쓸 방법이 없다. 크렘린궁 제공
그럼에도 유엔총회 무대에서 각국 정상이 안보리 개혁을 화두에 올린 건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안보리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메시지 발신과 공론화 자체가 대러 압박의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이 무력 침공을 감행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안보리 결의를 버젓이 위반해 핵 개발에 몰두하는 정권을 방치하고 도와주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현 유엔 안보리의 자기모순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음을 강력히 지적했다”고 유엔총회 참석 결과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