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디케의 칼

대법정 입구 동상에 관심이 간 건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 때문이다. 금태섭 전 의원이 2008년 펴낸 『디케의 눈』을 제목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디케의 눈물』. 제자(금태섭)는 검사 시절 느꼈던 사법정의 소신을 피력한 반면 추천사까지 써 줬던 스승(조국)은 자신 및 주변인의 억울함, 윤석열 대통령과 검사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담은 정의를 외친다.

 그와 관련된 중요한 판결이 최근 하나 나왔다.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대법원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선고했다. 의원직 상실형이다. 조 전 장관의 아들 조원씨에게 대학원 입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자신이 변호사로 일하던 지난 2017년 10월 거짓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다. 이 사건에는 조 전 장관 부부와 아들까지 연루되고 공모 혐의도 인정돼 최종적으로 유죄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시간이다. 검찰은 최 전 의원을 2020년 1월에 재판에 넘겼다. 1, 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까지 무려 3년 8개월이 걸렸다. 최 전 의원은 기소된 상태에서 2020년 4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총선에 출마해 21대 국회의원이 됐다. 대법원에서만 1년 4개월이 걸리는 등 재판이 늦어지면서 4년 임기 중 7개월만을 남긴 3년 5개월간 의정 활동을 했다. 그는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깐죽거리지 말라”고 하는 등 현 정부에 대한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다.

최강욱 재판에 3년 8개월 걸려
윤미향·황운하는 임기 채울 듯
정치인에 ‘신속재판’ 강제해야
 기다리던 또 다른 판결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금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윤미향 의원(무소속)에게 2심 재판부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윤 의원이 법인 계좌에 보관하던 1700만원을 유용한 혐의만을 인정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었다. 의원직 상실형을 면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횡령 액수를 8000만원으로 봤다. 1심에서 무죄라고 했던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을 관련 없는 용도로 사용한 혐의’ 등도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내려놔야 한다. 1심 선고 직후 “…얼마나 억울했을까…”“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 의원을 지지했던 의원들은 말이 없다.

 윤 의원 역시 ‘지연된 정의’ 덕을 보고 있다. 2020년 9월 기소돼 올해 2월 1심 판결을 받기까지 2년 5개월이 걸렸다. 기소 후에도 무죄를 주장하며 민주당에 남아있던 그는 2021년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고 나서야 당적을 내놓고 무소속이 됐다. 최근 2심까지 3년이 소요됐는데 대법원에서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의원 임기를 다 채우게 된다. 재판이 늦어지는 동안 윤 의원은 지난달 친북 단체 조총련 등이 주최한 간토대지진 100주년 행사에까지 참여하는 등 논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 자격이라고 했지만 주일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대사관 차량을 제공받았다.


 이뿐인가. 수많은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들에 대한 재판이 시간만 끌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경우 2020년 1월 기소된 후 3년 8개월 만인 지난 11일 결심공판이 있었다. 그 사이 임기를 다 마쳤다. 함께 기소된 황운하 민주당 의원 역시 임기를 다 채울 것 같다. 국회의원의 경우 연간 약 1억5400만원의 세비를 받는다. 의원실에서 별도로 약 9400만원의 경비를 받는다. 후원금도 있다.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임기 중 꼬박꼬박 받을 것이다.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선출된 정치인들의 형사사건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래도 선거사범에 대한 원칙은 있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처럼 길어지는 재판이 부지기수여서 강제성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다른 형사사건에 대해서도 원칙을 정할 수 있다. 기소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받은 세비와 경비, 후원금을 나중에 유죄가 확정될 경우 환수라도 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대법정에 설치된 디케상은 눈을 가리고 있지 않다. 한 손에 칼 대신 법전을 들고, 표정도 온화하다. 인간적인 재판을 하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듯하다. 하지만 사법 사각지대에서 자신들만의 정의를 외치며 많은 걸 누리는 이들에 대한 신속하고 냉철한 심판이 필요하다. 한국의 디케도 눈을 가리고 칼을 들어야 한다.

 
글 = 문병주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