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 박엘레아노라(42)는 이국에서 나홀로 두 아이를 돌본다. 남편의 가정폭력 등으로 이혼한 그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우크라이나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피난왔다. 그는 지난 7월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고려인 너머
우크라이나 국적의 고려인 박엘레아노라(42·여)는 추석 연휴가 반갑지만은 않다. 지난해 7월 전쟁을 피해 가까스로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으로 피난을 왔지만, 우크라이나에 여전히 첫째 딸이 남아있어서다. 추석 연휴를 닷새 앞둔 지난 24일, 안산 고려인 지원센터에서 만난 그는 연신 “아이들이 걱정”이라고 되뇌었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반찬가게를 하며 세 자녀를 키우던 그의 삶은 지난해 2월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급변했다. 피난민으로 가득한 기차에 몸을 싣고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폴란드와 체코를 전전하며 피난민 생활을 이어갔다. 임신 중이던 첫째 딸은 피난이 길어지면서 “벙커에서 살더라도 돌아가겠다”며 다시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지난해 7월 ‘고려인 너머’의 도움으로 한국을 찾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이유다. 매일 밤 그는 “고향에서 가족들과 다 같이 모이는 날이 곧 온다”며 아이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7월에는 더 큰 시련이 닥쳤다. 복통이 심해 찾은 병원에서 정밀검사 끝에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매일 방사선 치료, 3주마다 약물치료를 받는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의료보험 덕에 병원비 폭탄은 피했지만, 주 35만원가량을 벌던 자동차 부품 공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박엘레아노라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치료를 열심히 받아 꼭 병을 이겨내고 전쟁이 끝난 뒤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자녀 넷 잃고 후유증 겪는 아빠

나이지리아인 펠릭스 산타(55)는 지난 22일 경기도 안산시 선부역 부근에서 기자와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폐차수출 일을 하는 그는 지난 3월 화재로 자녀 넷을 잃었다. 손성배 기자
화재 6개월이 지나고 양발과 오른쪽 팔에 입었던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날의 악몽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지난 22일 지하철 서해선 선부역 부근에서 만난 펠릭스 산타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아이들이 계속 생각난다. 탁 트여 있는 곳에 오지 않으면 답답해 견딜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펠렉스 산타(오른쪽)은 지난 3월 화재 후 근처 상가주택에 거처를 구해 아내와 막내딸과 살고 있다. 손성배 기자
천신만고 끝에 이국서 얻은 첫 딸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모하메드(32·오른쪽)·조흐레(26) 부부는 지난 7일 딸 노라를 데리고 퇴원했다. 심석용 기자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에 살던 모하메드 부부는 2021년 8월 내전을 피해 한국에 왔다. 모하메드가 수도 카불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터라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5개월간 직업 훈련과 언어·문화 교육을 받은 뒤 인천에 터를 잡았다. 고국에선 각각 요리사와 간호사였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 모하메드가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면서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올해 초엔 조흐레의 임신 소식까지 전해졌다.

왼쪽부터 손동우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김성민 외과 교수, 조흐레, 모하메드, 김석영 산부인과 교수, 연소영 사회사업팀장. 가천대길병원은 협력 후원기관 의료비 지원사업과 연계해 모하메드 부부의 병원비 전액을 지원했다. 심석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