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끼 넘치지만"…'프랑스 문화훈장' 韓큐레이터의 조언

한국의 능소화와 담쟁이 벽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승덕 르콩소르시엄 디렉터. 본인 제공

한국의 능소화와 담쟁이 벽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승덕 르콩소르시엄 디렉터. 본인 제공

 
이우환 화백부터 영화감독 봉준호,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공동으로 수상한 훈장이 있으니,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슈발리에 장(章)이다. 문화예술계 교류와 발전에 공을 세운 이들을 선정해 수여하는 이 훈장을, 지난해엔 '글로벌 큐레이터'로 통하는 김승덕 르 콩소르시움 미술관 디렉터가 받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교육 받고 유럽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그가 최근 서울을 찾았다. 그는 리움 미술관 개관 이전부터 삼성 미술관과도 인연이 있고,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도 활동했다.  

르 콩소르시움은 1977년 프랑스 디종의 대안 예술 공간으로 시작해 지금은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는 미술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비단 미술뿐 아니라 출판과 예술 사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감이 뚜렷하다. 르 콩소르시움이라는 이름은 귀에 익지 않더라도, 르 콩소르시움이 유럽에 소개한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부터 신디 셔먼 등 굵직한 작가들의 이름은 국내에서도 친숙하다. 뉴욕타임스(NYT)는 2016년 "예술계의 다음 큰 흐름을 조용히 감지해내는 곳"이라고 르 콩소르시움을 소개했다. 최근 서울 한남동에서 만난 그는 "시대의 정신(zeitgeist)을 읽어내는 게 예술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승덕 큐레이터가 공동 디렉터로 있는 르콩소르시엄을 다룬 뉴욕타임스 2016년 T매거진 기사. [the New York Times 캡쳐]

김승덕 큐레이터가 공동 디렉터로 있는 르콩소르시엄을 다룬 뉴욕타임스 2016년 T매거진 기사. [the New York Times 캡쳐]

 
2000년부터 이곳의 공동 디렉터로 일해온 김승덕 큐레이터는 이응로ㆍ한묵ㆍ최정화ㆍ이불 등 다양한 한국 작가를 국제무대에 일찌감치 소개하는 역할도 도맡았다. 그가 주도한 이응로 작가의 르 콩소르시움 전시 이후, 퐁피두 미술관은 이응로 작가 작품 소장 계획을 발표했고, 이어 이응로 작가 전시도 개최했다. 르 콩소르시움이 물꼬를 튼 셈이고, 그 막후엔 김승덕이라는 존재가 있다. 파리 퐁피두센터의 협력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던 그의 풍성한 경험과 인맥은 자양분이 풍부한 토양이 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르 콩소르시엄은 '미술관'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데. 디렉터로서 내리는 정의는.  
"우린 말하자면 이 시대의 문화를 통해 표현하는 모든 것을 다룬다. 현대뿐 아니라 그 현대를 존재하게 만든 뿌리까지 모두. 지금을 잘 평가하고 분석하면 다음에 뭐가 올 지(the next big thing)가 보인다. 그러다 보니 신디 셔먼과 리처드 프린스 등 작가들을 초창기 시절부터 픽업햇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려다 보면 회화며 조각, 건축은 물론 출판까지 한다. 1년에 80권을 펴내고 250권을 유통한다."  
 

거칠게 표현해 '돈 버는' 걸 최고의 목표로 삼지 않는 각오가 있는 것 같다.   
"요즘 출판업계는 사실 손실 없이 유지만 해도 성공한 셈이다(웃음). 그런데 돈은 사실 중요하기도 하다. 경제 없는 예술은 사실 없으니까. 항상 그래왔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지원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시대는 없었듯이. 지금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삭감하는 게 문화 예산 아닌가. 배고픈 예술가가 되겠다? 솔직히 어리석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그래서 경제 흐름을 짚어주는 책들도 많이 읽는다. 돈만 있으면 물론 안 된다. 제일 중요한 건,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모든 일의 동력이 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교육받고 유럽에서 활동해온 김승덕 작가. 본인 제공

한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교육받고 유럽에서 활동해온 김승덕 작가. 본인 제공

 

이번 방한 목적은.  
"아일랜드/섬 프로젝트'라고 이야기 드리고 싶다. 르콩소르시움 미술관의 역사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달(transmission)해야 할지 고민 중에 떠올렸다. 과거에 묻힌 역사의 의미보다는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현실성있고 유용히 쓸 수 있는 개념으로 구상하고 있다."
 

한국 문화의 현재 위상은 어디까지 갈까.  
"K팝이 어디에서 갑자기 '뿅'하고 튀어나온 게 아니다. 지금 봐도 감각이 뛰어난 알록달록 조각보로 베개와 이불을 짓고, 소박한 듯 아름다운 달항아리를 일상에서 사용하던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DNA에서 비롯된 거다. 유럽의 작가들과 함께 한국에 오면 우리네 고가구, 책거리 병풍이나 민화, 달항아리 등을 보고 영감을 꽤 받더라. 과거 우리 선조들의 일상이 곧 응용미술이었던 셈이다. 이런 한국의 과거에서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한 전시를 언젠가 기획하고 싶다. 파리 큰 규모 미술관에 달항아리가 놓인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뛰지 않나. 우리 조상의 삶이 얼마나 세련되고 근사했는지 세계에 자랑하고 싶다." 
 

한국과 한국인, 한국사회에 하고픈 조언이 있다면.
"한국인은 워낙 끼와 흥이 넘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그런데 서로를 때로 지나치게 의식하고 경쟁하고 판단하려고 하지 않나 싶다. 지금도 발현되고 있는 중이라고 느끼지만, 좀 더 열린 자세와 말랑말랑한 마음이 한국 특유의 감수성과 합쳐진다면? 그 시너지는 어마어마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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