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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가 전남 화순전남대병원의 치유의 숲을 거닐고 있다. 사진 화순 전남대병원
40대 직장인 조모씨는 8월 초 울산의 중소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주변에선 "서울 큰 병원로 가라"고 했다. 조씨는 주변의 암 환자가 서울 오가며 엄청 고생하는 것을 본 터라 길게 고민하지 않고 울산대병원을 택했다. 조씨는 "유방암 정도는 이제 표준적인 기법으로 치료한다고 알고 있어 서울행을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암을 진단한 중소병원이 나서니 일사천리였다. 울산대병원에서 일주일만에 검사하고 항암 치료를 시작해 3차 치료를 마쳤다. 암 세포 크기를 줄여서 수술할 예정이다. 울산에서 치료받는 덕분에 회사를 계속 다니고, 고교생 자녀를 챙기고 있다. 조씨는 "서울에 안 가길 잘 했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환자가 치료를 끝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일본·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낯설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지역 병의원이 '원 팀'을 이뤄 환자 진료에 나선다. 큰 병원이 의료 기술을 전수하고 진료 정보 전산망을 깔아준다. 작은 병원은 환자를 큰 데로 보내고 다시 받아서 후속진료를 담당한다. 환자도 지역의료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중순 국립대병원 중심의 지역완결형 의료 대책을 뒤늦게 내놨지만 일부 지역에서 생존을 위해 자생적으로 지역완결 의료를 향해 치고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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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아산병원 전경. 사진 강릉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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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병원 IT팀 관계자가 지역 병·의원을 방문해 전자의무기록(EMR) 연동에 필요한 전산프로그램을 설치해주고 있다. 사진 울산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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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이 병원은 지난 6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암 분야 세계 최고 병원 평가'에서 120위를 차지했다. 국립대병원 중에는 서울대와 함께 들었고, 비수도권에서는 유일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전남·광주 지역의 2019~2022년 5대 암 환자( 위·대장·간·유방·자궁경부암) 18만5890명 중 5만9654명(32.1%)이 수도권으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유출률'이다. 충남북·세종·강원(50% 이상), 경북(40%), 대전(37.1%), 전북(35.2%)보다 낮다. 물론 대학병원이 많은 대구(17.8%), 부산(18.3%) 등보다는 높다. 정용연 화순 전남대병원장은 "우리 병원의 5년 상대생존율이 서울의 '빅7' 병원보다 미세하게 우수하다. 광주·전남 암 환자의 50% 이상을 우리가 담당한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올 1~9월 경기(1384명), 서울(971명), 경남(876명) 등에서도 환자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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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유창식 강릉아산병원장은 "우리가 흔들리면 영동지역 주민들이 불안해 한다. 국립대, 민간 병원 구분하지 말고 지역적 특성과 역할을 따져서 지역완결 의료체계를 만들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의 1%(약 1조원)를 기금으로 조성해 지역 의료에 지원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체계를 만들도록 지원해 '의료 자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예방의학) 교수는 "국립대병원 분원을 다 모아도 17개에 불과하다. 국립, 민간 구분없이 대형병원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며 "잘 하는 데를 더 지원하면 지역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