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도 고참도 원 팀 해치면 질책, 나만의 리더십 세웠죠

K리그 2연패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

홍명보 감독이 울산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2연속 우승의 과정을 설명하 고 있다. 송봉근 기자

홍명보 감독이 울산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2연속 우승의 과정을 설명하 고 있다. 송봉근 기자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를 2연속 우승으로 이끈 홍명보(54) 감독을 울산 현대 축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제스처도 컸다. 요즘 말로 ‘자신감 뿜뿜’이다. 그는 2021년 부임 첫 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17년만에 우승컵을 울산으로 가져왔다. 올해는 정규리그 3경기를 남기고 여유 있게 우승을 확정했다. 창단 40주년을 맞은 울산이 리그 2연패를 거둔 건 처음이다. 그는 “선수단-프런트-팬이 삼위일체가 돼 거둔 승리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며 모두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게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올 시즌을 되돌아 본다면?
“타이틀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시작했는데 초반에 압도적으로 잘 나갔어요. 그러다 7월부터 전환점이 왔죠. 성적도 좋지 않았고, 핵심 선수가 이적하고, 선수끼리 SNS 상의 대화가 인종차별 논란으로 커졌어요. 그 전환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위기를 극복한 게 우승이라는 선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 전환점에서 뭘 강조했나요.
“우리 선수들은 전부 1등입니다. 자신들의 축구에 대한 자존심과 프라이드가 강하죠. 이런 선수들을 이끌고 가는 감독은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하나만 선택했어요. ‘나의 리더십을 이 팀에 입혀야 하겠다. 전술·전략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는 응집력은 리더십에서 나온다’고 본 거죠.”
 

그 리더십이 어떤 건지 예를 들자면?
“저는 모든 선수를 공평하게 대하고 존중합니다. 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고 얘기하는데 한두 선수가 경기에 못 나가니까 (불만을 품은) 어떤 태도를 보였어요. 원 팀으로 가자고 했는데 그런 행동을 지적하지 않으면 제 말이 전부 거짓말이 되거든요. 최고 스타든, 고참이든 선수들 보는 앞에서 강하게 질책을 했죠. 선수들 기분도 맞춰줘야 하지만 팀이 잘못 나가고 있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감독으로서 굉장히 창피한 일이거든요.”
 

내가 의도했던 것들이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전율을 느낀 적이 있나요.
“역시 이번에 우승을 확정지은 10월 29일 대구와의 경기(2-0)죠. 김민혁 선수와 장시영 선수가 들어가서 골을 넣는 순간 전율을 느꼈어요. 솔직히 얘기하면 팀에 대해서는 감독이 제일 잘 아니까 그런 건 실력이라기보다는 그냥 운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올 여름 SNS 상에서 선수끼리 나눈 얘기가 인종차별로 비화됐는데요.
“저희가 작년에 우승하고 나서 이제 공공의 적이 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일이 일어난 게 제주한테 5-1로 크게 이긴 날 밤이거든요. 인생살이가 그렇지만 겸손하지 못할 때 항상 안 좋은 일들이 생기잖아요. ‘우리가 겸손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얘기했습니다.”
 

포항 스틸러스와의 ‘동해안 더비’는 다른 경기보다 더 어렵습니까.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우리 팬들은 정상 직전에서 포항에 발목을 잡힌 적이 있기 때문에 꼭 이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습니다. 제가 맡고 나서 중요한 길목에서 포항과 만난 적이 있는데 다행히 우리가 발목을 잡히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우리 선수들이 성장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포항 김기동 감독이 “지금 예산에 50억 정도만 더 주면 책임지고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면서 지원 부족을 아쉬워했는데요.
“포항 스틸러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좋은 전통을 가진 팀입니다. 저는 50억을 더 준다고 해서 꼭 더 좋은 성적이 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감독은 좋은 선수 데리고 있으면 기회가 좀 더 많겠지만 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고 봐요. 톱 레벨이 안 되지만 톱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가는 게 지도자로서 행운일 수도 있어요. 운동만 열심히 가르치면 되거든요.”
 

홈 경기 30만을 돌파한 울산 팬들을 보면 어떤가요.
“모든 팀의 서포터와 팬들이 선수들을 사랑하지만 우리 울산 팬들은 정말로 선수들을 착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경기 내용이 안 좋을 때는 비난도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선하게 선수들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연패를 했다고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감독 나와라. 해명하라’고 하는 건 좀 답답한 모습이거든요. 90분 동안 에너지를 다 쓰고 탈진한 감독한테 사과를 받으려 할 게 아니라 선수들이 빨리 돌아가서 쉬고 다음 경기 준비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죠.”
 

울산 문수경기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다른 팀은 서포터들만 조직적인 응원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는 모든 관중이 다 함께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노래 부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저도 우리 팬들이 부르는 응원가를 속으로 따라 부를 때가 있어요. 특히 경기 막판에 ‘잘~가세요 잘 가세요’ 부를 때가 가장 기분 좋죠. 하하.”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는 울산 소속 선수(5명)가 가장 많다. 골키퍼 조현우, 중앙수비 김영권·정승현, 풀백 김태환·설영우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을 이끈 바 있다.

클린스만호는 잘 가고 있는 건가요.
“논란이 있는 클린스만 감독의 재택근무와 관련해서는 제가 얘기할 건 아니고요. 클린스만이 미국과 독일 대표팀을 맡았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하니까 본인의 철학과 스케줄에 따라 가고 있다고 봅니다. 내년 1월 아시안컵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아직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민규는 대표팀과 인연이 없네요.
“대표팀 최전방에 조규성이나 오현규 같이 활동량이 많은 선수가 기용되는 건 감독의 성향이죠. 주민규는 그들과는 다른 스타일이지만 정말 좋은 선수입니다. 볼 키핑력이나 박스 안에서의 침착함은 독보적입니다. 한번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홍 감독은 우승의 즐거움을 누릴 틈도 없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가 진행 중이고, 내년 시즌도 준비해야 한다. 그는 “내년은 K리그 3연패를 노리면서 젊은 선수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해요. 팀에 저만의 색깔을 좀 더 선명하게 입히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