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을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연내 도입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30일 국회에 따르면 이번 정기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재정준칙(국가재정법 개정안)은 43개 안건 중 39번째로 올랐다. 지난 23일 열린 3차 재정소위까지 35개 안건을 논의했다. 21대 정기국회 종료일(12월 9일)까지 재정준칙을 안건으로 다루지 못하면 연내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매주 열리는 소위 일정을 고려하면 여야가 재정준칙을 다음 주쯤 논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법안이 안건 테이블에 오르더라도 통과가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재정준칙 법제화에 앞서 경기 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준칙 취지와 정면충돌한다.
여당도 미온적이다. 연금·교육개혁처럼 장기 과제라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효과가 없어서다. 당장 4월 총선을 앞두고 ‘표’가 중요한 만큼 시급하게 처리를 밀어붙일 유인이 작다. 진민규 기획재정부 재정건전성과장은 “3월에 여야가 재정준칙 통과에 합의한 만큼 재정소위가 열리면 재정준칙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며 “(재정준칙을 통과시키기 위해) 최대한 국회를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은 단순한 데다 명분도 있는 법안이다.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할 경우 적자 폭을 2% 내로 유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1000조원을 넘긴 국가 채무가 폭증하지 않도록 관리하자는 취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0일 펴낸 ‘2023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재정준칙을 법제화하지 않으면 노인 부양비 급증으로 중앙정부 채무가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9일 경제전망에서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2040년 재정지출 압력이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상승할 것”이라며 “재정준칙을 시행해 재정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관리재정수지는 70조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제시한 연간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를 3분기 만에 훌쩍 넘겼다. 9월 말 기준 국가채무(중앙정부 채무)는 1099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김형준 배재대 정치학과 석좌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불문한 ‘선심성’ 예산 수요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국회가 재정준칙 통과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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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