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높아진 e스포츠] 게임의 사회학
![지난달 4일 부산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경기를 보러온 관객들이 함께 응원하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 라이엇 게임즈]](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312/02/53952631-45ba-4764-b0e5-94709586e971.jpg)
지난달 4일 부산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경기를 보러온 관객들이 함께 응원하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 라이엇 게임즈]
리그오브레전드(LoL)가 시작됐고 이원재(30)씨가 4명의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서울에 있는 18세 동갑내기 친구 장영준·김명진군도, 천안에 있는 35세 김호연씨도, 청주에 있는 26세 정원재씨도 모두 이씨의 지시에 따라 미드로 모였다. 미드 ‘한타’. LOL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말인지 감도 안 잡히는 단어들이지만 게임에 참여하는 5명의 팀원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게임의 맵 곳곳에서 긴박하게 전투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위치와 상황에 대한 빠르고 간결한 설명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한지 30여분이 지난 뒤, 격렬한 교전 끝에 이씨의 팀이 승리했다. 팀원들은 “다들 고생하셨습니다”라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들은 일면식도 없지만 이미 온라인 전장을 함께 누빈 ‘전우’다. 5명의 팀원이 각자 정해진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다 해줬기에 이룰 수 있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각자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5명이지만 LoL을 하는 40~50분의 시간동안은 온전히 게임 캐릭터와 전략에 몰두해 승리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 진정한 메타버스다.
16~35세 5명이 한 팀 만들어 게임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메이플 스토리를 오래 플레이한 이들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만날정도로 그 친밀도가 깊다. 지난 4월 ‘메이플 스토리’ 서비스 20주년을 기념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한 ‘메이플 스토리 팬 페스트’ 행사의 입장권 6000여매는 3분이 채 되지 않아 전석 매진됐다. 이 행사에 참가한 권지열(35)씨는 “행사가 있을때마다 만나다보니 길드원들을 동네 친구들보다 자주 볼때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게임엔진 회사 ‘유니티’의 ‘멀티플레이어 보고서’에 따르면 멀티게임 유저가 게임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능으로 ‘친구들이 이미 플레이 중인 게임’과 ‘게임 안에서 친구와의 채팅 기능’이 각각 34%, 31%로 2, 3위를 차지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실제 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에는 어려서 부터 PC방에서 LoL을 접한 10대·20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90년대말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4050세대도 자녀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초등생 아이들과 현장을 방문한 이유성(46)씨는 “게임이라는 공통 콘텐트를 통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대회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며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 어른들이 다들 모여서 고스톱을 치곤 했었는데 그게 온라인 게임으로 바뀐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2022 게임이용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59.3%가 ‘자녀와 함께 게임한다’고 응답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30년만 지나면 집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윷놀이 같은 전통놀이가 아니라 함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놀이가 그렇듯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고 있고 그게 지금은 온라인 게임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은 꾸준히 그 형태와 종류를 바꿔가며 발전했다. 1990년대까지는 오락실 전성시대라 할만큼 길거리에 오락실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2000년에 전국에 2만5341개 오락실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는 갤러그, 스트리트파이터 등의 콘솔, 아케이드 게임이 주를 이뤘다. 1989년 4월 출시된 닌텐도 게임보이는 1억대 이상 판매되면서 휴대용 게임기의 시대를 열었다. 다만 당시 게임과 오락실의 이미지는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남성 위주 게임 콘텐트 다양화 필요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2000년대에는 ‘디아블로2’가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며 PC방을 점령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는 반복적인 사냥에 지쳐있는 RPG게이머들에게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퀘스트 위주의 레벨업 방식을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LoL’, ‘배틀그라운드(배그)’ 등 다양한 게임의 성공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게임은 ‘오락실’과 ‘애들’을 벗어나 ‘10대에서 50대까지 온 가족이 즐기는 여가 문화’로 발전했다. 콘진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의 74.4%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488억달러였던 글로벌 게임시장 규모는 2022년 2031억 달러로 성장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 드라마보다 게임의 산업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며 “페이커 등 유명 프로게이머들의 인기를 통해 게임이 양지화되고 국가 브랜드를 대표하는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흐름 속에서 게임중독과 사행성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학과 교수는 “게임사용 장애의 특징은 다른 약물등의 중독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게 어렵다는 것”이라며 “이는 중독에 대한 치료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 세계에서 건강한 상호작용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이게 심해지면 이인증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고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 학회장은 “초기 게임 진입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하게 하거나, 확률형 아이템, P2E(게임 내 재화를 암호화폐를 통해 현금화할 수 있는 장르의 게임) 게임 등은 사행성을 지나치게 조장해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며 “과도한 사행성은 엄격하게 규제해야 게임 업계와 이용자들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전했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또한 “우리나라 게임 개발사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기보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가지고 돈을 벌지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한국 게임을 떠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e스포츠에 대한 인기나 선수들의 능력에 비해 국내 게임 개발 능력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위 학회장은 “e스포츠 강국이라고 평가 받는 한국이지만 두터운 선수층에 비해 LoL과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스템, 선수, 문화 등 다방면에서 e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태진 교수는 “게임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남성들에게 조금 치우친 감이 있다”며 “문화가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면 새로운 소비자 유입이 어려워지고 이는 해당 문화가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