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이 바뀐다…생활도박시대②

한 불법 온라인 스포츠·미니게임·가상스포츠·카지노 도박 사이트. 이 사이트는 2023년 1월 7일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2023년 11월 26일 현재까지도 접속된다. 10개월가량 동안 버젓이 불법 영업을 해온 것이다. 홈페이지 캡처
도박 시장 판도가 바뀌면서 중독자들의 중독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국가가 공인한 강원랜드나 불법 도박 ‘하우스’ 등에서만 도박을 할 수 있었을 때와 달리, 상업지역 곳곳에 들어선 홀덤펍의 불법 영업이 성행하는 데다 모바일 불법 도박 확산세가 통제불능 상태라서다. 도박에 대한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탓에 도박 중독도 ①생활화 ②집단화 ③복합화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① 생활화=일상 속으로 파고든 도박 중독
월급과 생활비를 모두 탕진한 뒤에도 불법 도박을 멈추지 못 했다. 급기야 베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기가 없는 월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에 회사 창고에서 산업용 금속의 일종인 ‘팔라듐(전자회로 강도를 높이는 약품)’을 훔쳤다. 2018년 8월 시작된 그의 절도 행각은 2021년 5월에야 막을 내렸다.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씨는 지난해 4월 징역 2년 8개월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한때 성실한 회사원이었던 윤씨의 삶은 일상 속으로 파고든 도박으로 인해 파탄에 이르렀다.

2023년 4월 서울 마포경찰서가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전모(27)씨 등 9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사진은 일당이 생중계한 불법 도박 장면. 서울 마포서

차준홍 기자
②집단화=또래 사이서 쉽게 권유, 진입장벽 낮아져
정찬군은 “반 친구 25명 중에 안 하는 애가 한둘 뿐”이라며 “나는 300만원 잃고 동생은 500만원 땄다”고 억울해했다. 박군의 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이 설마 도박을 할 거라 상상도 못 했다”며 “청소년 도박 문제는 일부 비행 청소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 보편적인 놀이가 된 것”이라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전국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약 88만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도박 진단 조사를 한 결과 도박 위험군으로 분류된 청소년은 2만8838명(3.2%)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한 중학교 다니는 임모(14)군은 “25명 남짓 급우들 중 일상적으로 도박을 즐기는 친구들이 3~4명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속에 적발되는 수는 미미하다. 전국 시·도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의 청소년 유인 요소를 활용한 온라인 도박 특별단속(9월 25일~11월 10일)에선 39명(전체 수사 대상자 353명)의 청소년이 적발됐다.
비슷한 일은 군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군 검찰에 형사 입건된 휴대전화 관련 범죄 사건 중 도박 관련 범죄는 2017년 49명에서 지난해에 243명으로 늘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 군인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 누구 한 명이 ‘도박으로 큰돈 땄다’는 소문이 퍼지면 누구나 따라 하고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렇게 또래 집단을 통해 처음 도박을 시작해 중독에 빠지는 피해가 막심하다”고 설명했다.

이모씨는 20살 때부터 바카라 하우스 등 불법 도박을 경험하고 합법도박인 강원랜드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가 현재 전업 선물 트레이더로 전향해 주식과 가상자산 투자업을 하고 있다. 2023년 11월 16일 이씨가 경기 화성시의 한 카페에서 나스닥 선물옵션 거래 화면을 보이고 있다. 손성배 기자
③복합화=합법·불법 넘나들며 인생 올인
이내 불법 온라인 도박에 손을 댄 이씨는 최근 주식, 선물·옵션, 가상화폐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이씨는 “큰 돈을 잃고 따는 순간 폭발하는 도파민(쾌락을 느끼게 하는 중추신경계 신경전달물질) 때문에 돈을 걸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박판으로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난 도박을 할 수밖에 없는 팔자”라며 “기존 도박뿐만 아니라 주식, 코인 다 불확실한 미래에 인생을 베팅하는 도박”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역시 가상화폐·주식 단타 거래 등이 도박 수단으로 취급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상담을 진행 중이다. 주식을 이용한 도박중독 상담자 수는 2018년 421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823명으로 크게 상승했다. 중독 치료 전문인 하주원 연세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근로소득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소비 수준을 누리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도박 중독에 빠져드는 계층이 광범위해졌다”며 “주식과 코인도 순식간에 큰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도박이 될 수 있다. 도박이 아니라 투자를 하다 실패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워 더욱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 도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박자와 가족·지인들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헬프라인 ☎1336, 한국단도박모임 사무국 ☎02)521-2141 등으로 전화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