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위산업의 재건과 대외 의존도 감소
지난 3일, EU 집행위원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방위산업전략(European Defence Industrial Strategy)’을 발표한 바 있다. 문서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무도(unprovoked)한 것”으로 적시하면서,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회복 탄력성을 구비한 방위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방향성은 ‘대외 의존도 감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유럽 국가들이 EU 외부에서 무기를 구매한 비중은 60% 수준이었다. 최근 2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기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그 비중이 80%까지 증가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030년까지, EU 회원국 간의 무기거래 비중을 35% 이상으로 높이고, 국방 조달예산의 50%를 역내에서 지출하며, 신규 무기획득의 40% 이상을 공동 개발ㆍ구매 등으로 조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위급 유럽방위산업그룹’을 신설하고, 중ㆍ소 방산 업체에 대한 금융지원 및 세금 감면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방위산업에 대한 신규 투자의 활성화를 위해 유럽투자은행(EIB)의 대출 요건도 ‘완화’할 방침이다. 현재는 무기 또는 탄약 생산 관련 대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위협을 포함한 국제정세의 불안정성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방산협력 강화
1991년, 독일과 프랑스는 폴란드의 소련의 영향권 탈퇴를 지원하기 위해 ‘바이마르 삼각 동맹’이라는 비공식 협의체를 구성한 바 있다. 냉전 이후, NATO가 그 기능의 대부분을 수행하면서 ‘휴면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충분한 방위비를 내지 않으면 러시아의 침공을 독려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부활이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독일ㆍ프랑스ㆍ폴란드 외교장관이 파리에 모여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8일, 독일과 폴란드의 국방장관회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독일군 5000명이 리투아니아에 파병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연내에 약 5000명(절반씩 분담) 규모의 신속대응여단을 편성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ㆍ장갑차 지원에 초점을 맞춘 ‘기갑역량 연합(Armour Capability Coalition)’도 가동하기로 합의 한 바 있다. 여기에는 영국ㆍ스웨덴ㆍ이탈리아도 동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2014년부터 ‘KNDS’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헤 ‘차세대 전차(MGCSㆍMain Ground Combat System)’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22일, 양국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 KNDS의 자회사를 설립하여 군수품 생산과 정비ㆍ부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이탈리아 최대의 방산 업체 레오나르도(Leonardo) 역시 KNDS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한 바 있다. 서유럽 국가들이 다국적 방산협력을 강화하고, 동유럽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전시 방위산업 육성
지난 1월 24일, 미국의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는 ‘우크라이나의 성공을 위한 장기적 과정: 미국과 EU의 지원을 받아 자급자족하는 방위산업 기반 구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서방의 군사지원이 급감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자체 방위산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 국가들과 합작 생산 공장설립 등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의 방산협력을 추진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9월 29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포럼’에는 30개국 252개 기업이 참여했다. 올해는 ‘유럽 연합-우크라이나 방위산업포럼’이 개최될 예정이다. 독일의 라인메탈(Rheinmetall)은 올해부터 현지에서 장갑차 생산을 시작한다. CEO 아르민 파페르거(Armin Papperger)는 “전차 공장도 우크라이나에 건설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의 BAE Systems는 우크라이나에 현지 사무소 개소하고, 105㎜ 구경 곡사포를 생산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125㎜ 전차 포탄을 공동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튀르키예는 바이락타르 TB2 드론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CV90 보병전투차량 공동생산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10개 이상의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무기체계 공동 개발 및 생산, 정비 등에 대한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유럽 방산수출 확대엔 특별한 노력 필요
EU, NATO의 결속력은 유럽의 방위산업 발전에 기여해 왔다. 반면에, 다른 나라의 유럽시장 진출에는 ‘진입장벽’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냉전 이후, 위협의 감소와 세계화로 진입장벽이 잠시 낮아졌을 따름이다. 우크라이나전쟁과 신냉전이 이를 과거로 되돌리고 있다. EU, NATO가 ‘동유럽’까지 확장되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 10대 방산수출국(2019∼2023년) 중에서 5개국(프랑스ㆍ독일 등)이 유럽이며,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27.3%에 달한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의 ‘동유럽 방산수출 확대’가 녹록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지원이나 방산협력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동유럽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와 방산협력을 검토하는 등 기존과 차원이 다른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 방산시장에서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