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진격하던 K방산이 주춤해졌나.
지난달 발표한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3년 국제무기거래 동향’에 따르면 2019년~2023년 한국의 무기 수출은 세계 시장의 2.0%를 차지했다. 순위는 10위였다. 지난해 발표한 2018~2022년 동향에선 한국은 2.4%로 9위였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방위산업 수출 140억 달러였다. 당초 목표(200억 달러)에 못 미친 데다 한해 전인 2022년(173억 달러)보다 적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해 방산 수출이 선방이라고 평가했다. 방산 수출 대상국이 2022년 4개국→지난해 12개국으로, 수출 무기체계도 2022년 6개→지난해 12개로 각각 늘어났다는 점에서다.
기반을 잘 닦아놨기 때문에 방위사업청은 ‘2024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에서 방산 수출 목표를 다시 200억 달러로 높여 잡았다.
과연 가능할까.
벅찬 목표는 아니라는 게 정부와 업계 모두의 분석이다.
수출입은행의 대출 여력을 늘린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돼 K방산의 저해 요소가 사라졌다. 전 세계 안보정세가 여전히 불안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전 세계적 군비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 안보를 챙기지 않겠다고 나설 경우 자국 안보를 자국이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K방산 수출의 저변을 늘리고 수준을 올릴 ‘대박’들이 줄줄이 터질 수도 있다. 이미 뒤늦게 1월에 공개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천궁Ⅱ 수출, 지난달 페루 해군ㆍ해안경비대의 4척 수주 등 희소식이 들려왔다.
전투함 수출도 노리는 K방산
2022년 6~8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렸던 다국적 연합 해상 훈련인 림팩에서 일이다. 해군은 세종대왕함, 문무대왕함 등 구축함 2척, 상륙함인 마라도함, 잠수함인 신돌석함, P-3C 해상초계기 등 역대 최대 전력을 보냈다.
그런데 이 훈련에 참가한 필리핀의 호위함 BRP 안토니오 루나함, 페루의 초계함 BAP 가이즈, 뉴질랜드의 군수지원함 HMNZS 아오테아로아함도 한국과 관련이 깊다. 정확이 말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안토니오 루나함은 2021년 필리핀이 한국에서 인수한 호위함이다. 필리핀은 2020년 동급의 호세 리잘함도 인수해갔다. 필리핀 해군은 호세 리잘함과 안토니오 루나함을 갖추면서 비로소 해군다워졌다. 2020년 이전엔 변변한 전투함이 없어 림팩에도 옵서버만 보냈던 신세였다.
가이즈함은 해군에서 2019년 퇴역한 포항급 초계함인 순천함을 2021년 페루에게 준 경우다. 뉴질랜드의 아오테아로아함은 2020년 한국에서 인수했다. 뉴질랜드 해군에서 가장 큰 배로 알려졌다.
2022년 당시엔 ‘이런 장면도 보는구나’ 싶었는데, 앞으론 더 자주 펼쳐질 조짐이다. 지난 4일 열렸던 해군의 3000t 잠수함 신채호함 인수식에 9개국 인사 20여명도 참석했다. 특히 9개국 중 캐나다ㆍ호주ㆍ폴란드ㆍ필리핀은 앞으로 K방산이 전투함 수출 시장으로 노리는 곳들이다.
호주는 지난 2월 대규모 건함계획을 밝혔는데, 호위함 11척을 새로 건조할 방침이다. 그런데 호주는 호위함을 한국ㆍ일본ㆍ스페인ㆍ독일 중 한 국가에 주문할 전망이다. 캐나다는 3000t 잠수함 8~12척을 지을 계획인데, 한국과 일본이 이를 놓고 경쟁 중이다.
폴란드는 3000t급 잠수함 2~3척을, 필리핀은 잠수함 2~3척을 각각 바라고 있고, 한국은 두 나라에 제안하고 있는 상태다. 떼놓은 당상은 아니지만, 한국이 경쟁국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미국에 전투함 수출할 수 있을까
미국 시장에도 K방산의 진격로가 놓일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 세계를 두고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그런데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은 2015년부터 미국이 중국보다 보유 척수에서 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압도하고자 유ㆍ무인 함선 500척을 보유하겠다는 ‘2045년 전력 계획(Battle Force 2045)’을 발표했다. 갈 길이 멀고 발걸음이 바쁜 미 해군의 발목을 잡는 것은 미국의 조선산업이다.
미 조선산업은 미 해군이나 미 해안경비대의 물량만 바라고 산다. 돈이 되는 민간 분야는 한국ㆍ중국ㆍ일본에 내줬다. 그러다 보니 시설이 낡고, 기술도 뒤처졌다. 생산성은 형편없다. 미국 조선소에서 가장 최신의 드라이독이 1962년 만들어졌고, 1883년 지은 드라이독도 쓰고 있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 장관은 지난해 2월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에는 13개의 조선소가 있으며, 한 곳의 생산 능력이 우리 모든 조선소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토로했다
2025년 국방 예산안에서 미 해군은 7척의 신규 전투함을 주문할 예정이었으나, 캐파가 부족해 6척으로 줄였다. 미국 조선산업은 미 해군의 목표인 연간 잠수함 2척도 만들 수 없다. 캐파가 연간 1.3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이자 조선산업 경쟁력이 있는 한국과 일본이 도와주길 바라고 있다. 미국 항구간 물품은 미국이 건조하고, 미국이 소유하고, 미국인 선원이 운항하는 배로만 운송해야 한다는 내용의 존스법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 전투함을 수출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조선소를 사들이길 바란다.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도 관심이 있다.
잠수함 수리에 5년이나 걸려
당장 한국이 미국에 뛰어들 시장이 있다. 미 해군의 유지ㆍ보수ㆍ운영(MROㆍMaintenance, Repair, Operation) 분야다.
2021년 남중국해 작전 중 충돌 사고로 파손된 코네티컷함(SSN 22)은 3년이 지나도 수리가 끝나지 않았다. 완료 시점은 2026년이라고 한다. 캐파가 부족한데 신규 건조가 우선이니 수리는 뒷전이다.
미 해군엔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미 해군 해상체계사령부와 지난 2월 델 토로 장관이 국내 조선소를 방문했다. 한국의 미 MRO 참여를 두고 한ㆍ미 국방 당국이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 올해 안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미 해군의 MRO 협력 국가로 공식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
개발 도중 나갔던 미국, 다시 관심 가져
서북 도서를 노리고 있는 북한의 공기부양정을 잡으려 만든 2.75인치(70㎜) 유도 로켓인 비궁도 미국 시장을 두들기고 있다. 사실 비궁의 개발 과정에 미국도 참여했다. 한ㆍ미 양국은 저가형 유도 로켓(LOGIRㆍLow Cost Guided Imaging Rocket)를 개발했지만, 중간에 미국이 포기했다.
그리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을 끝낸 비궁은 2016년 전력화에 들어갔다. 최대 8㎞ 떨어진 곳에서 고속기동하는 표적을 모두 명중했다. 값도 경쟁 무기에 비해 싸다.
미국은 2020년 4월 동맹국 장비나 기술을 시험평가하는 해외비교시험(FCT)으로 비궁을 처음 시험발사했다. 2022년 림팩 훈련에서 비궁이 전시됐다. 이후 꾸준하게 미국은 비궁을 테스트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텍스트론의 무인수상정(USV)에 비궁을 싣고 발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시험발사는 명중률 100%다. 올해 한 번 더 시험발사에 성공할 경우 미국이 비궁을 살 수 있게 된다. 미국이 비궁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자폭 보트 공격 때문이다. 싸구려 자폭 보트를 값비싼 대함 미사일로 파괴하기엔 너무 과해 비궁과 같은 무기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 더군다나 비궁은 명중률이 아주 우수하다.
더 많고 더 다양한 무기 수출 가능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몸값이 높아진 155㎜ 포탄은 올해 전망도 긍정적이다. 체코의 페트르 파벨 대통령이 155㎜ 포탄 50만 발과 122㎜ 포탄 30만 발을 유럽연합(EU) 밖에서 신속하게 구입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20개 국가가 이를 지지하고, 12개 국가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한국이 튀르키예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경쟁 중이다.
이 밖에도 K9 자주포를 루마니아에서, FA-50 경전투기는 페루ㆍ이집트ㆍ우즈베키스탄에서, K808 차륜형 장갑차는 페루에서, 천궁 중거리 방공체계는 말레이시아에서, K21 보병전투차는 라트비아에서 각각 구매의사를 밝혔다. 기동헬기인 수리온과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을 눈여겨보는 나라도 있다.
샴페인을 터뜨리긴 이르다. 그러나 지난해 잠시 호흡을 골랐던 K방산이 올해는 더 거침없이 나갈 것으로 보인다. K방산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