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9일 발간한 ‘미 의회 대중국 견제 입법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개원한 제118대 미 의회는 9개월 동안 중국 관련 법안을 376개 발의했다. 2년간 432건을 발의한 117대 의회를 크게 상회할 전망이다.
현재 미 의회에서 검토 중인 주요 대중 견제 수단은 고율의 관세 조치와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지위 철회, 멕시코 등을 경유한 우회 수출 방지 등이다. PNTR 지위는 미국이 비시장경제국에 대해 의회의 정기적 심사 없이 자동으로 최혜국 관세를 적용하는 근거로, 미국은 중국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및 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중국에 이 지위를 부여했다.
그간 미 의회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전기차, 조선·해운, 철강·알루미늄 등 전략 품목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치를 강화하라고 지속해서 요구했다. 해당 법은 미국 대통령에게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응해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공화당 주도의 하원은 118대 의회 회기 시작과 동시에 중국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초당적인 대중국 정책을 개발해왔다.
보고서는 “해당 법안들이 회기 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다음 회기에서 재발의 된다면 초당적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특히 미 공화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경우 대중국 견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오는 11월 미국은 대선과 함께 상원 의석의 3분의 1인 34석, 하원 전체 435석에 대한 선거도 함께 치른다.
미국의 대중국 강경 기조는 한국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에서는 중국 전기차가 관세 조치를 회피하기 위해 멕시코를 우회해 미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미 의회는 중국 기업이 제3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하겠다고 나설 경우, 중국산 원료나 중간재를 사용하는 한국 기업이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아름 무협 수석연구원은 “중국산 원재료를 수입해 한국에서 가공 후 미국으로 최종재를 수출할 경우, 중국 기업의 관세 회피 행위로 오인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소명해야 하는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진 중국 기업이 제3국 수출을 확대하면 한국 내수시장으로의 중국산 제품 수입 증가와 제3국에서의 한·중 간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철강 업계에서는 저가 제품의 국내 유입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재계 관계자는 “업종과 관계없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에 좋을 것이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통상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점도 부담”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에는 대통령의 권한뿐 아니라 정책 의제 설정권자인 의회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의회 선거 동향을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한국 배터리 산업 리스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6.2% 포인트 오른 42.4%로, 일본(40.7%)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중 배터리 요건이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미국 내 수요 확대와 판매량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IRA 폐지’ 입장은 한국 배터리 산업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보고서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IRA 법안 폐지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며 “행정명령을 통해 IRA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도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발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미 대선 및 의회 선거 추이는 물론이고 경합주를 중심으로 개별 의원의 지역구 이해관계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한국이 대규모 투자를 한 미시간·오하이오·테네시 등 7개 주의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향후 협상에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