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거북 전차는 일선에서 급조한 구조물을 T-62 같은 구형 전차에 덧씌운 것이어서 형태부터 조잡하다. 노획해 조사한 결과 포탑의 회전이나 포신의 상하 조준도 불가능한 데다 승무원의 시야를 차단해 주행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거북 전차는 기갑전을 비롯한 전투용은 아니고 지뢰지대 개척, 진격로 확보 등에 투입하는 일종의 비전투 장비에 가깝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T-90, M1, 레오파르트 2 같은 전차도 쉽게 격파되니 설령 비전투 임무를 수행해도 T-62 같은 구형 전차가 생존하기 대단히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구조물을 덧대어 방어력을 높이려고 자구책을 동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사 이래 벌어진 모든 전쟁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당사자 입장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보도와 달리 장병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것은 전쟁 중에는 흔한 일상이다. 전차의 경우 방어력이 취약한 부위에 철재나 모래주머니 등을 이용해서 현장에서 만든 급조 방어물을 부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하다못해 효과가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목재를 덧붙인 경우까지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이라면 모두가 예외 없이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생을 유지하려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본능이다. 그래서 효과 여부와 상관없이 일선에서는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앞에 언급한 사례처럼 전쟁 밖의 제3자가 보면 우스워 보이는 결과물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당연 시 되기도 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초에 러시아군이 포탑 상부에 우산처럼 생긴 드론 방어물을 설치하자 전차의 굴욕이라는 제목처럼 앞다투어 러시아를 비웃는 보도가 나왔었다. 하지만 최고의 방어력을 갖춘 전차 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한 영국의 챌린저 2가 유사한 구조물을 달고 싸우는 모습이 공개되자 더는 그런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즉, 이제는 필요불가결한 구조물이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을 많은 이들이 현대전의 시작으로 거론하는 이유는 전략·전술·작전·무기의 변화가 이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단지 공상의 영역이던 하늘과 물속도 전쟁터가 됐을 정도다. 이는 그만큼 살상과 파괴의 범위 또한 커졌다는 의미다. 당시를 상징하는 지옥의 참호전의 그런 변화와 달리 전쟁을 지휘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예전 그대로였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래서 거북 전차처럼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장비가 무수히 등장했다. 미국의 브류스터 전신 갑옷도 그러한 장비 중 하나다. 이론상 소총탄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무게가 40㎏이 넘는 데다 시야가 가리고 움직임에 제약이 많아 정식 채택은 불발로 끝났다. 사용이 불가능 한 점을 즉시 알았을 만큼 조악했음에도 마치 중세 기사의 판금 갑옷 같은 군장이 등장한 것은 그만큼 참호전이 지독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벌이지기 전부터 현재 방탄복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흉갑같은 방어구를 사용했음에도 폭탄 파편과 기관총에서 난사하는 총탄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병사들의 사상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자 마치 중세 기사의 판금 갑옷 같은 군장까지 탄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외에도 최전선에서 병사들이 급조한 다양한 방어 수단들도 많이 사용됐다. 그만큼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대단했다.
모든 장병은 군인이기 전에 인간이므로 아무리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는 성능 여부와 상관없이 처음 언급한 거북 전차를 결코 웃음거리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다. 조롱이나 비난의 대상은 전쟁을 일으킨 위정자야 하지, 항상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는 전장의 병사일 수는 없다. 이는 비단 우크라이나 전쟁만의 모습이 아니다. 유사 이래 모든 전쟁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