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행은 지난해 4월 25일. 개발이 완전히 끝난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도 튀르키예 매체에 따르면 스페인 공군은 노후화한 SF-5M 훈련기의 대체 기종으로 휴르젯을 검토하고 있다. SF-5M은 한국 공군에서 아직도 현역으로 날고 있는 F-5 전투기를 고등 훈련기로 쓰는 기종이다. 스페인 공군은 SF-5M을 1970년 들여왔다. 벌써 지천명(知天命ㆍ50세)을 넘은 기령(機齡)이다.
당초 스페인 공군 대표단의 TAI의 앙카라 생산시설을 찾아 휴르젯을 살펴볼 예정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스페인 현지에서 시험평가를 하기로 한 것이다.
스페인은 독일ㆍ프랑스와 공동으로 생산하는 A400M 다목적 수송기 6대와 휴르젯 24대를 맞바꾸는 계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튀르키예는 A400M을 이미 10대 보유 중이다.
휴르젯 스페인 수출 추진은 튀르키예 방위산업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진격의 T(튀르키예)방산, 한국 턱밑까지 추격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불안정으로 지정학 리스크가 커지면서 K방산이 약진하고 있다. 그러나 T방산(튀르키예 방산)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스톡홀름 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9~2023년 전 세계 무기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0%로 10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튀르키예는 바로 아래 11위(1.6%)였다. 튀르키예가 한국의 턱밑까지 쫓아온 셈이다.
미국의 군사 전문 매체인 디펜스뉴스는 매년 100대 글로벌 방산기업을 발표한다. 국가별 기업 수로 보면 ▶미국(48개) ▶영국ㆍ중국(6개) ▶독일ㆍ튀르키예(5개) ▶프랑스(4개) ▶한국ㆍ이스라엘(3개) ▶인도ㆍ이탈리아ㆍ노르웨이ㆍ스페인(2개) ▶호주ㆍ네덜란드ㆍ캐나다ㆍ핀란드ㆍ아일랜드ㆍ룩셈부르크ㆍ폴란드ㆍ사우디아라비아ㆍ싱가포르ㆍ스웨덴ㆍ우크라이나(1개) 등 순이다.
참고로 항공 전문 방산업체인 에어버스는 등기상 본사는 네덜란드 레이덴이지만, 실제 본부는 프랑스 툴루즈에 있다.
올해 튀르키예 업체 5곳이 올랐다. 군용 통신 장비ㆍ레이더 시스템ㆍ전투 관리 시스템ㆍ전자전 시스템을 생산하는 아셀산(Aselsan·42위), 휴르젯의 TAI(50위), 로켓ㆍ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하는 로켓산(Roketsan·71위), 소화기ㆍ화포ㆍ탄약을 만드는 MKE(84위), 항공ㆍ해상ㆍ지상 시스템의 ASFAT(94위) 등이었다.
반면 한국의 방산기업은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오션ㆍ19위), LIG넥스원(58위), 현대자동차(현대로템, 현대위아. 기아ㆍ73위) 등이었다.
디펜스뉴스는 튀르키예의 성장세가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이락타르(Bayraktar) TB2와 아큰즈(Akinci) 등 무인기(UAV)로 유명한 바이카르(Baykar)는 비록 100대 업체에 들지 않았지만, 튀르키예의 국방혁신을 상징하며 성장 잠재력을 갖춘 기업으로 봤다.
1974년부터 방산 집중 육성…풍부한 실전 경험
사실 한국은 튀르키예를 방산에서도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전자ㆍ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ㆍ화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방산 기반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튀르키예에 K9 자주포와 K2 전차 , KT-1 기본 훈련기를 수출했다.
반면 2008~2012년 1362억원을 들여 튀르키예로부터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를 수입했다. 그런데 2021년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EWTS 레이더 5종 중 4종이 고장 난 상태다. 2012년 전력화 이후 고장이 연 평균 50건 가깝게 일어났다.
2021년 육군의 자주 도하 장비를 두고 튀르키예 FNSS는 현대로템과 손잡고 AAAB를 밀었으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ㆍGDELS의 KM3 수룡에 패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은 튀르키예를 방산 경쟁자로 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방산ㆍ항공 수출액이 55억 달러(튀르키예 수출 협회)를 넘어섰다. 한국은 튀르키예의 2배가 넘는 130억 달러였다.
그러나 튀르키예는 방산 잠재력이 나름 충분한 국가다. 나토(NAOㆍ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 강국이며, 지금도 시리아ㆍ리비아 등에서 실전을 치르고 있다. 군사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나라가 튀르키예다.
튀르키예 방산의 시작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튀르키예는 지중해의 키프로스를 놓고 그리스와 전면전 직전까지 갔다. 이때 미국이 무기 금수 조처를 내렸다. 튀르키예는 자주국방을 내세워야만 했고, 곧 국영 기업을 중심으로 독자적 방산 생태계를 만들었다. 2019년 튀르키예의 국영 매체가 튀르키예는 필요한 무기의 70%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고 자랑할 정도다.
중동 등 한국과 상당히 겹치는 수출 시장
튀르키예 방산 수출 시장은 아프리카ㆍ중동, 동남아시아ㆍ서남아시아에 몰려 있다. 주로 무슬림 국가들이다. K방산과 상당히 겹친다. 구체적으론 아랍에미리트(UAE)ㆍ카타르ㆍ파키스탄에 무기를 가장 많이 팔았다.
방산 수출품의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편이다. 바이락타르 TB2가 우크라이나에서 맹활약하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아큰즈는 파키스탄ㆍ리비아ㆍ에디오피아ㆍ아제르바이잔ㆍ부르키나파소에 수출 됐다. 이들 무인기는 가성비가 뛰어나 유럽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문을 두들기고 있다.
전술차량ㆍ차륜형 장갑차는 튀르키예 방산의 베스트셀러다. 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으며, 최근 유럽의 헝가리, 남미의 칠레,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등으로도 시장을 넓히고 있다. 오토카르(Otokar)의 아르마(Arma)는 바레인ㆍUAEㆍ에스토니아가 구입했다. FNSS의 파르스(Pars)는 4X4, 6X6, 8X8 등 차체와 정찰ㆍ병력수송ㆍ다목적 등 임무에 따라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다양화했다. 리비아ㆍ오만ㆍ말레이시아가 파르스를 운용하고 있다.
아다(Ada)급 초계함(25OOt)은 상당히 우수한 성능의 전투함이다. 확장성도 좋은 편이다. 파키스탄과 우크라이나가 아다급을 도입했으며, 말레이시아도 구매 계약을 맺었다.
유럽의 기술 협력으로 만든 T129 아탁(ATAK) 공격 헬기는 대전차 미사일과 공대지 미사일 등 무장도 모두 메이드 인 튀르키예다. 필리핀과 나이지리아가 T129를 사들였으며, 다양한 나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소총ㆍ기관총, 포탄, 미사일에서도 튀르키예가 나름대로 선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KF-21 보라매(4.5세대)보다 한 세대 앞선 전투기라고 선전하는 TAI 칸(KAAN·5세대), 2만 7000t급의 무인기 모함인 아나돌루(Anadolu)함과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갖춘 첫 국산 잠수함인 밀덴(MILDEN)급 등은 튀르키예 방산의 차세대 주자들이다.
정부 지원으로 성장…자체 기술은 모자라
이렇게 튀르키예 방산이 요즘 훨훨 나는 배경엔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방산을 밀어주고 있다.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은 “방산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한국과 달리 튀르키예는 방산을 애국자로 치켜세운다”고 말했다. 또 지상ㆍ해상ㆍ공중 무기를 개발ㆍ생산할 수 있는 국영 기업과 민영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동시 다발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자주 외교’는 튀르키예 방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튀르키예가 아직 기술력일 달리기 때문에 첨단 기술과 부품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수입해야 한다. 특히 전차와 항공기 엔진은 외국에 기대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튀르키예가 자주국방을 꿈꾸고 있지만, 이는 비용이 많이 들고 험난한 과정이기 때문에 튀르키예 방산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튀르키예 방산은 한계도 있지만, 꾸준한 투자와 수출로 인해 성과를 계속 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튀르키예는 한국 방산의 발목을 잡는 차원을 넘어서 한국 방산을 압도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선진국만 바라보고 추격하던 한국은 이제 뒤도 슬슬 뒤도 살펴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