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자성어는 불택필지(不擇筆紙)다. 앞의 두 글자 ‘불택’은 ‘선택하거나 가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필지’는 ‘붓과 종이’라는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불택필지’는 ‘서예가가 붓과 종이의 품질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만약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품질에 구애받지 않고 한결같이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다면, 그는 분명 높은 경지에 이른 것으로 칭송될 것이다. 구양순(歐陽詢, 557-641)이 그런 인물이었다.
구양순은 수(隋)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혼란스러운 시대에 태어났다. 무력이 동원된 정치적 사건으로 어려서 부친을 포함한 모든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졌다. 다행히 부친의 절친이던 양부(養父)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얼굴이 원숭이를 닮았고 체격도 왜소하여 자주 놀림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남달리 총명했던 그는 청소년기 학업에 집중했고 수나라에서 중앙 관료 생활을 했다. 수나라가 짧게 수명을 다하고 당(唐)나라가 세워졌으나 그는 순탄하게 고위 관료 생활을 이어나갔다. 84세까지 장수하며,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천자문 등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을 남겼다.
구양순, 우세남(虞世南, 558-638), 저수량(褚遂良, 596-658)은 당나라 초기의 서예 3대가로 꼽힌다. ‘불택필지’는 이 인물들 사이의 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두 인물보다 약 1세대 젊은 저수량은 승부욕이 강했다. 하루는 그가 우세남에게 ‘구양순과 자신 가운데 누구의 서예 실력이 더 좋은지’를 평가해달라고 청했다. 우세남은 침착하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할 말은 직선적으로 하는 성격이었다. 당태종 이세민을 비롯해 많은 지인들이 그의 인품과 박학을 흠모해 마지않았다.
우세남이 저수량에게 대답해준다.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에 상관없이 원하는 글씨를 쓸 수 있다고들 합니다. 당신도 뛰어나지만, 아무래도 구양순의 그 실력엔 미치지 못할 것 같군요.” 비록 자존심에 상처는 입었지만 저수량도 우세남의 이 정곡을 찌르는 평가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노년기에 구양순은 자신만의 서법 이론을 완성한다. 그의 해서(楷書) 서법 이론서 ‘8법(八法)’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점(点)획은 높은 봉우리에서 돌이 떨어지듯 써야 한다.’ 또 이런 내용도 있다. ‘꺾이는 획은 만 근의 활을 당기는 것처럼 써야 한다.’ 만약 정말 이런 기세로 각 획을 쓴다면, 재료의 품질이 어떻든 원하는 서체에서 크게 어긋나는 일이 없을 것도 같다.
붓, 깃펜, 연필, 죽간, 화선지, 양피지, 비단 등 다양한 도구는 우리 인류가 손으로 쥐고 기록하기 위해 고안한 탁월한 발명품들이다. 여기에 미학적 본능이 추가되면 명필이 되기도 하고 달필(達筆)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명필은 붓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의미로 ‘유능한 목수는 연장 탓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 말들을 ‘소재 자체를 구별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너무 확장해서 이해하거나 신비화를 하면 곤란하다.
‘불택필지’는 각 재료의 ‘품질의 좋고 나쁨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라는 정도로 우리가 제한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에 맞다. 흡족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지 않고서 남의 핑계를 대면 안 된다’라는 의미로 새긴다면,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해석이 될 것이다.
구양순은 노년기에도 글을 쓸 때, 저러다 으스러지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강하게 붓을 쥐고 글씨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 또한 ‘불택필지’의 숨겨진 스킬(skill)이자 건강의 비결이 아니었을까 싶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