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뱃길 끊길뻔한 HMM, 신규 해운동맹 출범…“자체 경쟁력 키워야”

서울 여의도 HMM 본사에 설치된 스크린에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HMM 본사에 설치된 스크린에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 
글로벌 해운사들이 새로운 ‘해운 동맹’을 출범시키며 새판짜기에 나섰다. 유럽 항로를 잃을 위기에 처했던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은 세계 1위 선사인 스위스 MSC를 신규 동맹에 파트너로 잡았다. 글로벌 운임 상승으로 호황기를 맞은 해운업계가 아군과 적군을 다시 가르며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

김경배 HMM 대표이사는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HMM은 일본 ONE, 대만 양밍과 밀접한 협력을 통해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를 새로 만들고, MSC와 선복 교환 협력을 하게 됐다”며 “글로벌 얼라이언스(동맹) 중 가장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전날 HMM·ONE·양밍 등 3사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출범 사실을 알리며, MSC와 북유럽·지중해 항로에서의 선복(적재 공간) 교환 협력에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글로벌 해운 시장에선 향후 5년간 프리미어·오션·제미나이 등 3개 동맹이 경쟁하게 됐다. 해운동맹은 해운사들이 인기 항로의 과잉 경쟁을 막기 위해 만든 일종의 ‘카르텔’인데, 자사 선박이 다니지 않는 항로에서 동맹 선사를 활용하거나 항만 터미널을 공유하고, 화주를 상대로 공동 영업도 한다.

2017년까지 4강 체제였던 해운동맹은 글로벌 해운 업황 악화 등 파고를 맞으며 3강 체제로 바뀌었다. MSC와 덴마크 머스크(세계 2위)가 만든 ‘M2’, 프랑스 CMA CGM(3위)·중국 코스코(4위)·대만 에버그린(7위) 등이 참여한 ‘오션 얼라이언스’, 한국의 HMM(8위)이 독일 하파그로이드(5위)·일본 ONE(6위)·대만 양밍(10위) 등과 함께 만든 ‘디 얼라이언스’ 등이다. 

이 3대 동맹에 파열음이 생긴 건 1·2위가 뭉친 2M이 지난해 초 결별 선언을 하면서다. 두 회사는 2025년 1월부터 갈라서기로 했다. MSC의 선복량이 5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으로 확대되며 동맹이 필요 없을 만큼 덩치가 커졌고, 물동량 1·2위의 결합에 각국의 독과점 제재를 받을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HMM의 컨테이너 선복량은 92만TEU 수준이다. 


1·2위 동맹 결별에…해운동맹 재편

올해 1월엔 ‘디 얼라이언스’의 맏형 역할을 하던 하파그로이드가 2M의 한 축 머스크와 ‘제미니’를 결성하겠다고 발표하며 다시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제미니는 2M 협력이 끝나는 2025년 2월부터 가동한다. 하파그로이드가 빠진 디 얼라이언스는 아시아권 선사들만 남게 돼, 유럽 항로를 재확보하고 선복량을 회복해야하는 숙제를 안았는데 이번에 새 동맹을 발표한 것이다.  

HMM·ONE·양밍 등은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로 동맹 이름을 바꿔 달고 세계 1위 MSC와 선복 교환 협력을 하기로 했다. MSC가 동맹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협력을 하는 ‘3+1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이들은 아시아~북유럽, 지중해 등 9개 항로에서 협력한다. 3대 동맹 중 나머지 한 곳인 오션 얼라이언스는 2032년까지 동맹체제를 유지한다.

 
HMM 측은 프리미어 얼라이언스에 대해 “기존 동맹 체제에서 26개 항로를 운영했다면 MSC와 협력 체계를 가동하는 내년 2월부터는 항로가 30개로 늘어난다”며 “특히 유럽 항로는 기존 8개에서 11개로 늘어나는데, 3대 해운동맹 중 가장 큰 규모”라고 설명했다. 항로 규모는 해운사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항로가 많을수록 다양한 화주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고, 운임 경쟁력도 좋아져 영업에 유리하다. 

김경배 HMM 대표이사가 10일 서울 여의도 HMM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규 협력체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결성 및 중장기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고석현 기자

김경배 HMM 대표이사가 10일 서울 여의도 HMM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규 협력체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결성 및 중장기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고석현 기자

전문가 “독과점 규제에 1위와 선복교환만”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해상법) 명예교수는 “선복교환은 프리미어 얼라이언스와 MSC가 각각 독자적으로 항로를 운영하고, 상선의 공간 일부를 빌려 상대의 화물을 실어주는 가장 낮은 단계의 협력 체제이지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이 동맹이 아닌 선복교환 형태를 취한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유럽 경쟁법의 강화로 ‘독점금지법 적용 제외 규정’(CBER)이 폐지돼, 시장점유율이 30%를 초과하면 동맹을 만들 수 없다”며 “동맹에 MSC가 들어오면 기준선인 점유율 30%를 초과하게 돼, 단순 협력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HMM 입장에선 MSC를 통해 유럽 노선에서 경쟁력을 더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정협 HMM 컨테이너사업본부장(전무)은 “2016년 철수했던 대서양 항로도 회복하기 위해 타 선사들과 적극 협의하고 있다. 다가오는 비수기에도 손해를 줄일 수 있도록 리스크 분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HMM은 향후 인도~북유럽·남미 동안 항로를 신설하고, 다른 해운동맹엔 없는 북유럽 항로의 부산·일본·베트남 직기항도 차별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튀르키예 등 신규 직기항 서비스도 검토 중이다.

원민호 한국해운협회 이사는 “(HMM이) 세계 1위 MSC와 협력하는 만큼 유럽과 북미 노선 등에서 선복량을 확대해 세계 유수의 해운 얼라이언스들과의 경쟁이 가능해졌다”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HMM의 물동 능력을 확대해 자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인현 명예교수는 “새 동맹이 유럽 화주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MSC를 참여시켰는데, 기존 하파그로이드의 역할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가장 좋은 건 HMM이 선박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2030년까지 23조5000억 투자”

한편 HMM은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국 대표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전략도 발표했다. 현재 매출의 90% 이상이 컨테이너선 운송에 집중돼 있지만, 향후 벌크 운송(건화물선, 유조선), 통합 물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세부적으로 컨테이너 사업에 12조7000억원, 벌크 사업에 5조6000억원, 통합 물류사업에 4조2000억원, 친환경·디지털 강화에 1조원 등을 투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