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소송 강명훈·최재형 변호사 인터뷰
의사들 주장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2023 의료서비스 경험조사' 결과다.
장기이식 등 생명에 직결된 주요 수술마저 기약 없이 미뤄지고 하루가 멀다고 전국 응급실 축소 운영 소식이 들려오는 '의료대란' 와중이라 언제 이런 의료서비스를 누렸는지 아득하지만, 한국은 원래 이런 나라였다. 의사들(전공의 포함)이 1인당 연 6113회(OECD 평균 1788회) 진료하며 지탱해온 의료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강행 후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전공의들이 "미래가 없다"며 병원을 떠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지방 대학병원들부터 경영난으로 문 닫을 위기라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전공의 없이 버텨온 필수의료 전문의들의 피로 누적 등으로 서울·수도권 주요 응급실까지 속속 축소 운용에 들어가고 있다.
신뢰 파탄 정부 정책 판결 남기려
전공의 1000명, 정부 상대 손배소
"개혁 명분 의료 시스템 붕괴에 분노"
신뢰 복구할 정치적 해결이 우선
전공의 1000명, 정부 상대 손배소
"개혁 명분 의료 시스템 붕괴에 분노"
신뢰 복구할 정치적 해결이 우선
강명훈 "미래를 선택할 자유"
변호사를 택할 때도 그랬다. 원래 꿈은 의사였다. 그런데 아는 의사들이 "수련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기에 고3 때 이과에서 문과로 바꿔 법대에 갔다. 강요가 아니라 내 선택이라 아쉽지 않았다.
연수원 시절에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나보다 연수원 한 기수 위(12기) 수료생 중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4명 전원이 법관 임용에 탈락한 적이 있다. 지팡이 짚고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도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활동성이 늘고 있어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은 업무가 어렵다"고 했다. 언론이 연일 비판 기사를 대서특필한 덕분에 이듬해 전원 판사 발령을 받았다. 이러니 연수원에선 아예 못 걷는 내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연수원장이 미리 "판·검사 지원을 안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결혼 전이라 혼자 지방 근무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아 "변호사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내 선택이라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정부가 "넌 장애 있으니 의대 못 가, 판사 못해"라고 명령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화재 대피 시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며 건물 3층 위로 아예 못 올라가게 막는다면 어떨까.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곤 반발했을 거다. 국가의 역할은 개개인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율적으로 살다 서로 부딪히는 지점을 조화롭게 푸는 거라 믿는다. "미래가 없다"며 병원을 떠났으나 사직의 자유마저 억압당한 전공의 편에 선 이유다.
최재형 "법보다 정치적 해결"
앞서 지난해 2월엔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에게 "전공의 지원이 줄어드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로드맵을 발표해 전공의 지원을 유도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조 장관은 "불가능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답했는데, 무려 1년 반이 지나 의료대란이 불거지고나서야 지난달 30일 뒤늦게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그때도 참 답답했지만, 돌이켜보면 더 안타깝다. 의료사고 법적 리스크나 수가 조정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발표에 앞서 풀었어야 할 문제들이고, 그렇게 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건너뛰고 증원만 앞세우는 바람에 작금의 응급실 대란 등 국민 건강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한마디로 윤석열 정부의 의료 정책이 너무 거칠다. 의료계에 구체적이고 신뢰받을 만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밥그릇 지키기' 프레임으로 의사 집단을 악마화해, 의사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뭉갰다.
내 눈엔 행정부의 권력 남용으로밖엔 안 보였다. 직전까지 여당 의원이었기에 '정부 명령이 위법하다'는 전제로 소송에 합류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법원 판단을 빨리 받아 국민 건강이나 의료 시스템을 위해 의·정 갈등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 해결이 갈등 해소의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특히 그렇다. "잘못한 게 없다"며 정부 권위로 억누르려 하지 말고 정치적 해결을 도모해야 문제가 풀린다.
강명훈과 최재형 "전공의에 자유를"
대다수 국민은 주 52시간 근무 권리를 누린다. 그런데 주 80시간, 연속 36시간 근무를 견뎌온 전공의들에겐 왜 '힘들면 그만둘 자유''(필수의료에) 미래가 없어 그만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기 돈 들여 공부해 의사가 된 전공의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또 국민 건강을 위해 왜 무한 희생을 강요받아야 하는지 수긍하지 못한다.
물론 정부는 무기가 있다. "의사는 어떤 경우든 환자를 떠나선 안 된다"는 윤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는 의료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그런데도 한덕수 총리 등 정부 관료들은 연일 의료대란 책임을 전공의들에 전가한다. 하지만 전공의가 그만두면 당장 문제가 벌어지는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해온 건 정부다. 또 전공의 장기 부재가 불러올 의료대란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는데도 아무런 대비책 없이 전공의들이 불신하는 정책을 강행해 이탈을 불러온 책임은 당연히 정부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의사를 비롯해 전문지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합당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 일하며 돈 벌고 명예까지 얻는다면 만족감이 높아져 더 열심히 일하는 그런 시스템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걸맞다. 윤 정부는 그걸 앞장서서 무너뜨렸다.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적잖은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을 원상 복귀해도 안 돌아간다"고 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확고하게 박혀버린 탓이다. 이걸 먼저 풀어야 한다.